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2

2004.09.16

‘막나가는’ 멕시코 언론

방송 프로그램에 선정·관음·상업주의 판쳐 … 신문도 연일 누드·범죄 사진 게재 ‘자극 일색’

  • 멕시코시티=한동엽 통신원 boracap@hanmail.net

    입력2004-09-10 18: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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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나가는’ 멕시코 언론

    멕시코 공영방송의 아테네올림픽 중계는 스포츠 중계방송이라기 보다 자극적인 성인방송에 가까웠다.

    2002년 10월 멕시코 방송법이 개정됐다. 이를 계기로 멕시코 언론은 ‘중상모략의 자유까지도 허용받았다고’ 할 만큼 무한대의 자유를 누리게 됐다. 이와 더불어 매체 간 경쟁도 치열해졌다.

    멕시코에는 텔레비사(Televisa), 아즈테카(TV Azteca) 등 4개 민영 방송사와 2개 공영 방송사가 10개의 채널을 가지고 있다. 그중 멕시코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텔레비사가 4개, 아즈테카가 2개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사실상 이 두 방송사가 멕시코 공중파를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일간지의 경우 레포르마(Reforma), 우니베르살(Universal), 호르나다(La Jornada) 등이 유력지로 꼽힌다. 이들 일간지 이외에도 120여개에 이르는 일간지가 발행되고 있다. 후발주자인 레포르마는 상류층을 겨냥한 우익신문으로 자리를 확고하게 다졌다. 반면 호르나다는 지식인층을 겨냥한 좌파 성향의 신문이다. 우니베르살은 생활광고지 구실을 겸하고 있어 가판대에서 가장 빨리 동이 나는 신문으로 꼽힌다.

    ‘쇼걸 콘테스트’ 공중파로 방송

    전 세계 언론사들은 8월 내내 아테네올림픽 취재 경쟁을 벌였다. 멕시코 언론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코미디언들이 눈부시게(?) 활약했다는 사실이다.



    방송 프로그램마다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고 패널로 참석한 코미디언들은 끊임없는 수다와 조소로 스포츠 방송을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바꿔놓았다. 이들의 비웃음과 농담은 전문 아나운서마저 ‘광대’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올림픽 중계방송이라는 본래의 의미는 ‘광대 웃음’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멕시코인들은 이러한 방송 프로그램에 대해 객관적 비판이 결여되어 있다고 비난했다. 멕시코 말 ‘파야사다(Payassada)’는 ‘부적절한 상황에서의 조롱이나 비아냥’을 뜻한다. 6개 방송사 중 올림픽 중계권을 가진 텔레비사와 아즈테카는 경쟁적으로 ‘파야사다’식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거지 차림을 한 코미디언이 한 그리스인에게 구걸을 한 뒤 그의 반응을 즐기는 장면도 방영됐다. 이 코너는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모란시장을 몰래카메라로 찍어 방영하면서 한국인을 ‘개를 먹는 야만인’으로 비난했던 일을 떠오르게 했다.

    ‘막나가는’ 멕시코 언론
    또한 멕시코 방송사들은 올림픽 경기 중계 사이사이에 피에로 분장을 한 코미디언이 그리스 해변에서 반라의 그리스 여성을 망원경으로 감상하는 장면도 내보냈다. 가슴이 다 드러나는 여배우와 상상의 섹스를 벌이는 장면까지 내보내 공영방송인지, 성인방송인지 헷갈리게 했다.

    이러한 선정성과 ‘파야사다’는 멕시코 방송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 텔레비사에서 방영하는 한 일요일 아침 프로그램에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사람들이 나온다. 이들은 한 명씩 무대에 등장해 드레스를 벗고 속옷만 입은 채 진행자와 짧은 인터뷰를 한다. 그러면 패널들이 점수판을 들어 ‘가장 섹시한 여자’를 뽑는다.

    텔레비사의 ‘오트로 로요(Otro Rollo)’는 멕시코에서 가장 인기 있는 쇼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 이 프로그램은 8월24일과 31일 두 주에 걸쳐 최고의 ‘쇼걸’을 뽑는 콘테스트를 방영했다. 한국에서라면 성인 나이트클럽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 멕시코에서는 버젓하게 공중파를 타고 있는 것이다.

    텔레비사의 ‘Big Brother’는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며 일반인들을 스타로 만든 프로그램이다. 미국의 리얼리티 쇼 ‘Big Brother’의 판권을 사들여와 만든 멕시코판 리얼리티 쇼인데, 일반인 남녀들을 한집에서 생활하게 한 다음 참가자와 시청자들의 투표를 통해 최후의 한 명이 남을 때까지 매주 한 명씩 퇴거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공중파에서는 날마다 1시간가량 하이라이트만 편집해 방영하지만, 계열사인 케이블 방송에서는 24시간 참가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엿볼 수 있다. 집안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는 속옷이나 비키니를 입은 채 샤워하는 모습까지 놓치지 않는다.

