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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살 섬마을 집배원 ‘産災’에 운 사연

목포 이춘담씨, 배달 도중 쓰러진 뒤 뇌출혈 … 25년 일하고도 ‘위탁직’ 탓 보험혜택 불가 ‘통보

  • 목포=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74살 섬마을 집배원 ‘産災’에 운 사연

74살 섬마을 집배원 ‘産災’에 운 사연

전남 목포시 고하도 전경과 두 차례 뇌수술 후 요양 중인 이춘담 옹.

전남 목포시 고하도. 바다에선 민어와 농어를 잡고, 갯벌에선 바지락과 꼬막을 캐며 살아가는 어촌마을 고하도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2대에 걸쳐 73년째 고하도에 살며 우편배달을 해온 이춘담(74) 할아버지의 모습을 더는 볼 수 없게 된 것. 8월 우편배달 도중 쓰러진 할아버지는 두 차례에 걸쳐 뇌출혈 수술을 받은 뒤 지금은 대전에 있는 둘째 딸 집에서 요양하고 있다.

2대 걸쳐 73년간 ‘희로애락의 전령사’

이춘담 할아버지의 별명은 ‘고하도 우체국장’이다. 언제부터인가 목포우체국 직원들과 마을사람들이 ‘국장님, 국장님’ 하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1930년부터 48년 동안 우편배달을 해온 선친 이광용 옹이 작고한 뒤 일을 물려받았다. 지난 여름 쓰러지기 전까지 25년간 아침마다 고하도에서 1.5km 떨어진 목포시로 여객선을 타고 나가 우편물을 챙겨온 뒤 섬을 돌며 가가호호 편지와 소포를 전달하는 일과를 반복해왔다.

폭염 탓이었을까, 세월을 속이지 못한 탓이었을까. 8월 중순 이춘담 할아버지는 오토바이에 우편물을 싣고 배달 다니다 두 차례나 쓰러졌다. 유난히 택배 짐이 많았던 8월10일에는 갑작스레 엄습해온 어지럼증 때문에 오토바이에 탄 채로 길 옆 고추 밭으로 나뒹굴었다. 근처에 있는 마을주민 몇몇이 달려와 할아버지를 일으켜세우자 “괜찮다”며 남은 배달을 마저 마쳤다.

그러나 다음날 목포에 있는 병원을 찾은 이춘담 할아버지는 ‘우뇌에 피가 20% 고여 있다’는 진단을 받고 곧장 뇌출혈 수술을 받았다. 수술 3일 만에 좌뇌에도 피가 고여 대전에 있는 병원으로 옮겨 두 번째 수술을 받았다. 마취에서 깨어난 이춘담 할아버지의 첫마디는 “우편배달이 밀렸을 텐데, 어떻게 했느냐”였다.



2대에 걸쳐 73년 동안이나 우편배달을 해온 이춘담 할아버지와 그의 선친에게는 이 일이 ‘천직’과도 같았다. 이들 부자는 폭풍우가 몰아쳐 여객선이 끊긴 날에도 돛단배를 빌려 타고 뭍으로 향했다. 한번은 이춘담 할아버지가 부친을 모시고 돛단배를 빌려 타고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돌풍이 불어 배가 뒤집힌 일이 있었다.

수영을 하지 못하는 부친은 물속에서 우편물 가방을 꼭 끌어안은 채 의식을 잃은 일까지 있었다. 이렇듯 시아버지와 남편이 돛단배를 빌려 타고 위태롭게 뭍으로 향한 날이면 김분단 할머니는 부둣가에 나가 목이 빠져라 이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곤 했다.

4남 4녀인 이춘담 할아버지의 자녀들도 ‘가업’인 고하도 우편배달에 동원되곤 했다. 신문 배달을 도맡아 한 둘째 딸 성화씨는 시집가기 전까지 마을에서 ‘우체국 아가씨’로 통했다. 그는 “할아버지는 어떤 일이 있어도 그날 배달할 우편물은 꼭 그날 마치도록 했다”며 “7살 무렵인가, 비바람 불면서 번개가 번쩍거리는 날 산속에 있는 집들로 우편배달 갔다 오라고 해 울면서 다녔다”며 웃었다.

74살 섬마을 집배원 ‘産災’에 운 사연

이춘담 옹이 집배원 시절 자택 마당에서 찍은 사진.

마을주민들에게 이들 ‘집배원’ 부자는 그저 편지만 전달해주는 단순한 집배원이 아니었다. 까막눈인 마을주민들에게 편지를 읽어주기도 했고, 대신 편지를 써주기도 했다. 마을주민들의 ‘육지 심부름’도 이들 부자의 몫이었다. 이춘담 할아버지와 어려서부터 함께 자랐다는 고하도 주민 조천중씨(71)는 “공과금, 세금 납부나 적금 불입, 물건 구입 등 자질구레한 일을 맡기면 영수증에다 잔돈 몇 십원까지 정확하게 챙겨다줄 정도로 꼼꼼하신 분들이라 모두 믿고 맡겼다”라고 말했다.

