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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장학금’ 재수생 위한 돈잔치?

대학 등록 뒤 재수 준비하는 신입생들도 수혜 … 예산 맞추느라 인원 늘리기 ‘방만운영’도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이공계 장학금’ 재수생 위한 돈잔치?

‘이공계 장학금’ 재수생 위한 돈잔치?

우수 과학기술 인력 육성을 목표로 만들어진 ‘이공계 국가 장학금’이 일부 신입생들의 반수 자금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험실에서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이공계생들.

정부가 과학기술 인재 육성 정책의 하나로 이공계 대학생들에게 주고 있는 ‘이공계 국가 장학금’이 방만하게 운영돼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주간동아’ 취재 결과 드러났다. 이에 따라 이공계 지원방안을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각 대학에 따르면 2003년 선발된 ‘이공계 국가 장학금’ 대상자 가운데 상당수가 1년 만에 성적 미달 및 휴학, 계열 이동, 자퇴 등의 사유로 장학금을 받지 못했다.

이공계 국가 장학금은 ‘우수 학생들이 의과대 등 특정 분야로 진학하는 것을 줄이고, 학비 부담 없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함으로써 과학기술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2003년 신설된 것. 우수한 성적으로 이공계 대학에 입학한 학생에게 재학 기간 동안 등록금과 기성회비 전액, 매 학기 일정 금액의 도서구입비까지 지원하고 있다. 단 재학 중 각 대학이 정한 기준 성적에 미달하면 지급이 중지되고, 3회 미달하거나 자퇴·휴학 등 학적 변동이 생길 경우 자격이 상실된다.

문제는 명문대 재학생 가운데 상당수가 이 단서 조항에 걸려 장학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울대의 경우 2003년 이공계 입학생 1899명 가운데 904명이 ‘이공계 국가 장학금’을 받았지만 한 학기 만에 152명이 장학금 계속 지급 기준 학점 2.4점을 넘지 못해 지급을 중지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2학기에 성적 미달자를 탈락시키고 새로운 ‘교체자’로 명단을 바꾸었지만, 올해 2학년에서 이공계 장학금을 받는 학생은 823명으로 지난해에 비해 80명가량 줄어들었다.

2003년 308명이 이공계 장학금을 받았던 한양대의 경우에도 올해까지 계속 장학금을 받는 학생은 159명에 그치고, 2학기에 교체된 학생을 포함해도 252명이다.



상당수 학생들 1년 만에 자격 박탈

2003년 1학기 1차 장학금 대상자가 각각 267명, 250명이었던 연세대와 고려대의 경우에도 50여명의 학생이 한 학기 만에 최소 학점(3.5점)이 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에 입학한 학생 가운데 상당수가 이처럼 장학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는 이유는 대부분 대학 등록 후 다음해 입시를 새로 준비하는 소위 ‘반수(대학에 적을 걸어두고 재수를 하는 것을 일컫는 신조어)’에 뛰어들기 때문.

‘주간동아’가 서울 각 대학에서 입수한 장학금 중지 사유 자료를 살펴보면 이 같은 사실을 곧 확인할 수 있다. 서울의 한 명문 공대 한 계열의 경우 성적 미달로 지급 유보된 학생 37명 가운데 0.00점을 받은 학생이 3명에 이르는 등 12명의 학점이 1.00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1.50을 넘은 학생은 9명에 그쳤다. 시험을 거의 치르지 않고는 받기 어려운 성적이다.

또 다른 계열의 자료를 보면 휴학으로 지급 중지된 학생 가운데 단 2명만이 군 입대로 휴학했고, 다른 18명은 모두 특별한 사유 없이 일반 휴학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공계 장학금’ 재수생 위한 돈잔치?
각 대학에서도 이 같은 사정을 잘 알고 있다. 서울 한 대학의 장학담당 교직원은 “학기 초부터 ‘시험을 안 봐도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느냐’ ‘한 학기 휴학했다 복학하면 어떻게 되느냐’는 등의 문의 전화가 숱하게 걸려왔다. 학교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국가에서 전액 지원하는 장학금인데 대상자를 탈락시키려는 학교가 어디 있느냐. 그런데도 자꾸 학생들이 떨어져나가는 이유는 스스로 받을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일단 명문대에 입학해 시간을 번 뒤 장학금을 지원받아 의대, 치대, 한의대에 입학하려는 ‘똑똑한’ 재수생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공계 육성 장학금이 오히려 우수 학생들의 의대행 재수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막대한 국가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 ‘이공계 국가 장학금’ 대상자에게는 수업료와 기성회비 전액이 지급되기 때문에 한양대 이공계 학생이 1년에 지원받는 금액은 804만6000원에 이른다. 연세대 학생들은 1년 평균 783만2000원, 국립대인 서울대 학생들도 528만원을 받는다.

교육부가 올해부터 수도권 소재 대학 신입생 가운데 수능시험의 수리영역 및 과학탐구 영역에서 모두 1등급 성적을 거둔 이들에게는 교재구입비 명목으로 연 100만원을 추가 지급하기로 함으로써 지원 금액이 더 많아졌다. 이렇게 막대한 돈을 받은 뒤 다른 계열로 학적을 옮길 경우 막대한 국고 손실이 불가피한 것이다.