    ‘막나가는’ 멕시코 언론
    또한 진행자는 이따금 참가자들에게 간접적인 섹스를 요구한다. 다른 참가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남녀가 가상의 섹스를 벌이는 것이다. 반라의 여자가 남자 위에 올라타 교성을 지르는 모습, 농도 짙은 스킨십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자극한다.

    텔레비사는 2002년 월드컵 경기의 중계권을 절반밖에 확보하지 못하자 시청자들의 채널을 고정시킬 목적으로 이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Big Brother’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을 뿐 아니라 텔레비사의 재정 상태까지 호전시켰다. 투표는 유료전화를 이용하는데, 한 통화에 28페소(약 3000원)로 일반 서민의 한 끼 식사비와 맞먹는다.

    한인사회, 언론 오보의 희생양

    현재 4기 참가자들이 대기하고 있는 ‘Big Brother’는 관음증과 선정성, 상업성이 낳은 텔레비사의 ‘효자 프로그램’이 되었다.

    이와 더불어 텔레비사가 자랑하는 일일 프로그램 중 하나가 ‘피어 팩토리(Fear Factory)’다. 상금을 거머쥐기 위해 참가자들은 경기를 벌인다. 경기란 ‘수십 마리의 쥐나 갖가지 벌레들이 돌아다니는 상자 속에 오래 누워 있기’ ‘죽은 생선과 그 생선 썩은 물이 가득 찬 통 속에 들어가 바닥에 있는 고리 꺼내오기’ ‘30cm나 되는 날곱창 먹기’ ‘살아 있는 바퀴벌레 먹기’ 등이다. 가족 시간대인 저녁 8시 공중파에서 방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차라리 ‘폭력’에 가깝다.

    신문 사정을 보자. 가판대에서만 판매되는 타블로이드판 신문들 가운데 한두 개 이상은 살인현장과 피살자 시신, 대형 교통사고의 참사 장면, 여배우의 누드 사진으로 장식되어 있다. 지면을 펼쳐봐도 한 장 건너 누드 사진이나 범죄 관련 사진이 실려 있다.

    멕시코 교민 일간지인 ‘한인매일신문사’의 최병철 편집국장은 “최근 들어서 언론의 힘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면서 “언론인에 대한 협박과 암살을 서슴지 않는 조직 범죄단만 건드리지 않으면 멕시코에서 언론은 거칠 것이 없다”고 말한다. 멕시코 국립인류학 대학에 다니고 있는 오스카르 고르테스 문키아는 “시청자들에게 좋은 정보를 제공하고, 방송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윤리법이나 시민단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멕시코의 불행”이라고 지적했다.

    ‘막나가는’ 멕시코 언론

    관음증의 선두주자가 된 ‘Big Brother’의 메인 화면과 멕시코의 주요 신문과 잡지

    결국 멕시코 미디어에 주어진 ‘경계 없는 자유’는 ‘사회적 의무와 책임’의 자리에 상업주의를 들여놓은 셈이다. ‘사실 확인’에 앞서 ‘잘 팔리는 것’을 먼저 생각하면서 멕시코 언론은 점차 사회적 해악이 되어가고 있다.

    멕시코의 한인사회 또한 미디어의 희생양이다. 한인사회에 대한 악의적인 기사가 부풀려져 ‘한인사회=마피아’란 공식이 만들어졌다. 종종 동양인 범죄자나 피살자는 ‘한인’으로 둔갑해버린다. 멕시코 언론 탓에 한인사회는 멕시코의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셈이다.

    멕시코에서 음주단속이 처음 실시된 다음날 ‘한국인 적발’이 사회면 머릿기사로 대대적으로 보도된 것이나, 8월1일 ‘싱가포르인 금융사기단’이 ‘한국인 금융사기단’으로 둔갑한 것 등이 대표적인 예다.

    멕시코 국립인류학 대학의 가스톤 마르티네스 리베라 교수는 “멕시코 언론의 황색 저널리즘과 상업주의는 합법적 원리를 갖고 있는 하나의 폭력”이라며 “이것이 우매화의 도구가 되고, 현실을 왜곡해가고 있다”며 위험성을 경고한다.

    멕시코 언론은 기로에 서 있다. 주어진 ‘자유’를 만끽한 채 의무와 책임을 방기한다면 멕시코 저널리즘은 거짓과 공허함만 남은 ‘황색 저널리즘’의 오명을 벗지 못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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