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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광장 | 서용선 ‘미래의 기억’展

전쟁과 범죄 가슴 아픈 탄성

전쟁과 범죄 가슴 아픈 탄성

전쟁과 범죄 가슴 아픈 탄성

젊은 병사들, 2004, 캔버스에 아크릴.

“한 개인이 겪는 속수무책인 신체적 고통, 그것이 진짜 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TV나 신문에서 젊은 병사의 얼굴을 볼 때, 대신 내가 거기 있었을 수도 있다고 느껴질 때, 무섭습니다. 그 상황에서 국가와 민족, 사상이 개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1990년대 초 단종의 죽음을 억울한 분홍빛으로 그린 ‘노산군(단종) 일기’로 많이 알려진 작가 서용선이 서울 광화문 일민미술관과 노화랑에서 오랜만에 큰 규모의 개인전을 열고 있다(7월18일까지). 전시명은 ‘미래의 기억’. 다소 사이버틱하고 낭만적으로 들리는 제목의 전시장에 들어서면 누구나 숨이 턱 하고 막히는 경험을 한다.

검은색 화면에 군복과 철모를 착용한 흰색 해골의 영정(감상을 위해 설치한 전시벽들 때문에 마치 영안실이 이어진 장례식장에 선 느낌이다). 바그다드 하늘에 사선으로 내긋는 포탄, 전쟁포로가 된 수치심보다 당장의 추위에 떨고 있는 사막의 포로들.

우리는 미래에 오늘 우리가 벌여놓은 추악한 전쟁과 범죄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미래는 우리의 현재, 그리고 과거이기 때문에.

그가 고 김선일씨 사건이나 이라크 상황의 악화를 예견하고, 개인전에 맞춰 이라크 전쟁을 소재로 한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과거를 그렸음에도 그의 그림들은 미래를, 어쩌면 정확히 김선일씨의 죽음을 예견한 듯 보인다. 가슴 아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전쟁과 범죄 가슴 아픈 탄성

사막의 밤(포로들), 2004, 리넨 위에 아크릴.

그는 90년대 중반을 지나며 전쟁을 소재로 다루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중인 1951년에 태어난 그를 안고 모친은 몇 차례나 한강을 넘나드는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 그 뒤에 보따리를 든 올망졸망한 누이들이 있었다. 전쟁 후 미아리고개 근처에 살던 작가는 끊임없이 모친과 누이들한테서 전쟁과 피난길의 무용담을 들었다. 그것은 작가에게 형상이 되었고, 신화가 되었다.

한국전쟁에서 신화로 넘어간 작가는 신화연구가인 이화여대 정재서 교수와 함께 문자 이전의 세계를 탐구하고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한다.

“저 자신 동양 신화를 제대로 교육받은 적이 없어 낯설었지요. 그러나 인류가 문자를 가진 시기는 얼마나 짧습니까. 역사화를 한다고 했지만 역사를 다룬다는 것 자체가 불완전한 작업이지요. 그에 비해 고대 유적으로 남은 암각화나 반구대에 남은 형상들을 보면서 삶을 기록하려는 인간의 처절한 노력을 직접 느낄 수가 있었어요.”

신화의 세계에서 ‘세 발 달린 까마귀’도 그리고, ‘머리가 길쭉하고 어깨에 날개가 달린 채 알에서 태어난 사람’도 그렸다. 그는 신화 작업에서 꽤 재미를 느꼈던 모양으로, 비장한 역사화와 달리, 색면의 마티에르는 가볍고 투명해졌으며, 형태는 자체로서 만족스럽다. ‘머리 길쭉한 사람’이나 ‘날개 달린 문요어’에는 유머가 넘친다.

전쟁과 범죄 가슴 아픈 탄성

우민국, 2002, 캔버스에 아크릴.

“신화가 제게 그림 그리는 자유를 준 것은 확실해요. 역사화는 문자라는 제한이 있고, 서구 역사화의 형식이 주는 부담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풀렸다’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다시 그는 노근리 사건과 탈북 동포들의 죽음과 이라크전이라는 역사로 돌아왔지만 이전의 단종 연작과는 확연히 다르다. 굴다리 밑에 숨어 있다 미군의 기총소사를 맞은 노근리 주민들은 신화 속에서 ‘억울한 희생’의 아이콘이 되었고, 미군의 기관총은 사악한 자연의 재앙처럼 보인다.

바그다드 하늘에 스텔스 폭격기가 등장하는 ‘폭격’은 자체로서 묵시록적 풍경이면서 암구대에 삶과 죽음을 처절하게 기록했던 선사시대 인간의 손짓, 몸짓과 닿아 있다.

전쟁과 범죄 가슴 아픈 탄성

폭격, 2004, 캔버스에 아크릴.

“전쟁은 총으로 서로를 겨눠가며 싸우는 것, 저 너머에 있어요. 낯선 기후, 혹독한 훈련, 이유 없는 명령, 전쟁이 무엇인지 모른 채 그 속에서 우왕좌왕하다 단지 거기 있었다는 이유로 죽어가는 사람들, 그것이 전쟁이지요.”

신화의 세계를 돌아서 서용선은 이제 역사와 문자, 그리고 CNN과 ‘알 자지라’가 은폐하거나 말할 수 없는 것, ‘미래의 기억’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것은 죽어 있으나, 살아 있는 형상이다.

Tips | 서용선

1951년 서울에서 태어남.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와 동대학원을 나왔고, 현재 서울대 교수. 단종, 동학혁명, 임오군란 등 역사화를 많이 그렸다. 민중미술과 또 다른 길에서 한국 사회와 민중들을 그리고 있으며, 지금 경기 양평에 살면서 생태와 환경 관련 전시에도 자주 참여한다.



주간동아 442호 (p8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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