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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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대립 빼고 나면 이미 '통일 중국'

중국-대만 연례훈련 또 신경전…활발한 양국간 교류 주도권 잡기 싸움 양상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04-08-27 16: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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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은 8월11일 리졔(李杰) 국방부장이 기자들에게 무심코 뱉은 말 한마디 때문에 떠들썩했다. 리부장이 말한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중국의 인민해방군이 전 군사력을 동원해 대만을 공격한다면 대만군이 구축하고 있는 대만해협 방어선은 5일 반 만에 뚫릴 것이라는 워(war) 게임 결과가 나왔다.”

    리부장의 발언은 대만군의 대만해협 방어 연례훈련인 한광(漢光)연습을 앞두고 나왔다.

    중국어로 5일 반을 ‘오천반(五天半)’이라고 한다. 대만은 대략 한국과 비슷한 150억 달러 안팎(세계 10위권)의 국방비를 지출해왔다. 반면 중국은 300억 달러 정도를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비록 국방비가 중국보다 적다고 하지만 대만은 상당한 첨단 무기를 갖춘 나라인데 ‘오천반’밖에 견디지 못하다니….

    대만 공군기가 530여대인 데 비해 중국 공군기는 2570여대다. 전면전 발발 나흘째 1000여대의 중국 공군기를 격추하며 선전해온 대만 공군의 마지막 전투기가 추락했다. 이로써 대만해협에는 대만 함정만 남게 되었다. 엿새째가 되자 원해(遠海) 작전이 가능한 대만 해군의 함정들도 대부분 수장되고 말았다는 것이 워 게임의 결과였다.



    “대만해협 5일 반에 뚫린다”?

    리부장은 ‘중국이 모든 병력을 동원해 공격할 경우’라는 단서를 달아 워 게임을 설명한 것인데, 언론이 단서를 빼버리고 오천반만 부풀려 보도함으로써 위기감이 고조되었던 것.

    그러나 중국이 모든 군사력을 동원해 대만을 공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중국이 동원 가능한 군사력으로 선제공격을 퍼부으면 대만군은 2주 정도 대만해협을 지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리부장은 ‘중국의 기습적인 제1격으로 대만군의 15% 정도가 파괴된 상태에서 방어전을 펼치면 2주 정도 견딜 수 있다는 워 게임 결과가 있다. 그런데 미국의 증원군이 대만해협으로 오는 데는 한 달이 걸리니 문제다’라는 설명을 이어가려고 했던 것이다.

    리부장의 설화(舌禍)는 왜 증폭되었을까. 이유는 그 시기 중국군이 둥산(東山)연습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산연습은 푸젠(福建)성의 동산도(東山島)라는 섬을 놓고 중국의 육·해·공군이 합동으로 공격해 상륙하는 훈련이다. 한마디로 대만 상륙을 위한 예행연습인 것.

    동산연습을 위해 중국의 국방동원위원회는 인민해방군의 7대 군구(軍區) 중에서 지난(濟南)·난징(南京)·광저우(廣州)의 3개 군구와 북해·동해·남해로 구성된 중국 해군의 전 함대에 동원령을 내렸다. 대만군은 ‘방패’인 한광연습을 들고, 중국군은 ‘창’인 동산연습을 내세워 심각한 신경전을 펼치고 있는 찰나에 리부장이 대만군 패배로 들릴 수 있는 발언을 한 것이다.

    더구나 그때는 대만 독립을 주장해온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이 재선에 성공하고 난 다음이다. 중국은 대만 독립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공언해왔고, 이 공언은 곧 무력을 동원한 강제통일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돼왔으니, 세계가 양쪽의 군사훈련을 대결로 바라보려 했다.

    때마침 AFP 통신은 ‘미군 태평양사령사령관인 파고 해군 대장이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에게 북핵 문제와 대만해협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려면 괌과 하와이 섬 사이에 항모 한 척을 추가로 배치하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했다. 이 건의가 받아들여지면 키티호크 항모 한 척만 갖고 있는 7함대는 항모 두 척을 갖게 된다’는 요지의 보도를 내놓았다. 그러자 미국이 대만을 대신해 중국을 견제하기 시작했다는 해설이 쏟아져나왔다.