여전히 움직이고 말하는 데 불편한 이춘담 할아버지는 대전으로 찾아간 기자에게 힘겹게 입을 뗐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떻게 25년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육지와 섬을 오가며 우편을 배달해왔는지 믿어지지 않지만, 선친이 했던 일이자 선친의 유언이기에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며 회상에 잠겼다.

보험은 안 되고 퇴직금은 가능 ‘이상한 신분’

배달 갈 때마다 반갑다며 시원한 물 한 잔 건네는 노인, 군대 간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대신 써주자 몇 번이고 고맙다고 인사하는 촌부, 그리고 우체국 직원들의 환대가 세월을 버티게 한 힘이 됐다. 돌이켜보면 월남전이 한창이던 60년대 말, 사망통지서일지도 모를 전장에서 날아온 편지들이 가장 전달하기 힘겨운 우편물이었다.

그러나 ‘25년 경력’의 섬 마을 우편집배원 이춘담 할아버지는 산업재해보상보험(이하 산재보험) 혜택을 받지 못할 처지다. 산재보험 신청을 위해 목포우체국을 찾아간 마을주민이 우체국으로부터 “이춘담씨는 우체국이 고용한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산재보험 대상이 아니다”는 답변을 들은 것.

특수지 위탁집배원. 우정사업본부는 산간이나 육지와 멀리 떨어진 도서 지역에 우편물을 배달할 인력을 정규직 혹은 비정규직 집배원으로 하지 않고 ‘특수지 위탁집배원’을 따로 뽑고 있다. 우정사업본부에 따르면 이들은 ‘근로자’가 아니다. 근로계약이 아닌 위탁계약 형식으로 계약 체결을 하고, 급여가 아닌 수수료를 지급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근로자라면 누구나 가입된 고용, 산재, 의료, 국민보험 등 4대 보험이 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현재 전국에는 경북체신청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 1일 기본료 2만500원에 차비 등을 받는 228명의 특수지 위탁집배원들이 오지에 우편물을 배달하고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택배배달을 담당하는 인력과 우편배달을 담당하는 인력을 구분하고 있지만, 특수지 위탁집배원은 우편과 택배를 모두 취급한다. 이들에겐 집배원들이 타고 다니는 빨간색 주머니가 달린 오토바이도 지급되지 않는다.

목포우체국 관계자는 “수량도 얼마 되지 않고 배달 지역도 좁기 때문에 걸어다니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고하도의 한 주민은 “띄엄띄엄 떨어진 집집을 걸어다니려면 하루 종일 걸릴 것”이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90여 가구가 섬 전체에 군데군데 떨어져 있는 데다 날마다 우편물을 가져다줘야 하는 목포공생원은 마을 어귀에서 2km나 떨어진 산속에 있다는 것.

74살 섬마을 집배원 ‘産災’에 운 사연

이춘담 옹을 대신해 고하도 우편배달을 맡고 있는 이장 김운경씨.

다달이 25일씩 우편배달을 해왔지만 ‘근로자는 아니’라는 이춘담 할아버지도 퇴직금은 받게 된다. 우정사업본부는 “특수지 위탁집배원이 업무 수행에 우체국과의 사용 종속관계가 형성됐다면 퇴직급 지급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김수인 목포우체국장 또한 “이춘담 할아버지가 계약 해지를 원한다면 그동안의 근무 경력을 반영해 퇴직금을 지급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퇴직금은 받지만 4대 보험에는 가입되지 않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근로 형태다.

이에 대해 한국공인노무사회 채호일 사무총장은 “퇴직금은 지급하고 4대 보험은 가입시키지 않는 것은 일관성이 결여된 것”이라며 “사용 종속관계가 형성됐음을 인정하는 것은 사실상 근로자임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퇴직금은 물론 4대 보험도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목포우체국 관계자는 “정규·비정규 집배원들은 날마다 1500통가량을 배달하는 데 비해, 특수지 위탁집배원들은 고작 80~90통 정도밖에 배달하지 않는다”며 이들을 근로자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항변했다. 그는 “일흔을 훌쩍 넘긴 노인이 어디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겠냐”며 “오히려 우체국이 이춘담 할아버지를 배려해준 측면이 크다”고 덧붙였다.

74살 섬마을 집배원 ‘産災’에 운 사연

이춘담 옹과 같은 특수지 위탁집배원을 41명 두고 있는 목포우체국.

이춘담 할아버지는 유명인사다. 선친 때부터 오랜 기간 섬과 육지를 오가며 우편을 배달해왔다는 사실이 종종 언론매체를 통해 알려지면서 74년에는 선친이 광주체신청장 표창을, 2001년에는 자신이 전남체신청 표창을 받았다. 마을주민들의 고마움과, 세상의 칭송이 나날이 높아가도 그는 스스로를 ‘작은 영웅’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러한 그가 우편을 배달하다 쓰러지자 ‘우체국 근로자로 볼 수 없음’이란 답변이 날아왔다.

다시 섬으로 돌아가 우편배달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이춘담 할아버지는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들다”며 말끝을 흐렸다.



주간동아 456호 (p42~44)

목포=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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