‘이공계 장학금’ 재수생 위한 돈잔치?

상당수 이공계 신입생들이 학교에 등록한 후 재수를 선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의 한 재수 학원에서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재수생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이공계 장학생 가운데 재수학원에 등록하거나 의대·한의대로 진학한 학생을 추적해 장학금을 회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당분간은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정부는 올해도 이공계 신입생 3875명에게 216억1000만원을 지급하기로 하고, 이미 1차 학생의 선발을 마친 상태다.

이 때문에 무분별한 장학금 지급에 대해 이공계 내부에서부터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울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박상욱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은 “이공계 장학금의 상당액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같은 방식의 지원을 되풀이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이공계를 육성하려면 열악한 환경에서 연구에 전념하고 있는 이공계 대학원생에 대한 장학금을 확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양대 공대 4학년에 재학 중인 오모군도 “고등학생들이 이공계 지원을 꺼리는 이유는 등록금 부담 때문이 아니라 졸업 후 진로가 불안하기 때문”이라며 “등록금이 훨씬 비싼 의대, 한의대에 학생이 몰리는 이유를 제대로 알고 있다면 신입생에게 장학금을 쏟아붓고 졸업생과 대학원생은 외면하는 현 정책을 당장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지 이공계에 지원한다는 이유만으로, 너무 많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이 돌아가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4월30일 현재 서울대 신입생 이공계 장학금을 받게 된 인원은 948명. 추가 신청자 54명까지 포함할 경우 이공계 전체 신입생 가운데 70% 정도가 전액 장학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른 대학들도 수시 입학생과 추가 신청자를 포함하면 연세대 500여명, 한양대 480여명, 고려대 260여명 등이 전액 장학금 수혜자가 될 전망이다.

미달 사태가 속출하고 졸업 후 취업 등 사회 진출에 이공계 못지않게 소외당하고 있는 인문 계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 연세대 문과대학을 졸업하고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는 김진희씨는 “국가 기술력 발전을 위해 이공계에 장학금을 지원한다고 하는데 그 많은 인원이 졸업 후 다 기술 분야에 뛰어들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또 이공계 졸업생이 취업이 안 된다고 하는데 문과 계열 학생들보다는 훨씬 유리한 게 현실인데, 왜 이공계 학생들만 특혜를 받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분노했다.

“정원 축소하고 우수 학생 집중 지원해야”

이 같은 문제점은 사실 이공계 장학금 시행 초기부터 예상돼왔다. 교육부가 2003년 이공계 장학금을 신설했을 때 선발 기준은 고교 내신 수학, 과학 평균 석차가 상위 20% 안에 들고, 수학능력시험의 수리·과학 탐구 영역이 모두 1등급(수도권)이거나 2등급(비수도권)인 자였다. 하지만 이 기준에 맞는 신입생 지원자가 1512명에 그쳐 3500명을 선발하고자 했던 당초 의도에 못 미치자 부랴부랴 선발 기준을 완화했다.

이에 따라 수도권 소재 대학의 경우 지원자격은 고교 전 학년 수학, 과학 평균석차가 각각 상위 30% 이내, 수능 자연계열 수리·과학탐구 영역 가운데 한 영역이 1등급이고 다른 영역이 2등급 이내인 신입생으로 완화됐고, 비수도권 소재 대학의 경우 고교 전 학년 수학, 과학 평균석차가 각각 상위 30% 이내이고 수능 수리·과학탐구 영역이 각각 3등급 이내인 신입생까지 장학금을 받게 됐다.

이렇게 확대를 했는데도 대상 인원을 제대로 채우지 못해 여러 공과대학들은 지난해 3~4차례씩 ‘이공계 무상 장학금’ 지원 신청을 받아야 했다. 실력 있는 이를 선발해 장학금을 지급한 것이 아니라 미리 책정해놓은 예산에 맞추어 범위를 계속 넓히는 방식으로 방만하게 운영한 것이다. 이에 따라 ‘우수한’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해 ‘국가 경쟁력을 제고하도록’ 하겠다는 당초의 의지는 상당 부분 퇴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이공계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우수 학생들에게만 지원을 집중하고, 장기적으로 이공계 정원을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삼성전자 이윤우 부회장은 최근 한국산업기술재단 3주년 기념 심포지엄에 참석해 “이공계에 지원하는 인력은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다. 문제는 이공계 기피 현상이 아니라 우수 인력이 몰려들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200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전체 대학생 대비 이공계 학생 비율’이 26.3%인 반면, 한국은 무려 41.7%나 됐다. 2004년에도 전국 대학 신입생 가운데 이공계 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이 39.2%에 이른다.

하지만 교육부는 수수방관하고 있다. 교육부 학술연구진흥과 관계자는 “2003년 장학금 선정자 가운데 전국적으로 약 80%의 학생이 계속 장학금을 받고 있다. 구체적인 수치를 주면 기자들이 이를 왜곡 보도하기 때문에 자료는 줄 수 없다”며 “이공계를 살리기 위해 좋은 뜻에서 시작한 사업인데 왜 자꾸 비판만 하려고 드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주간동아 434호 (p46~48)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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