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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ㅣ자이툰의 땅 ‘아르빌’

아무도 풀 수 없는 자이툰의 태생적 딜레마

전쟁 휘말릴 가능성 큰데 장병 희생 막으라니... 경제 재건 요구도 지갑 얇아 ‘걱정’

  • 아르빌=이병기/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eye@donga.com

아무도 풀 수 없는 자이툰의 태생적 딜레마

10월 초 국방부는 이라크 아르빌에 주둔한 자이툰 부대를 처음 한국 보도진에게 공개했다. TV 화면으로 전달된 자이툰의 이미지는 ‘한국 군인들에 대한 테러 위협은 높아지고 있지만 자이툰은 철통 같은 방어태세를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카메라는 여성 부대원의 활동상과 이슬람교를 믿는 부대원의 모습을 클로즈업했다.

그러나 이 보도는 자이툰을 둘러싼 여러 변수와 앞으로 자이툰이 직면하게 될 위기를 애써 외면한 것이었다. 기자들은 ‘배달의 기수’를 찍기 위해 간 것이 아니다. 하지만 국방부 측은 ‘기자단의 안전’을 거론하면서 서울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현지에서 국방부의 안내에 적극 협조할 것’을 철저히 요구했다. 국회에 곧 파병 연장 동의안을 제출해야 하는 국방부로서는 자이툰에 대한 긍정적인 소식만 알려야 했을 것이다. 그로 인해 일부 기자와 자이툰 부대 정훈공보팀 관계자가 상당한 마찰을 빚기도 했다.

결국 기자들은 국방부를 자극하지 않는 수위를 조금씩 넘나들며 취재하는 수밖에 없었다. 부대 안에서 숙식하는 한국 민간인(기업인)들과의 취재도 전화로 해야 했다. 아르빌 시내 취재는 자이툰의 공병부대가 밖으로 나갈 때 따라나가 몰래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취재를 통해 느낀 진실은 ‘자이툰은 수십 년 경력을 가진 노련한 외교관도 헤쳐나가기 힘든 매우 복잡한 딜레마를 안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쿠르드 지역의 복잡한 변수가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켜 폭발한다면 자이툰은 본의 아니게 거대한 소용돌이에 빠져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이라크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은 미국 대사관 등이 있는 바그다드 시내의 그린 존과 쿠르드 민병대가 지키는 쿠르드 자치지역뿐이다. 그러나 10월23일 바그다드의 그린 존에 있던 미국인 외교관이 저항세력의 박격포 공격으로 숨졌다. 그리고 아르빌에서 차로 40분밖에 걸리지 않는 북부 모술 지역에서는 저항세력의 위세가 날로 커지고 있다. 아르빌 현지인들은 이렇게 상황이 악화된 것은 미국의 전후(戰後) 처리가 서툴렀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민병대와 저항세력 충돌설 끊임없이 나돌아

취재진이 아르빌에 머물고 있는 동안에도 모술 지역의 데자브강 근처에서는 저항세력과 쿠르드 민병대 간 충돌이 계속되고 있었다. 오늘 저항세력이 쿠르드 민병대를 납치해 참수해렸다면, 다음날은 쿠르드 민병대가 강을 건너가 저항세력에게 보복살인을 하고 왔다는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현지에서 만난 한 교민은 “이라크인들은 이라크 전쟁의 마지막 단계는 미군이 이라크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고, 바로 그 순간 아랍인(이라크인)과 쿠르드인들이 내전을 벌이게 되는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며 “본래부터 아랍인들은 쿠르드인들을 멸시해왔지만, 이번 이라크 전쟁을 치르며 더더욱 쿠르드인을 아랍의 배신자로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고 말했다.

아르빌 남쪽에 있는 키르쿠크 지역의 유전(油田)지대 통제권을 둘러싼 쿠르드인과 아랍인 간의 갈등은 쿠르드 사태를 예고하는 신호탄이다. 주지하다시피 키르쿠크 지역은 쿠르드족 영역에 속했으나 후세인 시절 대거 아랍인을 이주시키면서, 두 세력이 팽팽히 맞서는 구도가 형성됐다. 이에 대해 미국과 영국은 쿠르드족 고위 인사들에게 “지금은 키르쿠크 문제를 논할 때가 아니다. 내년 1월 총선 때까지는 조용히 해달라”고 종용하고 있다. 그러나 쿠르드 자치정부의 바르자니 총리는 한국 기자단과 함께한 기자회견에서 “키르쿠크 지역은 반드시 쿠르드인들이 통제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랍인과 쿠르드인 간의 갈등으로 쿠르드 자치지역이 일순간에 내전(內戰)의 무대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렇게 될 경우 한국군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내전에 말려드는 처지가 된다. 이때 아랍인들에게 자이툰 부대는 아랍의 배신자인 쿠르드족을 돕는 점령군으로 비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안전을 찾아서 아르빌로 들어간 한국의 선택은 자충수로 돌변하게 되는 것이다.

