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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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VS 일본해 … 우리는 이기고 있나

日 해상자위대, 동해 폭넓게 활용 ‘내공 쌓고 주인 행세’ … 러시아인들도 이제는 ‘일본해’로 불러

  • 글·사진/ 블라디보스토크·도쿄=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04-10-14 12: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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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해 VS 일본해 … 우리는 이기고 있나

    블라디보스토그 항에서 지중해식 계류를 한 각국 함정들. 오른쪽부터 한국의 원산함(560), 프랑스의 방드미에르함, 러시아의 우달로이급 구축함(572).

    기자는 9월22일부터 10월3일까지 ‘동해냐 일본해냐’란 화두를 들고, 해사 59기 생도를 태우고 99일간 태평양 일대 연안국을 돌며 원양실습에 나선 순항훈련함대(사령관 오성규 준장)에 탑승해 러시아와 일본 해군을 둘러보는 기회를 가졌다. 기자는 3척으로 편성된 함대에서 기함(旗艦, 사령관이 승함한 배)인 한국형 구축함(KDX-Ⅰ, 3600t) 양만춘함에 탑승했다.

    진해를 출항해 첫 번째 기항지인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던 9월23일 오전 7시쯤, 기자는 장교들과 함께 사관실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다. 위치상으로는 남·북한과 일본으로부터 거의 등거리에 해당하는 독도 북동쪽 북위 38도선 부근의 공해상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사관실의 대형 TV에서는 스카이 위성방송의 YTN 채널이 아침 뉴스를 쏟아내고 있었다.

    가벼운 대화와 함께 식사를 하던 장교들은 YTN의 앵커가 일본 요미우리신문 보도를 인용해, “일본 해상자위대는 북한이 노동미사일을 발사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 황급히 동해로 이지스함을 파견했다고 밝혔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일제히 고개를 TV로 돌렸다.

    동해 VS 일본해 … 우리는 이기고 있나

    원산함·대청함·양만춘함 순으로 블라디보스토크 만에 들어서는 한국 순항훈련함대.

    “11월2일로 예정된 미국 대선을 앞두고 북한이 핵실험을 할 것 같다는 ‘10월충격설’이 떠돌고 있는데 북한이 동해를 향해 노동미사일을 발사한다고? 그렇다면 우리 함대는 계획을 바꿔 진해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바로 작전에 투입돼야 하는 것 아닌가?”

    여러 가지 질문을 던져보았지만 누구도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식사를 끝내고 갑판으로 나온 기자는 무심코 수병들이 모여 있는 좌현 쪽 바다를 바라보다가 한 척의 군함을 발견했다. 아무리 봐도 우리 함대의 배는 아니었다. 곁에 있던 부사관을 붙잡고 “어디 배냐?”고 묻자, 그는 대수롭지 않게 “일본의 이지스 구축함인 묘고(妙高)함입니다”라고 대답했다.



    P-3C기 보유 한·일 ‘8대 100’으로 절대 열세

    맙소사. YTN의 보도는 사실이었다. 일본은 4척의 이지스함을 갖고 있는데 주변국(남·북한)을 자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개 태평양 쪽에 배치해놓고 있다. 그런데 오늘은 동해 한복판으로 집어넣었으니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이 심각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사진기를 들고 나와 묘고함을 촬영한 기자는 이지스함 출현 경위에 대한 추적에 나섰다. 양만춘함은 이미 200km 바깥에서 이지스함의 출현을 알고 있었다.

    동해 VS 일본해 … 우리는 이기고 있나

    ‘맹장’이란 느낌을 주는 일본 해자대 막료장 후루쇼 해장(왼쪽)과 ‘덕장’ 인상의 러시아 태평양 함대 사령관 표드로프 상장.

    바다는 세상에서 가장 넓은 평면이지만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수평선 너머는 볼 수 없다. 1.5m 높이에서는 4.7km, 100m 높이라면 38.5km까지 볼 수가 있다. 양만춘함 레이더는 수면에서 20m쯤 높이에 있는데 어찌 200km 밖의 이지스함을 탐지했을까.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양만춘함과 묘고함이 기동에 들어가면 레이더 파를 쏘는데, 이 레이더 파는 하늘에서 교차한다.

