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5

2004.07.29

한평생 茶禪 … 무소유의 ‘茶聖’

16살에 출가해 차와 인연 … ‘다신전’’ ‘동다송’ 등 저술 통해 우리 차 중흥의 기틀 다져

  • 정찬주/ 소설가

    입력2004-07-22 1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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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 차 맛에 푹 빠진 소설가 정찬주씨가 전국의 다인을 찾아 길을 떠난다. 차를 사랑하고 차를 노래했던 선인들의 삶을 더듬어보고 그들에게서 삶의 지혜를 발견하고자 함이다. 다성 초의선사를 시작으로 격주로 연재된다. <편집자>
    한평생 茶禪 … 무소유의 ‘茶聖’
    두륜산의 햇살도 나그네처럼 발길을 재촉하고 있다. 햇살이 물러난 골짜기에는 벌써 산그늘이 머루 알 빛깔로 접히고 있다. 나그네는 서둘러 초의선사(草衣禪師)가 열반할 때까지 머물렀던 일지암(一枝庵) 가는 산길로 오른다. 초의가 차를 마시며 선열에 잠겼던 다정(茶亭)이자, 수행공간이던 일지암이라는 단어가 오늘은 예전과 다르게 다가온다. 한산(寒山)의 시에 일지(一枝)라는 말이 나온다. ‘내 항상 생각하나니 저 뱁새도 한 몸 편히 쉬기 위해 한 가지에 있구나(常念焦瞭鳥 安身在一枝).’ 작은 뱁새도 두 가지를 욕심내지 않고 한 가지에 만족할 줄 안다는 지족(知足)을 말하고 있다. 초의도 한산이 오른 무소유의 경지에 이르고 싶었으리라. 그러나 미망을 좇는 사람들은 하나 이상을 욕심낸다. 집도 한 채가 아니라 두 채, 필요치 않은 군더더기에 집착한다. 나그네는 군더더기를 버리고 사는 게 무소유의 삶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정약용에게 가르침 받고 김정희와는 차로 우정 나눠

    다서(茶書)의 고전인 ‘다신전’과 ‘동다송’을 저술한 우리 차의 중흥조 초의는 정조 10년(1786) 나주목 삼향에서 태어나 고종 3년(1866)에 열반한 선승으로 성은 장(張)씨이고, 자는 중부(中孚)였다. 15살 때 강변에서 탁류에 휩쓸려 죽을 뻔한 순간 부근을 지나던 승려가 건져주어 살아났는데, 그 승려의 권유로 16살에 남평 운흥사로 출가했다. 초의는 불경과 차(茶)와 탱화와 범패를 배우고, 이후 대흥사에서 구족계를 받은 뒤 20대 초반에 이미 불법을 통달하고 크게 깨닫는다. 24살 때는 강진으로 정약용을 찾아가 유서(儒書)를 받고 시부(詩賦)를 익힌다.

    다산은 초의에게 “시를 배우는 데 뜻을 헤아리지 않는 것은 썩은 땅에서 맑은 샘물을 기르려는 것과 같고, 냄새나는 가죽나무에서 향기를 구하는 것과 같다”고 시심의 근본을 당부한다. 그런데 다산은 훗날 유배에서 벗어나 한강변의 고향에 살면서 초의가 제자 된 지 두 달 만에 자신의 대의(大意)를 깨달았다(見明星悟 是弟二月)는 시를 남긴다.

    한평생 茶禪 … 무소유의 ‘茶聖’
    16살의 명민한 초의가 운흥사로 출가한 것은 훗날 다성(茶聖)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적인 인연이 됐다. 야생 차밭이 흩어져 있는 운흥사와 부근의 불회사는 그곳 수행승들에 의해서 다선불이(茶禪不二)의 선풍이 전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곳의 행정구역 지명이 다도면(茶道面)인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초의에게 진정한 다우(茶友)는 추사 김정희였다. 두 사람은 차를 법희선열식(法喜禪悅食)으로 마신 말띠 동갑 지기였다. 추사가 초의에게 차를 보내주지 않는다고 윽박지르는 편지는 웃음을 자아낸다. “어느 겨를에 햇차를 천리마의 꼬리에 달아서 다다르게 할 텐가. (중략) 만약 그대의 게으름 탓이라면 마조의 할(喝)과 덕산의 방(棒)으로 버릇을 응징하여 징계할 터이니 깊이깊이 삼가게나. 오월에 거듭 애석하게 여기노라.”



    이윽고 일지암에 올라 마루에 앉아본다. 암자도 볏짚의 풀옷(草衣)을 입고 있다. 나그네는 문득 초의스님의 옷자락 속으로 들어간 느낌이다. 암자 옆의 누각에 있던 젊은 스님이 초의 가풍을 잇고 있는 여연스님의 ‘반야차’ 한잔을 권한다. 차를 마시자 산길을 오르며 헐떡이던 마음도 저잣거리의 헛된 꿈도 쉬어진다. 초의스님은 말했다. 차의 티끌 없는 정기를 다 마시거늘 어찌 대도를 이룰 날이 멀다고 하는가(塵穢除盡精氣入 大道得成何遠哉)! 그렇다. 차 한잔 속의 향과 깊은 맛에 자신을 놓아버리자. 만 가지 천 가지의 말도 차 한잔 마시는 것 밖에 있지 않다(萬語與千言 不外喫茶去)고 하지 않았던가. 석양의 햇살이 물러가는 두륜산의 먼 산자락이 선경(禪境)에 드는 관문처럼 그윽하기만 하다.

    ※일지암 가는 길

    해남 대흥사 성보박물관 옆에 있는 초의선사 동상을 먼저 들른 다음 곧장 산길을 따라 20여분 정도 오르면 초의선사가 40년 동안 머물렀던 일지암에 다다른다. 문의 061-533-4964



    茶人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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