    과연 중국과 대만은 군사적인 대립을 계속해나갈 것인가.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은 눈을 대만과 중국 사이에서 이뤄지는 교류 쪽으로 돌려봄으로써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 교류라는 측면에서 본 대만-중국 관계는 한국-중국 관계보다 훨씬 더 밀접하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 농촌의 노총각 중에는 조선족 여성을 불러들여 결혼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러한 ‘국제결혼’은 사실 대만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대만에서는 농촌의 노총각뿐만 아니라 홀아비까지도 대륙 처녀를 불러들여 새장가를 드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것이 엉뚱한 분쟁으로 비화하기도 한다.

    50, 60대의 홀아비가 10여년쯤 새살림을 하다가 사망한 경우 대만 아내에게서 난 장성한 자녀와 대륙에서 온 젊은 새어머니 사이에서 유산 다툼이 벌어지는 것. 새어머니는 대개 대륙에 있는 친정을 생각해 유산 확보에 적극적인 경우가 많다. 이 정도면 대륙과 대만 관계는 군사적인 대치가 없는 한국과 일본 관계보다도 더 얽혀 있다는 느낌을 준다. 어쩌면 ‘하나의 중국(통일 중국)’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인지도 모른다.

    올해부터 중국인도 대만 여행

    중국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한 나라는 대만이다. 상하이(上海) 시내 건물의 상당수가 대만인 소유다. 대륙에 현지처를 두며 두 집 살림을 하는 대만 사업가도 적지 않다고 한다. 쩨쩨하게 개성공단 문제를 놓고 신경전을 펼치는 남북한과는 차원이 다른 교류를 해가는 것이다.

    얼마 전 한국에서는 460여명의 탈북자 입국이 떠들썩하게 보도되었다. 중국과 대만 사이에서는 탈중자(脫中者)나 탈대자(脫臺者)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까. 대만인들은 자유롭게 중국을 방문할 수 있게 된 지 오래이기 때문에 중국으로 탈출해 들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문제는 탈중자다.

    대만인과 결혼하기 위해 대만에 오는 대륙 여성은 합법적인 입국자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많은 중국인이 먹고살기 위해 대만으로 밀항해 들어오고 있다. 50, 60년대 한국인들이 입에 풀칠하기 위해 일본으로 밀항한 것과 비슷한 흐름이 중국과 대만 사이에 형성돼 있는 것이다.

    대만 당국은 이러한 중국인들을 붙잡아 불법 입국자로 처리한다. 그래서 불법 입국한 탈중자를 가둬놓기 위해 7개 수용소를 운영하고 있다. 대만은 불법 입국한 중국인은 무조건 추방한다는 방침이다. 과거 대만과 대륙은 자기 영역을 탈출해 상대 지역으로 들어간 사람은 교환하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몇 년 전부터 중국은 탈중자를 받지 않으려 한다.

    탈중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대만 당국은 2년 전쯤 용단을 내렸다. 중국에 거져줘도 무방한 고물 배 한 척에 탈중자를 태워 대만-중국의 중간선까지 간 뒤, 탈중자들로 하여금 그 배를 몰고 대륙으로 가라고 한 것. 그런데 이 배가 침몰해 버려 상당수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대만 언론은 비인도적인 처사를 했다며 당국을 강하게 비난했다.

    그 후 대만은 탈중자를 처리하지 못해 계속 끙끙대고 있는데, 요즘은 수용소 안의 탈중자들이 ‘왜 우리를 대만인으로 대접해주지 않느냐’며 데모한다고 한다. 3국으로 나온 탈북자를 데려와 하나원에서 교육을 한 뒤 정착금까지 줘가며 국민으로 편입시키는 한국과는 전혀 딴판인 것이다.

    지금까지는 대만인들만 중국을 자유롭게 여행했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중국인들도 대만 여행을 할 수 있게 됐다. 중국 정부가 단체관광에 한해 중국인들의 대만 여행을 허가해주고 있는 것. 이로써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1090달러인 중국 국민들은 2만 달러의 선진국 대만을 합법적으로 여행할 수 있게 됐다.

    때문에 교류 측면에서 보면 중국과 대만이 서로 “독립을 하겠다” “안 된다”며 싸우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보인다. 이러한 대립은 진짜로 싸우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쪽이 통일 중국의 정치적인 주도권을 잡을 것이냐란 문제를 놓고 벌이는 다툼이라는 느낌을 준다. 비유해서 말하면 하나의 중국 안에서 여야가 장차의 주도권을 놓고 공방을 벌이는 것이다.

    통합과 교류가 늦은 것은 오히려 한반도다. 이런 점에서라도 당국은 중국-대만 문제를 진짜로 심도 있게 연구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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