아르빌 시내에서 만난 현지인들이 가장 많이 던진 질문은 “왜 한국군은 부대 안에서만 머무느냐”는 것과 “우리에게 어떤 경제적인 도움을 줄 것이냐”는 것이었다. 자이툰 부대는 숙영지 건설과 부대 방어를 위한 안전시설 공사를 거의 마무리지었기 때문에 파병의 명분으로 내걸었던 이라크 재건 사업에 적극 나서야 한다.

그러나 자이툰 부대가 정부로부터 받은 가장 중요한 지침은 “어떤 경우에도 부대원을 희생시킬 수 있는 상황을 피하라”는 것이었다. 부대원이 희생되면 국내에서 철군론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파병 연장안을 준비하는 정부로서는 고육지책으로 부대원의 희생을 피하라는 지침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 바로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자이툰 부대는 기자들의 자유로운 취재를 결사적으로 막았던 것으로 보인다.

오도 가도 못하는 딜레마 속에서 황의돈 사단장이 택한 전략은 ‘아웃소싱’이었다. 재건에 필요한 돈은 한국군이 대고 직접적인 건설활동은 쿠르드인이 하는 방안을 선택한 것이다. 이는 ‘한국군에게는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기회를 줄이고, 현지인에게는 취업 기회를 제공했다’는 명분이 있지만,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아르빌에서 만난 한 쿠르드족 기자는 “한국군이 쿠르드 정부 기구를 통해 돈을 푼다면, 쿠르드 민중보다는 일부 계층만 배를 불릴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쿠르드 지역은 일부 가문이 전체를 지배하는 봉건사회에 가깝다. 실제로 현재 쿠르드 자치지역 총리의 삼촌인 마수드 바르자니는 쿠르드 지역에서는 전제국가의 군주와 같은 존재다.

쿠르드족 돕자니 시아·수니파 눈치 보여

올해 500억원, 내년에 1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경제 재건비의 사용처에 대한 논란도 만만치 않다. 군 일부에서는 이라크인과 쿠르드인 간의 적대감을 의식해 “쿠르드족뿐만 아니라 시아파와 수니파에게도 나눠주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문제는 나눠주기에는 자이툰이 가져간 ‘지갑이 너무 얇다’는 점이다. 자이툰 부대가 내놓을 ‘보따리’에 대한 쿠르드인의 기대가 매우 높은데, 이를 시아파와 수니파에게도 나눠줘버린다면 모두 다 ‘배가 고픈’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아르빌에 나와 있는 한 외교관은 “이번 전쟁에서 쿠르드 지역은 전쟁의 참화를 거의 입지 않았다. 그러나 후세인 시절 워낙 박해가 심해 경제수준이 너무 낮다”며 “쿠르드인의 기대를 채워주려면 한국은 원조비를 몇 배로 늘려도 모자랄 판이다”고 토로했다.

쿠르드 지역은 터키뿐만 아니라 이란과도 국경이 맞닿아 있다. 미국이 비전쟁 지역인 아르빌에 한국군 주둔을 용인한 것은 쿠르드족과 갈등관계에 있는 터키와 미국의 관계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였다는 지적이 많다. 그러나 일부 중동지역 주민들은 미국의 의도를 달리 해석하고 있다. 부시가 재선되면 미국은 이란과 전쟁을 벌일 가능성이 있는데, 이때 이란과의 국경선에 있는 자이툰도 함께 참여시킨다는 것이다.

한국군이 직접적으로 이란과의 전투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면 쿠르드 지역과 이란, 그리고 쿠르드 지역과 터키 간의 국경 통제작업을 맡길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현재 이라크와 이란-터키간 국경선 경비는 미군과 신이라크군이 담당하고 있는데, 이들이 이란과의 전투에 동원되고 대신 자이툰이 그 임무를 맡는다는 것이다.

중동인들은 미국의 움직임을 음모론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습관화돼 있는 듯했다. 그러나 이들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한국은 언제든지 신속히 철수할 수 있는 대책을 세워놓고 있어야 한다”고 한 지적은 귀담아들을 만했다.



주간동아 459호 (p40~41)

아르빌=이병기/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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