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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아! 김선일 …

여보세요~ 한국에 ‘외교’ 있습니까

김선일씨 사건 통해 외교·안보 구멍 여실히 드러나 … 재외국민 보호 위한 시스템 가동 급선무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황일도·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여보세요~ 한국에 ‘외교’ 있습니까

여보세요~ 한국에 ‘외교’ 있습니까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왼쪽)이 6월23일 고 김선일씨의 빈소를 방문해 유족들을 위로하고 있다.

이라크 주재 한국 대사관. 임홍재 대사와 9명의 직원들은 지난 4월과 5월, 한국 교민 60여명을 지키기 위해 수시로 그들의 동선을 체크했다. 대사관 한 관계자는 교민들 명단을 작성해 이메일이나 전화로 주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고 김선일씨도 대사관의 ‘보호’ 대상.

그러나 대사관의 이런 해명은 곧바로 의문을 불러온다. 결과적으로 김선일씨가 3주 동안이나 무응답으로 일관했음에도 대사관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대사관 측은 “18명의 가나무역 직원들의 경우 김천호 사장이 컨트롤했고, 그가 김씨 실종 및 피랍 사실을 숨겼다”고 주장한다.

교민들도 실종 알았는데 대사관은 몰라?

그러나 현지 교민과 가나무역 직원들은 대사관 측의 이런 해명에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가나무역 관계자들과 교민들 가운데 일부는 이미 6월 초부터 김씨 실종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지 교민 김모씨는 한 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이미 6월 초 김씨 실종 사실을 알고 있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가나무역에 근무했던 허문수씨가 가나무역 직원들과 전화통화를 했을 때 김씨의 실종 사실을 말해주었다는 언론보도도 잇따랐다. 바그다드의 교민들 상당수가 김씨 실종 사실을 알고 있던 그 시각, 우리 대사관은 이메일을 통해 교민들의 안전을 챙기고 있었던 셈이다. 생사를 건 20여명의 비즈니스맨들에게 대사관 측은 20여 차례에 걸쳐 철수를 요청했다며 근거 자료를 제시하기도 했다. 대사관의 해명대로라면 김씨 피랍 및 피살 사건에 대해 대사관은 전혀 무관한 셈이다.

이런 대사관을 바라봐야 하는 한국의 교민들은 서럽다. 해외에 사는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도와주는 다른 나라 대사관의 역할과 기능을 볼 때 서러움은 더 커진다. 대부분의 각국 대사관과 영사관은 자국민 보호를 첫 번째 임무로 생각한다. 물론 우리 해외공관도 이런 임무를 강조한다. 그러나 교민들이 체감하는 우리 대사관의 역할과 기능은 대사관의 해명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대사관 및 영사관 직원들은 우리 국민들이 사고를 당했을 때 외면하거나 오히려 사고 당한 자를 질책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물론 여러 가지 근거 자료는 사고의 책임을 당사자들에게 돌리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김사장은 김씨 실종 이후 네 차례에 걸쳐 대사관을 찾았다. 김사장은 외교통상부(이하 외교부)에 전달한 진술서에서 “이때 실종 사실은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네 번의 방문은 의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특히 방문 시기가 김씨 피랍사건과 관련한 중요 고비와 일치한다는 점이 의혹의 핵심으로 떠오른다. 처음 대사관을 방문한 6월1일은 실종을 직감한 시점이다. 두 번째 방문일인 7일은 비공식적으로 피랍 의혹을 인지한 시점이자 개인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김씨의 행방을 찾기 시작한 때다. 세 번째와 네 번째 방문일인 10일과 11일은 테러조직에 의한 납치라는 의혹에 대해 구체적인 정보를 입수하던 시기이자 본격적으로 협상을 시작한 상태이기도 하다. 김사장은 외교부에 제출한 진술서에 ‘6월10일 (이라크 내) 미군 서비스업체인 AAFES(미국 육군 및 공군 복지기관) 측에 김선일 매니저 억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타진함’이라고 기록했다. 그럼에도 대사관 측과는 왜 의논하지 않았을까. 현지 교민들은 대사관 측과 모종의 암묵적인 약속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그러나 대사관 측은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조사단 측에 김사장은 “총영사, 영사, 영사과 직원만 만났다”고 설명했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상당수 해외교민들은 공관원들을 골프와 술을 접대하는 상대로 보고 있다. ‘교민 따로 대사관 따로’는 한국 외교의 현주소다. 무엇이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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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6월23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김선일씨 피살 사건과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중동 전문가 태부족 … 아랍어 가능한 외교 인력 20여명뿐

우리 외교는 국가간의 교섭 등 눈에 보이는 실적에만 치중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재외공관의 대민 서비스는 자연스럽게 등한시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이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외교부 내에서 해외교민 문제는 3D 업무로 인식돼 기피 대상이다. 외교부의 직제만 보더라도 ‘재외국민 영사국’은 이른바 하위 서열이다.

