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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고이즈미, 총리실서 방 빼”?

日 참의원 선거 패배 지지율 30%대 … 말잔치 염증과 ‘깜짝 쇼’ 약발 떨어져 퇴진 위기

  • 도쿄=조헌주 동아일보 특파원 hanscho@donga.com

“고이즈미, 총리실서 방 빼”?

대중의 인기에만 매달려온 정치인, ‘포퓰리스트’로서의 한계인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폭발적 인기 속에 등장한 지 3년 3개월여 만에 퇴진 위기를 맞았다. 7월11일 실시된 참의원(상원에 해당함) 선거에서 그가 총재를 맡고 있는 자민당이 패배했기 때문이다. 선거 직후 고이즈미 총리는 “과반수 안정 의석을 확보한 만큼 퇴진은 하지 않는다”고 퇴진 압력에 쐐기를 박았다. 그렇지만 대중의 인기는 급속히 추락하고 있다. 2001년 4월 총리 취임 직후 80%대를 기록했던 지지율은 참의원 선거 패배 직후 30%대로 떨어졌다. 본인한테야 뜻밖의 일이겠으나 역사에서 포퓰리스트의 말로가 언제나 그랬듯, 조락(凋落)의 계절은 느닷없이 찾아온다.

3년여 동안 각종 개혁 지지부진

‘돈키호테’ ‘헨진(變人)’ ‘외로운 늑대’ 등의 별명을 가진 그가 3수 끝에 자민당 총재에 당선되고, 내각 총리에 올랐을 때 일본인들은 환호했다. 그는 자민당 총재에 출마할 때 “내가 선두에 서서 자민당을 때려 부수겠다”는 자극적인 말을 외치며, 장기침체 속에 개혁과 변화를 바라는 일반인과 당원들의 지지를 한꺼번에 얻었다. 기성 정치인과 달리 어느 파벌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우정성 해체론’ ‘관료왕국 해체론’ ‘우정민영화론’ 등의 책을 통해 줄기차게 개혁을 외쳐왔다. 유권자들이 그를 개혁 추진의 적임자로 여길 만도 했다. 하지만 참의원 선거에서 제1야당 민주당이 자민당 의석을 훨씬 뛰어넘은 것은 자민당 총재인 고이즈미 총리에게 더 이상 속지 않겠다는 유권자들의 의사 표시로 볼 수 있다. 그간 고이즈미 총리가 행한 대표적인 궤변과 실언을 살펴보자.

△“학생 시절 일은 기억하지 못한다. 40년 전 일을 문제 삼는 쪽이 오히려 이상하다.”(2004년 6월)=게이오대학 졸업 후와 런던 유학 중 국민연금을 미납한 사실이 문제 되자 솔직하고 겸허한 답변을 하는 대신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식의 ‘모르쇠’로 일관했다. ‘고이즈미가 그래도 정직하다’는 느낌을 갖고 있던 유권자들이 실망했음은 물론이다. △“인생도 가지가지, 회사도 가지가지, 회사원도 가지가지.”(2004년 6월)=국민연금 미납 사실을 추궁하던 일본 언론매체들은 중의원에 도전했다 떨어진 뒤 의원 비서로 일하던 시절 그가 한 부동산회사에 적을 두고 국민연금 보험료를 낸 사실을 밝혀냈다. 한 후원자가 근무도 하지 않는 그에게 월급과 국민연금 보험료를 지원해준 것이다. 일종의 뇌물이나 마찬가지. 이에 대해서도 고이즈미 총리는 사죄는커녕 “당시 사장은 ‘자네 일은 의원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면서 “회사에 출근한 사실은 없지만 나중에 중의원이 됐으니 사장 말대로 일을 제대로 한 셈”이라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휴일도 없이 일하고도 언제 목이 날아갈지 모르는 보통의 봉급생활자들이 이 말에 분통을 터뜨린 것은 당연했다.

△“이 정도 약속을 어긴 것이 대수냐.”(2003년 1월)=국채 발행을 30조엔 범위에서 억제하겠다던 공약을 지키지 않는 것을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야당의원들이 추궁하자 이같이 발언했다. 공인 중의 공인, 총리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발언으로 지적됐다. △“어떤 일을 가정한 상태에서 하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겠다.”(2002년 1월)=미군의 이라크 공격 이후 전개될 자위대 파견 가능성 등에 대한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의 답변이다. 일국의 총리로서 무책임, 비상식적인 발언의 전형으로 꼽힌다.



