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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소용돌이의 비밀을 풀어라

과학자들 “일정한 규칙 찾으면 자연현상도 예측” … 동물 심장근육서 ‘나선형 운동’ 찾아내기도

  • 유지영/ 과학신문 기자 jyryoo@sciencetimes.co.kr

소용돌이의 비밀을 풀어라

소용돌이의 비밀을 풀어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은하계도 소용돌이 모습을 띠고 있다.

물리학 전공자들이 모인 독서토론회에서 난데없이 한 회원이 일본판 엽기만화 ‘소용돌이’를 토론 주제로 등장시켜 주위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이유인즉 만화 ‘소용돌이’에서 다루고 있는 ‘소용돌이 혹은 나선형에 대한 무조건적 집착’이 아메바의 생존본능과 닮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소용돌이’는 충격적이고 엽기적인 내용의 만화로 유명한 만화가 이토준지의 대표작으로, 그의 작품 중에서도 난해하기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평범한 작은 마을에 갑자기 나선 모양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인간성을 상실해간다는 해괴한 이야기가 뼈대를 이루고 있는데 기상천외하다.

사람들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달팽이가 되어 나타나고, 나선 모양이나 소용돌이에 광적으로 집착하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마을 전체가 거대한 소용돌이 모양으로 변해버린다는 줄거리다.

우리 일상엔 수많은 소용돌이 존재

이토준지의 만화에 등장하는 마을이 소용돌이라는 한 패턴의 지배를 받는 것처럼, 자연계도 나선 혹은 소용돌이가 하나의 질서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실제 과학자들은 다양한 자연현상에서 소용돌이라는 공통 패턴을 찾아 그 규칙성을 규명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자연계에서 소용돌이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우리를 포위하고 있는 수많은 소용돌이를 발견할 수 있다. 세면대의 작은 개수구를 따라 물이 흘러 내려가면서 만드는 작은 소용돌이부터, 열대성 저기압이 더운 공기를 먹고 자라난 태풍, 냇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고둥에 이르기까지 소용돌이 혹은 나선 모양은 곳곳에 똬리를 틀고 있다. 재미난 사실은 아메바도 나선형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생명을 위협받을 정도로 쪼개진 아메바는 살기 위해 주변에 흩어진 조각들을 모으는데, 이때 마구잡이로 모으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패턴, 즉 나선형을 그린다.

소용돌이의 비밀을 풀어라

태풍의 소용돌이 모습. 은하계의 소용돌이 모습과 매우 비슷하다.

웟슨에 의해 비밀이 드러난 DNA 사슬도 두 개의 사슬이 나선형 모양으로 서로를 휘감고 있는 형태. 과학자들의 추론에 따르면 블랙홀도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홀을 중심으로 에너지가 나선형 모양으로 소용돌이친다.

소금쟁이가 물위를 사뿐사뿐 걸어다닐 수 있는 것도 다리로 노를 젓듯이 수면을 휘저어 작은 소용돌이를 만들기 때문이고, 새도 꼬리와 날개가 진행 방향과 반대쪽으로 소용돌이를 만들기 때문에 자유롭게 날 수 있는 것이다. 또 축구선수의 멋진 바나나킥도 공 주위에 무수히 생기는 공기 소용돌이가 만들어낸 작품이다.

불꽃 없이 냄비를 뜨겁게 달구는 전자조리기 또한 소용돌이 전류를 이용한 것이다. 25kHz 전후의 고주파 전류를 코일에 통과시키면 냄비바닥 금속 면에 무수한 소용돌이 전류가 발생하는데, 이 소용돌이 전류가 냄비를 통과할 때 냄비의 전기저항에 의해 열에너지로 바뀌어 가열이 되는 것이다. 물론 모두 다른 원인에 의해 만들어지는 소용돌이지만 이들 사이에서 규칙성을 찾아낼 수 있다면, 많은 자연현상의 설명도 가능할 것이다.

과학자들이 소용돌이, 즉 나선형의 패턴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이것이 무질서하게 보이지만, 실은 그 안에 일정한 규칙이 숨어 있고 그 규칙을 찾아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불규칙 속에 숨어 있는 규칙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자연현상을 이해할 뿐 아니라 예측하고 제어할 수 있다는 게 과학자들의 생각이다.

특히 생명체에서 발견되는 소용돌이는 생명현상을 물리학적으로 설명하는 중요한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실제 과학자들은 동물의 심장근육에서 ‘나선형 운동’을 찾아냈다. 아트 윈프리 박사는 심장막 표면에서 나선형의 전기신호가 국부적으로 발생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히고 이것이 심실세동의 원인이라는 주장을 폈다.

심실세동은 심장마비가 일어나기 전 단계로 심장박동이 불규칙한 상태. 영화나 드라마에서 충격을 받은 등장인물이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지는 장면이 바로 심실세동 상태다. 윈프리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발생 원인은 정확하지 않으나, 심장막 표면에서 부분적인 전기신호가 발생하고 이것이 소용돌이 모양으로 휘감긴다는 것이다.

조개껍데기의 무늬도 나선형 패턴

문제는 이렇게 생긴 작은 소용돌이가 점점 커지거나 혹은 개수를 늘려나간다는 것이다. 원래는 심장의 한 점에서 전기신호가 발생해 심장근육 전체로 전달되면서 수축과 이완운동을 하는 것인데, 갑자기 정상적인 신호 전달과 관계없는 소용돌이가 심장 여기저기에서 생기면 심장근육이 제멋대로 움직이게 된다.

과학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이 소용돌이 패턴의 규칙성이다. 국부적으로 소용돌이가 발생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이것이 왜 커지고 심장 전체로 퍼지는지, 또한 이런 과정에 어떤 규칙이 있는지 궁금한 것이다. 특히 소용돌이와 소용돌이가 만났을 때 한쪽 신호가 소멸되거나 통합되기도 하는데, 이 과정이 일어나는 비밀을 밝힌다면 생체전기 신호의 전달과정을 이해하고, 갑작스러운 심장마비의 원인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소용돌이의 비밀을 풀어라

소용돌이 모습으로 엉켜 있는 DNA 구조.

흥미로운 사실은 이런 패턴이 비단 심장근육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과학자들은 아메바 실험에서도 심장에서 관찰한 것과 같은 나선형의 패턴을 관찰했다. 아메바를 생존할 수 없을 정도의 작은 크기로 나누어놓으면 이것들이 다시 합쳐지기 위해 움직이는데, 움직이는 패턴이나 큰 덩어리가 작은 덩어리를 포식해버리는 과정 등이 나선형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불규칙한 움직임에도, 결국 나선형이라는 일률적 패턴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조개껍데기의 다양한 무늬도 결국 나선형의 패턴을 그리고 있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이 나선형에 생명의 비밀이 숨어 있을 가능성을 조심스레 점치고 있다. 혹은 나선형과 같이 자연계를 구성하는 일정한 패턴이 숨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무질서하게만 보였던 것들이 실은 엄격한 질서와 규칙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현상이 가진 패턴과 질서를 이해한다면, 지금까지 제어할 수 없었던 자연현상을 이해함은 물론이고 예측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인간의 기대대로 자연을 소용돌이 혹은 삼각형 등의 일정한 패턴으로 이해하는 날이 온다면, 우리는 많은 것을 바꾸고 수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우선 ‘바람이 부는 대로’라는 말이 가졌던 ‘마음 내키는 대로’ 혹은 ‘자유롭게’라는 뜻을 버리고 ‘자연 패턴 1번 모양, 즉 소용돌이처럼’이라고 표기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주간동아 450호 (p64~65)

유지영/ 과학신문 기자 jyryoo@science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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