해외공관의 경우 이런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외교부 직원들의 선호지역은 단연 미국이다. 다음이 서유럽이나 호주 등 선진국 순이다. 동남아나 중국, 아프리카, 중남미는 자녀교육과 언어 문제로 별로 가고 싶지 않거나 갈 사람이 제한된 지역이다. 중동도 마찬가지. 1200명에 가까운 외교 인력 가운데 아랍어가 가능한 인력은 20여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고시 출신이 아닌 특별 채용된 단순 어학 자원이라서 승진에 한계를 느끼고 외교부를 떠나기 일쑤다. 아랍에 독자 인맥을 쌓은 것으로 평가받는 박웅철 전 이라크 대사관 1등 서기관은 중동 현지에서 10여년간 고시 출신 대사들에게 시달린 끝에 지난해 말 사표를 제출했다가 외교부의 강력한 만류로 현재 보류돼 있다. 아랍어가 가능한 대사급 인력 역시 단 한 명에 그친다는 사실도 이번 사태를 통해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됐다.

가장 절정의 코미디는 아랍어도 할 줄 모르는 외교부 협상단이 급조돼 김선일씨가 살해당한 시각에 협상을 하겠다고 비행기를 타고 암만으로 향했다는 대목이다.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아무래도 외교부 아태중동국이나 중동지역 대사관으로 발령 난다는 것은 외교부 주류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벼랑 탈출을 위해 현지 외교가 아닌 국내인사들과 ‘편지 외교’에 몰두한다”고 전했다. 일본 외무성이 중동 외교 인력을 중동으로 유학 보내 밑바닥 인맥을 쌓게 하고, 이후 지역 전문가로 키우는 점을 본받아야 할 것이라고 충고한다.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역시 최근 들어서야 중동전문가 양성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외교의 문제점은 실상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시스템과 매뉴얼이다. 외교부와 각국 공관원들에게 파병 관련 협상을 비롯한 외교 현안과 테러 방지 및 교민 안전까지 책임지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다. 재외국민 테러·납치·실종 처리에 관한 대응 매뉴얼을 마련해 시스템을 가동하는 것이 급선무다. 사안의 경중에 따라 곧바로 일원화된 범정부 차원의 대책위가 작동할 수 있는 하드웨어가 구축돼야 한다. 그러나 우리 외교 현실은 훨씬 동떨어졌다. 김씨 피랍 사실을 처음 확인한 6월21일 정부 대응과정 속에 문제점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날 오전 5시10분 외교부 국외테러대책본부가 가동했고, 오전 8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가 개최됐다. 오후 3시15분에는 청와대 대책회의가 열렸고, 4시를 전후해 이해찬 국무총리 지명자가 주재하는 대(對)테러 대책위가 열렸다. 이어 오후 10시 외교부와 NSC 합동대책위가 열리는 긴박한 상황이 연출됐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회의에서 정작 김씨의 ‘생사’에 대해서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때문에 내놓은 대책은 모두 공염불에 그쳤고, 이는 다음날 그대로 드러났다. 22일 오후 10시, 노무현 대통령은 정부 합동대책회의에서 희망 섞인 보고를 받았다. 2시간30분여 전 협상 기한이 연장됐다는 알 아라비야 방송 자막에 근거, 실무팀이 협상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보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시각 김씨는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된 뒤였다. 회의와 말만 무성했지 정부 전체의 컨트롤 타워는 보이지 않았다. 정부에는 국가 대테러활동 지침에 따라 총리 주재의 대테러 대책위가 있다. 그러나 이번에 제대로 작동했는지 의문이다.

