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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불멸의 기록(14)ㅣ펠레

신기의 골잡이 … 22년간 1281골

월드컵·프로축구 리그서 최고 스타로 군림 … 해트트릭 92회, 한 경기서 8골 넣기도

  • 기영노·스포츠평론가 younglo54@yahoo.co.kr

신기의 골잡이 … 22년간 1281골

신기의 골잡이 … 22년간 1281골

현역 시절 골을 넣고 어리아이처럼 좋아하는 펠레.

펠레. 에드손 아란테스 도 나시멘토라는 본명보다 ‘펠레’라는 예명으로 더욱 잘 알려진 축구계의 전설. 1958년 스웨덴월드컵, 62년 칠레월드컵 그리고 70년 멕시코월드컵 등 조국 브라질에 세 번의 우승을 안긴 찬란한 업적도 업적이지만 축구를 예술로 승화시킨 축구계의 영원한 영웅이다.

99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각국 올림픽위원회(NOC)를 상대로 실시한 ‘20세기 최고의 선수’ 투표에서 펠레는 최다 표를 얻었다. 올림픽 출전 경험이 없는데도 1위에 오른 것. 2위는 60년 로마올림픽 복싱 라이트헤비급 금메달리스트인 무하마드 알리가 차지했으며, 84년 LA올림픽부터 96년 애틀랜타올림픽까지 모두 9개의 금메달을 목에 건 칼 루이스는 3위를 기록했다.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 미국 드림팀의 일원으로 참가한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은 4위에 랭크됐고, 72년 뮌헨올림픽에서 7개 등 모두 9개의 금메달을 딴 마크 스피츠가 막차로 ‘넘버 5’에 포함됐다.

58년 월드컵서 17살 나이로 우승 이끌어

펠레는 공을 잡거나 패스할 때, 또는 드리블할 때 창조적인 플레이, 즉 새로운 것을 선보였다. 골문 앞에서는 킬러와 같은 본능을 번득였으며, 패스 시 정확한 판단력과 전설적인 드리블 기술을 가진 한마디로 완벽한 축구선수였다.

펠레는 1940년 10월23일 브라질의 트레스 코라송이스(‘3개의 심장’이란 뜻)에서 태어나 58년 17살의 어린 나이에 스웨덴월드컵에 처음 출전한다. 세계의 축구 팬들은 혜성같이 나타나 눈부신 기술로 월드컵을 빛낸 이 가냘픈 소년의 현란한 플레이에 경탄했다. 펠레는 웨일스와 치른 준준결승에서는 한 골을 넣었으며, 프랑스와 치른 준결승에서는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번개 같은 스피드와 정확한 기회 포착 능력, 뛰어난 지능에다 완벽한 기술까지 겸비한 그는 그야말로 거침이 없었다. 펠레의 재주는 경기를 치를수록 빛을 발해 스웨덴과 치른 결승전에서 멋진 두 골을 기록하며 브라질에 월드컵 첫 우승을 선물했다.



이후 펠레는 브라질뿐만 아니라 세계 축구계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는 선수가 된다. 스웨덴월드컵 이듬해인 59년에 127골을, 61년에는 110골을 각각 기록했으며 펠레가 이끄는 산토스팀은 코파리베르타도레스에서 두 번(61년, 62년), 세계클럽선수권대회에서 두 번(62년, 63년), 그리고 상파울루선수권대회에서 아홉 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펠레는 62년 칠레에서 열린 월드컵에 두 번째로 참가했다. 월드컵은 그의 재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무대였다. 하지만 펠레는 첫 경기에서 입은 부상으로 남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동료 선수들이 두 번째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항상 주요 마크 대상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불운은 66년에도 계속되었다. 포르투갈과 맞붙은 브라질의 세 번째 경기에서 펠레는 들것에 실려 경기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자신의 팀이 예선에서 탈락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펠레는 70년 멕시코월드컵에 이르러서야 다시금 세계 사람들에게 자신의 뛰어난 실력을 펼쳐보일 수 있었다. 그 해 브라질에는 자일징요, 토스타오, 리벨리노, 카를로스 알베르토 등 뛰어난 선수들이 많았다. 세계 축구계는 당시 브라질 멤버를 월드컵 역사상 최강의 ‘베스트 11’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대통령, 해외 이적 못하게 ‘인간 국보’ 선언

멕시코월드컵 이탈리아와의 결승에서 브라질의 월드컵 출전 사상 통산 100번째 골을 넣은 선수도 펠레였다. 100번째 골은 멋진 헤딩슛이었다. “머리로 골을 넣을 때는 특별한 느낌이 든다. 아버지는 한 경기에 헤딩으로만 다섯 골을 넣은 적도 있다. 이는 내가 결코 깰 수 없었던 유일한 기록이다”라고 훗날 펠레는 말하기도 했다. 결승전 다음날 영국 주간지 선데이 타임스는 “펠레의 철자는 어떻게 되는가? 바로 G-O-D이다”라는 의미 있는 헤드라인을 달았다.

펠레는 월드컵에서나 프로축구 리그에서나 말 그대로 전설이었다. 69년 마라카낭경기장의 열광하는 관중들 앞에서 생애 통산 1000번째 골을 성공시켰으며, 한 경기에 5골을 넣은 경우만도 여섯 차례나 된다. 또한 한 경기에 4골을 넣은 건 30번이나 되며 해트트릭은 무려 92번이나 기록했다. 64년 보타포고팀과 한 경기에서는 8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결국 펠레는 통산 1363경기에 출전해 1281골을 넣었다.

77년 미국에서의 프로생활을 끝으로 펠레가 은퇴하자 UN의 브라질 대사 J. B. 핑에이루는 “펠레는 축구선수 생활을 한 22년 동안 어떤 나라의 대사보다도 세계평화를 위해 많은 일을 했다”고 말했다. 나이지리아에서 한창 전쟁이 벌어지던 70년 펠레가 축구 경기를 위해 나이지리아에 도착하자 전쟁이 중단된 예도 있었다. 당시 브라질 대통령은 그가 유럽 프로팀으로 이적할까봐 그를 ‘인간 국보’로 선언하기도 했다. 지금도 산토스의 마라카낭경기장에서는 그의 1000번째 골을 기념해 해마다 11월19일을 ‘펠레의 날’로 정해놓고 축제를 열고 있다.





주간동아 456호 (p84~85)

기영노·스포츠평론가 younglo54@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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