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6

2004.10.21

발품 팔고 확신 설 때 멀리 보고 묻어둬야

‘묻지마 투자’ 10명 중 9명 낭패 보기 십상 … 수익률 좋은 ‘장기 저축’ 개념으로 접근을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04-10-14 09: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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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품 팔고 확신 설 때 멀리 보고 묻어둬야

    부동산중개소를 찾은 투자자들이 개발 예정지의 지도를 보며 투자처를 물색하고 있다.

    집 없어도 땅은 사라’ ‘부자 되는 데는 땅이 최고다’ ‘지금 이 땅에 돈을 묻어라’….

    최근 서점가에 쏟아져나오고 있는 투자 실용서의 제목을 살펴보면, ‘땅’이야말로 이 시대 최고의 투자 대상인 듯 보인다.

    하지만 땅을 통해 돈을 번 이들은 하나같이 “땅에 대해 잘 모르는 이가 섣불리 뛰어들 분야가 아니다”고 조언한다.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 땅 투자에 성공한 이들의 공통점은 △충분한 사전 지식을 쌓은 뒤 △여유자금을 가지고 △현실성 있는 수익을 노리며 △최대한 발품을 팔아 땅을 구입했다는 점이다.

    평소 꾸준한 관심과 노력 … 여유자금으로 투자

    대전 유성구에서 건설업을 하는 장모씨는 평소의 꾸준한 관심과 노력으로 부동산 투자에 성공한 모범 케이스다. 여윳돈 5000만원을 부동산에 투자하기로 결정한 장씨는 신문의 관련 기사를 스크랩하고, 시간 나는 대로 인근 지역의 매물을 살피러 돌아다니다 눈에 번쩍 뜨이는 기사를 발견했다. 늘 보고 다녔던 그린벨트 지역 땅 인근에 왕복 2차선 도로가 뚫릴 예정이라는 내용이 지역 신문에 실린 것. 그곳은 지적도에 표시돼 있지 않은 잔도로에 둘러싸여 있어 장씨가 내심 발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던 땅이었다. 대전 유성구청 담당과를 찾아가 도로 개통 사실을 확인한 뒤, 장씨는 이 지역 밭 300평을 평당 14만원씩 총 4200만원에 사들였다. 2002년의 일이다. 이 땅은 1년 뒤 그린벨트에서 풀렸고, 신행정수도 이전이라는 프리미엄까지 더해져 값이 급등했다. 지난해 말 장씨는 평당 35만원에 땅을 팔아 1년 만에 6300만원의 수익을 올렸다.



    경기 파주시에서 오래 살아온 전모씨도 잘 아는 지역에 투자해 성공을 거둔 케이스다. 그는 파주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조성된다는 소식을 듣고 예정지 주변 도로가를 중심으로 토지를 물색했다. 관할 시청을 찾아 농지전용 허가 가능성이 있는 토지를 골라낸 뒤 평당 280만원씩 모두 210평을 사들였고, 아파트 단지가 착공되고 나서 농지전용 허가와 건축 허가를 신청해 상가 건물을 지었다. 4억3200만원을 들여 지은 이 건물은 현재 보증금 2억3000만원에 월 임대료 930만원을 벌어들이는 ‘효자’가 됐다. 상가 건물의 시세도 16억~18억원으로, 투자 당시에 비해 6억~8억원이나 올랐다. 부동산 투자의 ‘ABC’를 충실히 지켜 큰 수익을 올린 경우들이다.

    그러나 모두 이렇게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인천에 사는 김모씨는 2002년 평소 알고 지내던 중개업자를 통해 소개받은 도로 개통 예정지 주변의 땅을 구입했다가 이익은커녕 손해 볼까 걱정하고 있는 처지다. 신설 국도가 바로 옆으로 지나가 최소 2~3배의 수익은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말에 선뜻 거액을 투자했지만, 도로는 최종 결정 과정에서 김씨의 땅을 비껴갔다. 투자 가치가 사라진 그 땅을 구매하겠다는 사람이 나오지 않아, 당장 돈이 필요한 김씨는 땅도 처분하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김씨와 같은 사례는 부동산 투자자들에게 일상적이다. 이 때문에 투자 전문가들은 ‘대박’을 노리며 돈을 끌어다가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충고한다. 투자실용서 ‘내 안의 부자를 깨워라’의 저자 브라운 스톤씨(필명)는 “땅이라는 게 모든 사람에게 수십 배의 차익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땅은 환금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자칫하다가는 돈이 장기간 묶여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사겠다는 사람이 나서지 않는 땅은 말 그대로 무용지물 아닌가”라며 “땅에 투자하는 돈은 반드시 당장 쓰지 않아도 좋은 여유자금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십배 차익 보장? … 환금성 떨어져 손해 볼 수도

    더 중요한 것은 발품을 팔아 땅의 가치를 충분히 알아본 뒤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동산 전문가 김현기씨는 “신행정수도와 수도권은 이미 70%가 넘는 땅이 규제에 묶여 있다. 구매자가 직접 땅을 보고 관련 서류를 확인하지 않으면 부동산업자들의 사기에 당할 수밖에 없다”며 “투자 결심이 서면 토지이용계획 확인서를 반드시 확인해 군사시설 농지 산림 수도 하천 등에 해당사항이 있는지 살펴보고, 해당지역에 찾아가 공무원을 붙잡고 개발 계획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어야 한다. 등기부를 떼어 땅이 기획부동산 소유인지 확인하는 것도 필요하다. 서류를 자꾸 보기 시작하면 땅 보는 능력이 커지고, 기획부동산의 사기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고 조언했다.

    2003년 9월 국토연구원이 155명의 교수, 연구원, 공무원, 언론인 등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27.4%는 ‘여유자금 1억원이 생길 경우 어디에 투자하겠느냐’는 질문에 ‘땅’이라고 답했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 전문가 집단들의 의식 속에도 ‘땅이 최고의 재테크 수단’이라는 인식이 뿌리박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개발 재료를 찾아 전국을 헤매거나 단기 시세 차익을 노리며 갖가지 정보를 수집할 수 없는 평범한 사람들은 결코 부동산 ‘투기’에 성공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대신 좀더 수익률 좋은 ‘저축’의 개념으로 투자에 접근하라는 것이 이들의 충고다.

    최근 10년간 보유하던 충청 지역의 땅을 팔아 큰 수익을 올린 사업가 박모씨는 “그동안 내가 사둔 땅의 값은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했지만 초기 투자 비용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언젠가를 내다보며 묻어둘 수 있었다”며 “부동산으로 큰돈을 벌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이 역설적으로 투자 성공의 비결”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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