    양만춘함은 전자전 장비를 이용해 허공에서 접촉한 레이더 파를 잡아, 각도 등을 분석해 200km쯤에 함정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양만춘함은 일본 이지스함 레이더 파의 특징을 알고 있으므로 순식간에 200km 밖에 일본의 이지스함이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리고 상대가 망원경으로 탐지 가능한 거리로 들어오자 이 함정에 쓰인 ‘175’라는 숫자를 보고 ‘제3번 이지스함인 묘고함’으로 판단했다. 비슷한 시기 묘고함도 ‘973’이란 숫자를 보고 상대가 한국의 양만춘함이란 것을 확인했을 것이다.

    양만춘함과 묘고함은 22노트(시속 약 40km)라는 매우 빠른 속도로 900야드(약 820m) 거리를 두고 열십(十)자 모양으로 교차했다. 해상에서 900야드는 아주 가까운 거리인데, 두 배는 전혀 감속을 하지 않고 쏜살같이 지나친 것이다. ‘양보는 네가 하라’는 두 함장(艦長)의 빳빳한 자존심 대결. 양쪽 함장은 기자 이상으로 ‘동해냐 일본해냐’란 화두를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전 10시쯤 기자는 다시 비행갑판으로 나왔다가 양만춘함의 100m 상공을 두 차례 선회하다 날아가는 P-3C기를 발견했다. 옆에 일장기가 찍혀 있으니 두말할 것도 없는 일본 해상자위대(이하 해자대)의 P-3C기였다. 오후 2시쯤 또다시 일본의 P-3C기가 나타나 두 차례 선회한 뒤 멀어져갔다.

    이날 일본은 양만춘함에서 일본 쪽으로 180여km 떨어진 동해에 4대의 P-3C기를 띄워놓고 있었다. 북한은 미사일을 발사한다면, 미사일이 떨어질 바다에 함정이나 잠수함을 배치해 탄착 위치를 확인해야 한다. 일본의 P-3C기는 묘고함을 지원함과 동시에 일본 쪽 동해로 접근해온 북한 잠수함이 있는지 여부를 추적 중인 것 같았다. 그러다 한국의 순항훈련함대가 지나가자 날아와 항공 촬영을 하고 간 것으로 추정되었다.

    활력 없는 블라디보스토크 항 … 거대한 구축함은 볼거리

    일본은 100여기의 P-3C를 갖고 있으나 한국은 단 8대뿐이다. 이러니 동해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작전하는 것은 일본 해자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100대 8’이라는 도식이 100대 100으로 바뀌지 않는 한 세계는 동해를 일본해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다음날 아침 함대는 블라디보스토크 항에 입항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블라디(정벌)’와 ‘보스토크(동쪽)’를 더한 것이니, 우리말로 ‘정동진(征東津)’ 정도로 의역할 수 있을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 항은 블라디보스토크 만을 한참 거슬러 올라간 후 다시 그 안에 있는 작은 만인 ‘졸로토이(황금이라는 뜻) 만’에 위치해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만은 한겨울에도 얼지 않으나 졸로토이 만은 ‘꽝꽝’ 언다. 때문에 뜨거운 물을 흘려보내 얼지 않게 함으로써 졸로토이 만을 ‘부동항(不凍港)’으로 유지하고 있다.

    동해 VS 일본해 … 우리는 이기고 있나

    9월27일 블라디보스토크를 출항한 한국 함대는 러시아 함대와 구조 탐색훈련을 벌었다. 러시아의 그리샤 5급 호위함과 한국의 대청함 (오른쪽 배).

    블라디보스토크 일대의 산수와 자연은 북한 해안 지역과 비슷했다. 과거 고구려와 발해의 무대였던 이곳을 1860년 러시아는 그들의 영토로 확정지었다. 냉전 시대 이곳은 외국인과 외지인의 출입이 금지된 군사지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당 부분의 항만이 민간에 불하되었고 출입도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연해주 일대에 이렇다 할 산업이 없다보니 블라디보스토크 항은 활력이 없어 보였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배의 옆구리를 부두에 붙이는 방법으로 배를 계류한다. 그러나 지중해 연안국들은 배꼬리를 부두에 붙이며 계류한다. 러시아는 지중해 연안국이 아닌데도 지중해식 계류를 하는 독특한 나라다.

