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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기금’이 유흥업 부흥기금이냐

식품제조가공업소 시설 개선 쥐꼬리 지원 … 룸살롱·다방에 3% 초저리 융자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식품기금’이 유흥업 부흥기금이냐

‘식품기금’이 유흥업 부흥기금이냐

영세 식품업체와 불량식품 단속 과징금으로 만들어진 식품진흥기금이 유흥주점과 다방의 시설 개선자금으로 지원되고 있다.

“다 똑같은 상황인데 왜 유독 만두만 갖고 난리인지….”

6월 초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불량만두’ 파동을 바라보며 각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 식품위생 관련 직원들이 이구동성으로 내뱉은 말이다. 당시 경찰 단속에 적발됐던 만두소 제조공장들은 모두 종업원이 5명도 안 되는 영세업체들. 일선 단속직원들은 경찰처럼 식품 보관과 가공 과정에서의 비위생성을 기준으로 실제 단속에 나선다면 법망을 피할 수 있는 업소가 극히 드물다고 단언한다. 국내 식품제조가공업소의 80% 이상이 종업원 10명 미만의 영세업체인 까닭이다.

당시 ‘불량만두’ 논쟁의 도화선이 된 자투리 단무지 자체는 불량식품이 아니었다. 경찰은 자투리 단무지를 만두소에 들어갈 무 재료로 사용하기 위한 세척 과정에서의 비위생성과 보관 불량을 문제로 삼았다. 대기업들의 만두가격 인하 경쟁 속에서 만두소 납품업소와 하도급 만두 제조업체들은 살아남기 위해 ‘공짜 무’인 자투리 단무지에 눈을 돌렸다. 만두소 제조업체 입장에선 평소 버려지던 자투리 단무지가 무료나 초저가에 구할 수 있는 ‘대용 무’로 손색이 없었기 때문. 문제는 단무지 세척을 통해 새로 탄생한 무에는 무 본래의 맛이 없다는 사실이다.

기금 관리·운용 지자체장이 맡아

한강에 투신자살한 만두 제조업체 사장이 죽기 전 “납품 단가를 낮게 맞추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기업이 하라는 대로 해왔는데 대기업이 발뺌하니 (하청) 만두공장만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절규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국민에게 미안하다”는 그의 유언은 자신이 만든 만두가 위해성이 있는 불량식품이어서가 아니라 좀더 좋은 재료를 쓰지 못한 데 대한 자책이었다. 이 모두가 우리 식품산업의 영세성과 왜곡된 구조가 부른 참담한 결과였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는 식품산업의 슬럼화가 진행되는 동안, 영세한 식품제조가공업체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저가 경쟁에 경종을 울리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빼돌려 다른 곳을 지원하기에 바빴다. 식품위생 관련 과징금으로 모은 수천억원의 식품진흥기금을 금고에 그냥 처박아두거나, 지자체의 생색내기용으로 사용해버린 것. 일부 지자체는 이 기금을 유흥주점과 다방, 단란주점 등에 시설 수리비로 주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이기도 했다.

‘식품기금’이 유흥업 부흥기금이냐

검찰에 적발된 공업용 색소 고춧가루.

식품진흥기금은 정부가 1988년 ‘식품위생과 국민영양의 수준 향상’에 쓸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만든 기금(식품위생법 제71조)으로 식품 관련 업체에서 징수한 과징금과 식품위생단체의 출연금, 기금운용 수익금 등을 재원으로 한다. 이중 주 수입은 식품 관련 업체들이 낸 과징금. 과징금을 거두는 주체가 지자체이다 보니 기금의 관리·운용 또한 시·도지사와 시장, 군수, 구청장에게 맡겨져 있다.

법은 기금의 사용범위를 제한하고 있는데, 그중 식품제조가공업소의 영업시설 개선을 위한 융자사업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들에게 저리의 자금을 부담 없이 빌려줘 청결한 시설을 갖추게 함으로써 전반적인 먹거리 산업의 안전성을 유지하고 영세성에서 벗어나도록 하겠다는 취지인 셈이다. 시·도지사는 조례로 융자 사업의 기준과 이자, 거래 금융기관 등을 정하고 시장 군수 구청장이 각 지역 업체의 신청을 받아 올리면 금융기관의 심사를 거쳐 기금을 지원하게 된다. 3%대의 이자와 최소 1년 거치 3년 상환의 조건은 영세 식품업체들에겐 단비와도 같은 존재다.