고이즈미 총리의 발언은 또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총리실을 출입하는 일본 언론매체 기자들은 날마다 한 차례 정도 특정 사안에 대한 고이즈미 총리의 코멘트를 전한다. 이때 고이즈미 총리의 답이 질문의 취지에 맞지 않는 비논리적일 때가 많다. 그렇지만 대부분 기억하기 쉬운 짧은 답변이어서 일반인들은 인상 깊게 받아들인다. “아픔을 참고 잘 이겨냈다. 감동했다.”(2001년 5월, 부상을 딛고 우승한 스모 선수에 대한 축사) 고이즈미 총리의 말이 아니었다면 너무나 평범한 말이지만 정치인, 그것도 총리의 발언으로서는 파격적이다. 일본 유권자들 가운데는 그런 서민 정서에 어울리는 답변에 매료된 측면이 많다. 2001년 중의원 선거 때 고이즈미 총리가 지원 연설을 하는 장소마다 유권자들이 몰려들었던 이유도 이런 스타일에 기인했다.

그러나 이번 참의원 선거 때는 ‘고이즈미 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고이즈미 총리는 각료와 당직 인사, 정책 결정 등을 할 때 깜짝 쇼를 잘 연출해왔다. 이번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미미한 개혁 성과에 대해 비판적인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방법으로 등장한 ‘북풍’ 조작 솜씨가 대표적이다. 그는 전격적으로 평양을 방문, 제2차 북일 정상회담을 했다. 이어 피랍 일본인의 북한 내 잔류 자녀 5명을 귀국시켰다. 선거 전날에는 피랍 일본인 소가 히토미씨와 평양에 체류 중이던 주한미군 탈영병 출신의 젠킨스씨와 두 딸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재회하는 장면을 연출해내는 데 성공했다.

차라리 “과거 방식이 낫다” 반응도

누가 봐도 선거에 영향을 미칠 사안이었다. 고이즈미 정부는 가족들이 평양에서 이동하는 데 정부 전용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도쿄-평양-자카르타-도쿄 구간을 운행한 민간항공사에 지불한 돈은 6만엔(60만엔)에 불과했다. TV 생중계 효과를 노린 민간항공사 간의 경쟁을 이용한 예산 절감 측면도 없지 않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이라크에서 일본인 5명이 인질로 붙잡혔을 때 피해자 가족이 요르단 암만에 갈 때 정부 전용기로 간 적이 있다. 노골적인 정부 여당의 선전물로 비판받을 것을 두려워해 잔꾀를 부린 것이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북풍’ 등의 영향으로 선거 종반에는 민주당과 자민당의 지지율 차이가 좁혀지기는 했지만 결국 야당인 민주당이 한 석 더 많은 의석을 차지했다. 물론 이번 참의원 선거는 의원 모두가 아니라 절반만 교체하는 것이라서 참의원 내 과반의석은 여전히 자민당-공명당 연립여권이다. 고이즈미 인기 하락 추세가 이어진다면 차기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도시는 물론 지방에서도 대패해 정권을 내놓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도쿄신문은 이번 참의원 득표 상황을 근거로 차기 중의원 선거 결과를 ‘민주 정권 탈취’로 예상했다. 미국처럼 양대 정당화 추세가 갈수록 심해지고 자민당과 고이즈미 정권에 실망한 표가 민주당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민주당이 중의원 480석 중 307석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자민당은 131석, 공명당은 27석을 차지해 양당을 합해도 3분의 1 의석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다. 고이즈미 총리를 대신할 총리감이 자민당 내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어디 그게 말이나 되는가. 정치 세계도 일반 세계와 마찬가지로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측면이 강하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 사람도 달라 보이는 법.

이번 참의원 선거 직전 민주당 대표를 맡은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만 해도 뚜렷한 컬러를 갖지 못해 늘 간사장 일이나 어울리는 만년 2인자 취급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는 성실한 그의 이미지가 오히려 능수능란한 정치인보다 훨씬 더 먹혀들었다는 분석이다. 참의원 승리의 주역으로 떠오른 그에게 당대표 자리를 내놓으라고 할 인물은 당분간 없을 정도로 이번에 당대표 입지를 탄탄하게 굳혔다. 참의원 선거가 패배로 끝나면서 자민당 내 야심가들은 이미 고이즈미 총리를 퇴진시킬 명분을 찾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고이즈미 총리의 예측불허의 정치 행태에 불만을 품은 유권자 사이에는 파벌 간의 ‘견제와 균형’을 통해 총리를 뽑던 과거가 차라리 나았다는 말조차 나온다. 자민당 내에 점증하는 반(反)고이즈미 기류와 일반인들의 냉소적 반응을 보면 고이즈미 총리의 후임자는 당내 파벌 간 협의로 선출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주간동아 2004.07.29 445호 (p52~53)

도쿄=조헌주 동아일보 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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