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6

2004.10.21

3차원 뇌 영상장비 개발 도전장

42년 만에 영구 귀국한 세계적 석학 조장희 박사 … “넘치는 자신감” 국내 과학계 새바람 기대

  • 김홍재/ 사이언스타임스 기자 ecos@ksf.or.kr

    입력2004-10-14 16: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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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차원 뇌 영상장비 개발 도전장
    세계에서 최초로 하는 도전을 한국에서 해보시지 않겠습니까?”미국 캘리포니아대학(UC어바인)에 재직하고 있던 조장희 박사(68)는 지난해 가천의대로부터 이 같은 제의를 받고 고민에 빠졌다. 컬럼비아대학에서 파격적인 조건으로 UC어바인으로 자리를 옮긴 지 어언 18년. 사실 그가 고국행을 선택하려면 버려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미국 명문대 교수라는 직함, 안정된 연구 환경, 그리고 ….

    ‘그래도 한국에 돌아가면 밤을 새면서 연구하고, 우리 학생들을 키울 수 있지 않겠는가? 마지막 도전을 조국에서 해보자!’

    뇌과학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 조장희 박사의 42년 만의 귀향은 그렇게 결정됐다.

    9월6일 가천의대와 독일 지멘스가 640억원을 투자하는 뇌과학연구소 창립식이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렸다. 뇌를 3차원으로 보여주는 새로운 영상장비의 개발을 목표로 한 뇌과학연구소 설립이 더 주목받은 이유는 소장을 맡은 조박사 때문이었다.

    PET+MRI 장점 결합 꿈의 장비



    몸속을 들여다볼 때 흔히 사용하는 검사 장비인 ‘X선 단층촬영기(CT)’의 원리를 세계 최초로 규명(1972년)한 조박사는, 1975년에는 뇌를 연구하는 데 꼭 필요한 장비인 ‘양전자방출단층촬영기(PET)’ 역시 세계 최초로 개발해냈다. 그는 국제학술지에 200여편의 논문을 발표한 뇌 영상 분야의 세계 최고의 권위자다. 스웨덴 스톡홀름대학, 미국 UCLA, UC샌디에이고, 컬럼비아대학, UC어바인 등 세계적 명문대 교수로 재직하고, 미국학술원 정회원이기도 한 조박사의 귀국을 놓고 국내 과학계는 우리 뇌 연구 분야가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흥분했다.

    “뇌과학연구소에서 양전자방출단층촬영기와 자기공명영상장치(MRI)의 장점을 결합한 새로운 뇌 영상장비를 개발하려고 합니다. 뇌를 연구하는 데 꼭 필요한 꿈의 장비가 탄생하는 거죠. 뇌가 3차원으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모두 알 수 있게 됩니다.”

    현재 3차원 뇌 영상장비 개발은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그의 말처럼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는 PET와 높은 해상력을 자랑하는 MRI를 결합하는 데 성공한다면 인류의 뇌 질환 정복에 돌파구가 마련될 것으로 예상된다. 치매와 중풍에서부터 정신분열증까지 다양한 뇌 질환의 원인을 파악하고,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체를 구성하는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만능 세포인 ‘줄기세포’를 이용해 질병을 치료하려는 연구에도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다. 올해 초 줄기세포 배양을 위한 인간배아 복제에 세계 최초로 성공한 황우석 박사는 “조박사가 개발할 기기를 사용하면 줄기세포를 이식한 후 체내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돼 이 분야가 획기적으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한국인 과학자인 이 두 거인 과학자가 힘을 모으면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아시죠. 처음 미국에 갔을 때 직접 보고 싶어 뉴욕을 헤맸는데 끝내 못 찾겠더군요. 결국 포기하고 맨해튼 섬을 빠져나가다 돌아보니 그 빌딩만 훤히 눈에 들어왔습니다. 과학자는 열심히 연구하면 바로 평가를 받지 못하지만 결국 누군가는 꼭 알아준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외국생활 탓에 연고가 없어서인지 한 호텔에서 투숙하고 있던 조박사의 모습은 일견 쓸쓸해 보였다. 그러나 그의 말 속에는 혈혈단신으로라도 영구 귀국을 선택하게 만든 과학과 조국에 대한 열정이 가득 차 보였다. 그는 40년을 넘게 지속한 외국생활에 대한 기자의 궁금증부터 풀어줬다.

    “계속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유학 갈 형편이 안 됐는데, 우연히 국제원자력 장학생 얘기를 듣고 원서를 얻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날이 시험을 치르는 날이더군요. 감독관의 배려로 중간에 들어가 시험을 봤는데 운이 좋았던지 합격했더군요.”

    준비는커녕 남들이 한창 문제를 풀던 중에 입실한 그가 합격했다는 사실은 평소에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스웨덴 웁살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 “너는 도대체 언제 쉬느냐”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연구에 매진했다. 여러 대학에서 재직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가 끊임없이 연구 성과를 쏟아내면서 대학들이 계속 그를 스카우트했기 때문이다.

    “연구현장에 뛸 사람 더 불러와야”

    해외에서 오래 생활한 조박사에게 국내 과학계가 배워야 할 점은 없는지 물었다. 그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늦게 연구개발을 시작했는데도 정말 대단한 성과를 내고 있다고 높게 평가하면서도 아쉬움을 지적했다.

    “과학 분야에서 ‘연구’는 항상 양보할 수 없는 우선 순위입니다. 그런데 연구의 중심지가 돼야 할 국내 대학들은 개념을 잘못 잡고 있습니다. 대학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원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 대학들이 좋은 학생들을 모을 생각만 하지 좋은 교수를 모으는 일에 관심이 적다는 지적이다. 그는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교수들이 연구하는 대학, 연구를 게을리 하면 쫓겨나는 대학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박사가 귀국하면서 받게 될 연봉은 겨우(?) 30만 달러(약 3억5000만원)에 불과하지만, 국내 과학계에서는 보기 드문 거액이라 화제가 됐다. 이에 대해 그는 정당한 대우일 뿐이라고 말한다.

    “외국에서 과학자를 데려오려면 정당한 대가를 줘야지 덮어놓고 애국심에 호소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 세계와의 경쟁이 가능합니다. 최근 KAIST에서 외국인 총장을 영입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연구현장에서 뛸 교수를 파격적인 대우로 데려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6·25전쟁 때문에 중학교에 다니다가 생계를 위해 장사를 시작한 소년, 성적이 중간밖에 되지 않아 “네 실력으로는 어림없다!”는 혹평을 듣고도 결국 서울대 공대에 당당히 진학한 청년, 쉬는 날이 도대체 언제냐는 얘기를 들었던 열정적인 젊은이, 그리고 현재 세계적인 석학으로 완숙기에 접어든 과학자는 힘주어 강조한다.

    “제 인생에서 지금까지 마음먹은 일 중에 이루지 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PET와 MRI의 융합장비 개발에도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있습니다. 꼭 뇌과학연구소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국내 과학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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