하지만 각 지자체가 시설 개선 융자 사업에 쓴 기금은 해마다 전체 기금 3300억원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300억원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지난해 쓰고 남아 이월된 돈을 제외하고 순수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만이 융자 사업에 지원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식품진흥기금은 해마다 수백억원씩 불어나고 있다. 쓰이지 않고 적립금 형태로 이월되는 금액이 많은 까닭이다. 심지어 지난해 인천시는 12억원의 과징금을 거두고도 시설자금 융자 사업에 단 한푼의 돈도 배정하지 않았다.

‘식품기금’이 유흥업 부흥기금이냐

만두파동 당시 식품안전법 제정을 촉구하며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민단체 회원들

가뭄에 단비 오듯 배정된 융자사업기금 또한 실제 영세 식품제조가공업소에는 거의 지원되지 않았다. 2002년의 경우 총 융자 건수 1620건 중 제조가공업소에 나간 것은 70건(4.3%)에 그쳤고, 2003년에는 1358건 중 61건(4.4%)에 지나지 않는다. 인천시를 비롯해 울산시, 강원도, 제주도는 2002년과 2003년 제조가공업소에 기금을 단 한푼도 융자해주지 않았다. 울산시 보건위생과 한 관계자는 “대부된 기금의 회수를 금융기관이 전적으로 책임지다 보니 대출조건이 무척 까다로운 게 사실”이라며 “담보가 없으면 근본적으로 융자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실제 제조가공업소에 대한 융자 건수가 있는 시·도의 경우도 대부분 지역 우량업체가 기금을 싹쓸이하고 있는 실정. 영세업소의 과징금으로 조성되고, 그들을 돕기 위해 만든 기금이 오히려 우량업체의 사업 확장에 사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융자 90%는 일반음식점 지원

그렇다면 제조가공업소로 가지 않은 나머지 융자금은 어디로 갔을까. 융자 총 건수의 90%가 지원된 곳은 바로 일반음식점들. 식당과 중국집, 술집 등 우리가 흔히 찾는 대중음식점에 기금의 대부분이 융자됐다. 문제는 일반음식점에서 사용되는 이 기금의 용처다. 원래 기금은 반드시 기금을 모금한 목적에 맞게, 즉 식품진흥기금의 경우는 ‘식품위생과 국민영양의 수준 향상’을 위해 사용돼야 하지만 내용을 보면 완전히 단체장의 생색내기용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장향숙 의원(열린우리당)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모 광역자치단체의 A음식점은 2004년 3000만원을 연리 3%에 빌린 후 영업장 장판, 바닥 타일 교체, 도배 등 노후시설의 전면 개·보수와 간판 교체에 사용했으며, B음식점도 같은 금액을 빌려 출입문과 업소 벽 개·보수에 사용하는 등 대부분의 음식점들이 식품위생이나 청결, 영양 수준의 향상과 관계없이 기금을 사용하고 있었다.

심지어 룸살롱과 같은 유흥주점과 단란주점, 다방에도 ‘피 같은’ 기금이 초저리로 융자됐다. 2002년과 2003년 전국적으로 유흥·단란주점에 지원된 건수만 43건. 광주시는 2002년 70건의 융자 총 건수 중 13건이 유흥·단란주점이었다. 이들 주점들은 이 기금으로 화장실을 초호화판으로 꾸미고 인테리어를 바꾸는 데 사용했다. 광주시 보건위생과 한 관계자는 “1999년 이전에는 유흥·단란주점에 기금대출을 막아왔으나 99년 규제완화 조치로 담보가 있는 식품 관련 업체, 업소에는 모두 기금을 빌려주고 있다”며 “기금의 본뜻을 살리기 위해선 더욱 근본적인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휴게음식점으로 지정돼 본격적인 음식의 요리가 금지된 다방에 지원된 융자 사업은 모두 92건. 기금의 대부분이 다방 안에 있는 의자·테이블 교체와 벽 공사 등에 사용됐다. 제조가공업소에 대한 융자 건수가 단 한 건도 없는 제주도는 지난 2년 동안 휴게음식점에 20건, 유흥·단란주점에 4건의 기금을 대출해줬다.

결국 만두소 제조업체들과 같은 영세업체들이 낸 과징금이 식품위생과 국민의 영양과는 전혀 관계도 없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지원된 셈이다. 실제 이번 만두 파동의 실마리를 제공한 만두소 제조업체 W식품은 지난 2년간 세 번에 걸쳐 수천만원의 과징금을 해당 지자체에 납부했으나, 정작 식품진흥기금의 지원은 단 한푼도 받지 못했다.

장향숙 의원은 “융자 조건을 크게 완화하거나, 융자 사업을 아예 없애고 영세업소를 직접 지원하는 등 영세 식품업체들이 식품위생과 주변 청결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더욱 새로운 모색과 정책적 고민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주간동아 444호 (p44~45)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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