대책회의와 말만 무성 … 생사조차 확인 못하는 수준

시스템의 부재는 국가기관의 유기적인 협조를 방해했다. 한나라당 박진 의원 측은 6월24일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고 한동안 멍한 상태였다. 박의원 측은 김씨 피살사건과 관련해 국정원에 가나무역과 김사장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 돌아온 것은 “적절한 질문이 아니다”는 의외의 답변이었다. KOTRA도 같은 요청에 “이라크 현지에서 활동해 정보가 없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관련 부서가 아니라서 모른다”고 답변했다. 교민이 테러조직에 끌려가 20여일 넘게 피랍된 상황인데도 정부 부처는 그가 몸담고 있던 회사와 사장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파악하지 못했음을 스스로 입증하는 추태를 보인 것이다.

청와대는 이런 외교·안보 라인의 정보체계와 공조시스템 전반에 대해 감사원의 총체적인 조사를 희망했다. 청와대 측은 감사원의 감사대상 기관을 외교부와 국방부, 국정원, NSC라고 명시적으로 밝혔다. 특히 NSC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논란이 점증하고 있어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기대된다. NSC 이종석 차장의 경우 참여정부 외교정책의 핵심이다. 그는 외교·안보 정보를 총괄 종합,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역을 맡고 있다. 국정원과 외교부를 사실상 지휘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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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1일 국가안전보장회의 이종석 사무차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김선일씨 피랍사건 관련 긴급 당정협의에서 현지상황 및 정부대책 등을 보고했다.

NSC는 각 안보부처에서 올라오는 정보 보고를 모두 확인, 대책을 수립하고 외교부·국정원·국방부 등과 조율한다. ‘알 자지라 비디오 공개 이후 파병 방침 재확인’ 같은 내용은 명목상 국방부가 총대를 멨지만 사실은 NSC가 주도한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국방부가 ‘따랐을’ 가능성이 높다. 외교 안보에 관한한 NSC가 하는 일은 무한대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상황에서 보듯 NSC의 역할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김씨가 싸늘한 주검으로 열사(熱砂)에 내팽개쳐 있던 그 시각, 노대통령에게 생존을 보고한 기관 가운데 하나가 NSC다.

해외정보를 총괄하는 국정원도 책임 소재 대상이다. 우리 군이 이미 파병돼 있고, 교민과 상사 주재원 등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현재 이라크에 나가 있는 우리 정보기관 직원은 단 1명. 반면 미국의 경우 수백명이 넘게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동안 현지 정보망을 구축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신경을 쓰지 못한 점이 지적 대상이다. 정보활동이 제대로 이뤄졌다면 김씨 납치를 예방할 수 있었고, 납치 후에라도 소재 파악 및 협상에 성과를 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특히 여당인 우리당에서 문제제기가 활발하다. 감사원은 이전에도 ‘평화의 댐 사업’과 ‘훈령조작 사건’과 관련해 국정원을 감사한 전례가 있다. 6월25일 저녁 외교부가 AP통신과의 통화사실 시인 직후 문희상 의원은 “지금은 외교부에 대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도 진상은 다를 수 있다”는, 해석하기에 따라선 상당히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외교·안보 라인 수술 불가피 … 상황 수습 시간은 줘야

김씨 피살은 한국 외교와 안보에 대한 중대 도전이다. 여론은 국가의 권위를 훼손한 담당자들의 적절한 징계를 요청하고 있다. 물론 APTN의 피랍 사실을 무시한 외교부 관계자들도 징계 대상자로 분류된다. 책임자를 엄선, 징계를 할 경우 국민적 공분도 다스릴 수 있고 사태 수습에도 도움이 된다.

이 때문에 정치권은 그동안 곧잘 ‘상황 중 문책’이라는 물타기 카드를 꺼내들었다. 언론의 냄비근성과 국민들의 ‘빨리빨리’ 정서가 만든 이런 흐름이 이번에도 잡힌다. 이미 반기문 외교부 장관과 고영구 국정원장의 경질설이 언론에 나돌고 네티즌들도 일벌백계를 주장한다. 여론대로라면 NSC 이차장도 징계대상. 그러나 상황논리로 보면 이는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경우에 따라 사태를 더욱 꼬이게 할 수도 있다. 조직을 책임진 수장과 실무진들에게 상황을 수습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는게 원로 관료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시스템 정부 구축을 주창해온 노대통령은 김씨 피살을 계기로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총선 승리를 계기로 안정적인 집권 2기의 틀을 확보하려던 노대통령은 복귀한 지 한 달여 만에 최대의 난관에 봉착한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노대통령의 변화무쌍한 지도력은 외교·안보 라인의 대폭적인 수술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 같다.







주간동아 442호 (p16~19)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황일도·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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