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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 ‘천공의 성 라퓨타’

상상의 날개 달고 신나는 공중전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상상의 날개 달고 신나는 공중전

상상의 날개 달고 신나는 공중전
몇 년 전부터 미야자키 하야오의 옛 영화들이 의무방어전을 치르는 권투선수처럼 생기 없이 극장가에 나타났다가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천공의 성 라퓨타’도 아마 비슷한 경로를 밟으며 사라질 듯하다. 이미 볼 사람들은 비디오와 DVD로 다 보지 않았던가.

그러나 작은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지직거리는 이미지로 이 영화를 처음 접했던 팬들이라면 극장에서의 관람이 절대 손해 보는 짓은 아닐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들은 모두 일정한 수준의 스케일을 요구한다. 따라서 영화관에서 보는 그의 영화들은 같은 영화를 비디오를 통해 보았을 때와 의미 자체가 다르다. 피아노 편곡으로 들었던 곡을 원래의 4관 편성 관현악곡으로 듣는 기분이랄까.

영화의 배경은 유럽의 어떤 나라인 것 같은 정체불명의 공간이다. ‘키키의 마녀 수업’이 그랬던 것처럼 ‘천공의 성 라퓨타’의 공간적·시간적 배경은 불분명하다. 분위기는 19세기 정도로 느껴지지만 괴상한 골동품 같은 비행 기계들이 날아다니고 그들의 역사도 우리가 알고 있는 실제 유럽의 그것과 다르다. 어떻게 보면 미야자키 하야오는 일본인들 특유의 서구 취향만 슬쩍 빌려와 자기만의 유럽을 창조했다고 할 수 있다.

영화는 광산에서 견습 기계공으로 일하는 소년 파즈가 하늘에서 내려온 신비스러운 소녀 시타를 구출하면서 시작된다. 시타가 가지고 있는 비행석을 노리는 공중 해적들과 정부 비밀 요원들로부터 달아나던 그들은 고대 과학의 비밀을 감춘 채 하늘에 떠 있는 신비스러운 섬 라퓨타에 도착하게 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수많은 다른 영화들에서 라이트모티브처럼 반복되는 주제들은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도 핵심을 이룬다. 구식 비행 기계에 대한 애착, 복고 취미, 그리고 이들과 은근히 불협화음을 이루는 기계문명에 대한 경고와 환경주의. 아마 그가 꿈꾸는 이상향은 털털거리며 매연을 내뿜는 이 구닥다리 기계들이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푸른 숲으로 가득 찬 자연이 아닌가 싶다.



주제가 어떻건, 영화는 잘 쓰여진 19세기 모험 소설처럼 박진감 넘치고 로맨틱하며 결백하다. 파즈와 시타처럼 올곧은 주인공들과 공중 해적들의 희극적인 캐리커처의 조화도 훌륭하다. 손에 땀이 날 정도의 적당한 서스펜스를 품고 있지만 필요 이상으로 폭력적이거나 잔인하지도 않다. 이 정도면 거의 이상적인 가족 오락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비행이다. 그것이 비행석을 이용한 신비스러운 초자연현상이건 불가능한 물리학적 조건을 슬그머니 무시하고 날아다니는 구닥다리 비행이건, ‘천공의 성 라퓨타’는 구식 2차원 셀 애니메이션이 도달할 수 있는 비행의 궁극에 도달한다. 그리고 그것은 땅에 붙어 살 수밖에 없는 우리들에게 꿈의 극이기도 하다.





주간동아 434호 (p88~89)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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