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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난나의 싱글&징글

난 연애와 결혼의 법칙 구경꾼

난 연애와 결혼의 법칙 구경꾼

난 연애와 결혼의 법칙 구경꾼
디즈니의 뮤지컬 ‘미녀와 야수’에서 관객들이 가장 뜨거운 반응을 보이는 대목은 야수가 인간으로 돌아오는 장면이다. 갈등이 극적으로 해소되는 지점이기도 하지만 마법에서 풀려 왕자로 변신하는 배우의 모습이 관객들에게는 영 낯설었던 모양이다. 야수가 보여준 풍부한 성량의 카리스마에 줄곧 감탄해오던 옆자리의 친구도 왕자 의상을 한 배우를 보자 내 어깨를 치면서 웃어댄다. 호남형의 좋은 인상이었는데도 관객들이 기대하던 왕자의 이미지는 아니었나 보다. 곱슬곱슬한 머리에 화려하게 장식된 드레스를 입고 춤추던 ‘벨’ 역시 애니메이션에서와 같은 고전적인 ‘미녀’와는 거리가 멀다는 불평이 들린다. 그들은 서양인이 만든 팬터지 애니메이션 속의 캐릭터가 아니라, 같은 이야기를 연기하는 우리의 실제 배우였을 뿐인데 말이다. 전형적인 인물이나 사건들만 펼쳐 보여주는 로맨스 팬터지가 현실로 불려나오는 순간은 이렇듯 편치 않게 마련이다.

연애나 결혼에 대한 팬터지는 여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남성들에게도 ‘기업 극화’라는 장르를 빌려 ‘암컷’들을 닥치는 대로 정복해나가는 그들만의 로맨스 팬터지가 엄연히 존재한다. 단지 순결이나 순종을 가치의 주요 덕목으로 교육받았던 여성들의 경우 그 이데올로기적 환경을 구성하는 로맨스 팬터지에 조금 더 익숙하다 할 수 있겠다.

왕자, 공주, 벼락출세의 마법이 픽션에서 논픽션의 논리로 둔갑하게 되면 ‘미녀와 야수’의 관극 경험과 같은 뜬금없는 희극이 발생한다. 자신이 걸어온 삶의 이력에 바탕을 둔 정직한 가능성은 무시한 채 “애기야, 가자!”며 돈을 뿌려줄 젊은 기업가에게 눈을 맞춰두었으니 현실의 조건이나 상황이 우스워질 수밖에. 연애야 착각 속에 전개될 수 있다 치자. 그러나 결혼에 이르기까지 그 환상을 놓지 못하면 결국 비극이 탄생할 수도 있는 것을.

사실 대다수의 여성들은 실제적인 결혼과 로맨스 팬터지를 굳이 분리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시골처녀 같기만 한 친구들도 결혼식장에 들어서면서 자기 곁에 왕자님이 아닌 평범한 신랑이 서 있는 현실에 대해 한숨 짓는 광경을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 양귀신같이 요란하게 차려입은 파티의 주인공이 되니 헛꿈을 꿀 수 있다고 웃어넘길 수도 있겠지만, 그녀들이 결혼식 후에 마주치는 건 다름 아닌 현실이다. 여성에게 부담지워지는 일상의 억압에 본격적으로 노출되는 결혼생활에 따라붙은 로맨스 팬터지는, 실망과 무력감도 은밀하게 부른다.

가사노동과 시댁과의 관계, 뒤이은 출산과 육아에 대한 부담은 충격과 공포의 다른 이름으로 다가온다(고들 한다). 낯선 부담과 고통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여 대처한다면 나름대로 성취와 보람도 얻을 수 있겠지만, 반대의 경우 까딱하다 남은 인생 자체가 길을 잃고 헤맬 수 있다. 우리는 가정생활의 진실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가정’이나 ‘가사’ 시간에 죽어라 외웠던 것은 드라마 ‘아일랜드’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뜨개질, 혹은 삼치구이를 태우지 않고 석쇠에서 뒤집는 법들뿐이었다. 성 관계의 요령이나 피임, 낙태 그리고 유산 혹은 부부싸움에 별거, 이혼과 관련된 지식이나 지혜는 허락되지 않는 것이었다.



나와 같은 미혼의 여성이라면, 앞서 결혼한 또래 친구들이 생활의 고비고비에서 치열하게 씨름하는 모습이 존경스러우면서도 한편 두렵다. 로맨스의 과정이나 그 결과인 결혼이 초래할 수 있는 실망이나 아픔에 대한 각오와 준비부터 다져야 함을 함께 통감하게 된다. 나에게 찾아올 수 있는 가정생활 안에서의 실수나 실패를 스스로의 자리에서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단련해야 할까. 구체적인 방법은 아직 모른다. 그저 자본주의적인 낭만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 연애나 결혼 법칙을 구경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누군가 과연 가르친다고 배울 수 있는 것이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내 옆의 야수가 느닷없이 왕자가 되기는 내 눈의 안경 속에서나 가능하다는 건 알겠다고 대답하겠다.



주간동아 458호 (p5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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