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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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참수’당할 자 누구인가

이슬람 참수형은 극악한 범죄에 대한 일벌백계 의미 … 민간인 살해 행위 오히려 참수형 감

  •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이슬람문화

    입력2004-07-01 1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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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년 말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에서 아랍어와 이슬람 문화를 한참 배우고 있을 때 친구들과 참수 현장에 간 적이 있다. 금요일 합동예배가 끝난 뒤 모두 모여든 광장 한 켠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할라스(끝남)’라 불리는 공개된 장소에 모인 군중은 “알라의 위대함”을 연이어 외치며 용서받지 못할 한 인간의 죄과를 증언하고 있었다. 차마 목을 자르는 장면을 보지 못했지만 당시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최근에는 참수형 거의 사라져 … 사우디에서만 가끔 실시

    평화를 표방하는 이슬람에서 왜 특정범죄에 대해 참수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고집할까? 이슬람을 배우면서 동의하지는 않아도 점차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살인이나 가정파괴범 같은 사회적으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범죄에 대해서 끔찍한 공개처형을 통해 사회 구성원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고, 이를 통해 범죄를 예방해 공동체의 공동선을 보호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슬람에서 인권의 개념은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지 죽을 사람의 몫이 아니다. 이슬람은 어차피 제거돼야 할 범죄자를 일벌백계로 엄하게 처벌하면 공동체의 더 많은 사람이 안전해지고, 범죄가 줄어든다고 주장한다. 비밀리에 진행하는 사형 같은 처벌은 진정한 인권의 본질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아랍권은 서구사회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범죄 발생률이 낮다. 그리고 이슬람 사회에서 참수형은 실제로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57개 이슬람 국가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 정도에서만 가끔 해외토픽에나 날 정도로 참수형을 실시한다.



    그렇지만 이번 김선일씨를 납치하여 살해한 ‘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유일신과 성전)’ 조직의 끔찍한 만행은 이슬람법이나 종교적 가치체계와 전혀 상관이 없다. 우선 이슬람법에서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는 중죄인이 아닌 비무슬림 민간인을 살해한 것 자체가 이슬람법의 심각한 위반이다. 그야말로 행위 자체가 오히려 참수형 감이다. 무장하지 않고, 자신을 공격하지 않는 민간인은 누구나 종교와 이념적 차이에 상관없이 이슬람에서 보호받는다.

    ‘유일신과 성전’으로 알려진 테러조직이 김선일씨를 납치해 이슬람에서도 사라져가는 극단적 방식을 사용해 살해한 이유는 이슬람식으로 포장해 미국과 그 협력세력에 대한 강력한 응징의지를 보이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조직의 지도자는 미국에 의해 오사마 빈 라덴 다음으로 위험한 테러리스트로 지목돼 1000만 달러가 넘는 현상금이 걸린 요르단 국적의 알 자르카위다. 그는 팔레스타인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이스라엘에 의한 가혹한 팔레스타인 탄압과 그들이 벌이는 민간인 학살을 일상으로 보고 자라며 이스라엘과 그를 비호하는 미국에 대해 깊은 적개심을 키워온 것으로 보인다.

    김선일씨는 미국과 그 협력세력을 제거하고 무조건적 응징을 하겠다는 자르카위 조직의 불행한 희생자일 뿐이다. 이슬람에서 사용하는 참수라는 극단적이고 반인륜적인 방식을 통해 자르카위는 자신의 반미성향을 다시 한번 드러냈지만, 이슬람 세계의 동의나 동정을 얻는 데 실패했다. 수니파 이슬람 지도자인 알 아즈하르의 그랜드 세이크를 비롯해 전 세계 이슬람 지도자들이 한결같이 이번 사건을 가장 반(反)이슬람적인 범죄행위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결국 김선일씨는 세계에서 가장 위협적인 테러조직의 성격이나 의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우리 정부의 무능과 무대책, 인간이기를 포기한 잔혹한 반미보복 세력에 의해 어처구니없이 선택된 불행한 희생자다. 현지 정보도 초보적 수준에 머물러 있고 준비 상태도 부족한 상황에서 3000명이나 되는 우리의 고귀한 군대를 결코 이라크로 보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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