    함대는 원산함-양만춘함-대청함 순으로 계류에 들어갔다. 부두에는 8400t급인 러시아의 우달로이급 구축함 3척과 마침 그곳을 방문한 프랑스 태평양함대의 호위함인 방드미에르함이 계류하고 있었다. 원산함은 기뢰를 부설하는 함정으로 한국 함정 중에서는 상당히 큰 편(3300t)에 속한다. 그러나 방드미에르함 옆에 계류하자 믿기 어려운 현상이 목격됐다. 방드미에르함보다는 커보였지만 우달로이급 구축함에 비하면 반도 안 될 정도로 작아보인 것이다. 한마디로 ‘족탈불급(足脫不及)’.

    다음날 우달로이급 구축함인 ‘애드미럴 비노그라도프함’을 방문하자 함장인 아흐메로트 대좌(대령)는 함수부에 있는 대공미사일용 수직발사대의 뚜껑을 개폐하는 시범을 보이며 상세히 안내했다. 이 함정은 덩치가 큰 만큼 대형 무기가 많이 탑재돼 있었는데, 대형 무기를 옮기기 좋도록 갑판에 레일을 깔아놓고 있었다. 불행히도 지금은 ‘스러지는 세력’이지만 러시아 해군은 여전히 큰 주먹을 갖고 있었다.

    일 해상자위대 장교들 해양 패권국가 자신만만

    러시아의 배포는 태평양함대 사령관인 표드로프 상장(중장)이 함대 지휘부를 초청해 열린 만찬에서 또 한번 드러났다. 표드로프 상장은 정규 해사 출신이 아닌데도 성실과 노력으로 3성 제독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라고 한다. 덕장(德將)형 인상의 표드로프 상장은 오성규 사령관과 ‘러브샷’을 하기 전 보드카 잔을 높이 들고 한국어로 ‘바다로 세계로’를 외쳐 한국 장교들의 갈채를 받기도 했다.

    배포 큰 러시아의 환대를 뒤로 한 함대는 9월27일 블라디보스토크를 출항해 일본의 혼슈(本州)와 홋카이도(北海道) 사이의 쓰가루해협을 통과해 도쿄까지 가는 4일간의 긴 항해에 들어갔다. 도착 첫날(9월30일) 함대 지휘부는 방위청 건물 안에 있는 해상막료감부(해군본부)를 방문해 해상막료장(해군총장)인 후루쇼 코이치(古庄辛一) 해장(海將, 대장)을 만나는 것으로 일본 해군 탐방을 시작했다.

    첫날부터 일본은 녹록지 않다는 느낌을 주었다. 후루쇼 해장은 옛 일본 연합함대의 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해자대의 기동부대인 호위함대 사령관을 지낸 인물인데, 눈빛이 대단히 강렬했다. 배석한 참모들의 안광도 하나같이 형형했다. 동북아의 해양 패권국가라는 자신감이 없이는 갖기 힘든 눈빛을 일본 해자대 지휘부는 갖고 있었다.

    일본의 자부심은 러일전쟁 때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부수고 항복을 받아낸 미카사(三笠)함을 방문했을 때 또 한번 드러났다. 미카사보존회의 사토 타다시(佐藤雅, 예비역 중장) 이사장은 “일본의 젊은이들이 미카사함을 많이 찾아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말로 그들의 자부심을 드러냈다.

    짧게 둘러본 여행이었지만 동해를 가장 넓게 사용하고, 동해를 무대로 무공(武功)을 쌓은 나라는 일본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 힘들었다. 동해냐 일본해냐. 러일전쟁에 패한 역사가 있는 러시아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러시아인들은 하나같이 동해를 “이폰스키 모례(일본해)로 부른다”고 대답했다.

    ‘이폰스키 모례’와 ‘시 오브 재팬(Sea of Japan)’ ‘니혼가이(日本海)’를 지우고 누가 봐도 객관적인 동해를 세계 지도에 올려놓으려면, 한국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정보도문

    본지는 지난 9월16일자 36~37면 ‘NSC-군 자주국방 충돌 왜 이러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국방연구원 또한 남·북간에 대량살상무기 분야에서 비대칭 구도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랜드연구소 방식으로 연구한 결과를 조작해 남·북한 군사력이 거의 대등하다는 결과를 도출했다’라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국방연구원은 랜드연구소 방식을 그대로 적용한 결과 수치를 남·북한 군사력 비교에 사용하였고, 북한 핵과 화생방 등 비대칭 전력은 전투효과지수 평가 외의 다른 방법에 의해 다루는 것을 적시하였음이 밝혀져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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