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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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대북관 정말 변했나

용천 주민 돕기에 적극 나서는 등 변화 바람 … 朴心 열렸지만 당내 보수파 경계론 만만찮아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4-05-06 14: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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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 대북관 정말 변했나

    4월2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연찬회에서 박근혜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4월27일 한나라당은 17대 국회에서 추진할 법안과 관련한 검토자료를 만들었다. 정책위원회에서 만든 이 자료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남북관계발전기본법’을 단계적 추진 법안으로 분류했다는 점이다. 16대 국회 때 임채정 의원(열린우리당)이 발의한 이 법안은 통치행위로 간주돼온 정부의 대북활동에 대한 법적 근거를 제공, 투명성을 높이고자 하는 목적이 골자. 한나라당은 그동안 ‘남북관계는 법보다 정치적 역학관계로 풀리기 때문에 법 제정은 시기상조’라며 반대해오다 이번에 전향적으로 돌아선 것. 정책위 한 관계자는 “대북정책이 통치행위의 영역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법제화돼야 한다는 차원에서 국회 내 논의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이는 ‘4·15’ 총선 뒤 변화의 흐름을 타는 한나라당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보기에 부족함이 없다.

    총선 뒤 한나라당은 ‘편향된 보수로는 더 이상 설 땅이 없다’는 시대적 흐름을 받아들이면서 진보진영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변화와 개혁’이라는 용어도 당내에서 자연스럽게 오르내릴 정도가 됐다. 그 가운데 대북정책은 가장 큰 변화의 시험대에 올라 있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당 차원의 대북 지원활동을 벌인 적이 없다. 국민의 정부 시절에는 대북 현금지원에 대한 반대뿐 아니라 현물도 사용처를 확인해야 한다는 ‘깐깐한’ 입장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용천 폭발사고 직후 변화된 자세가 흘러나왔다. 4월25일 김형오 사무총장은 “용천동포 돕기에 당이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태도를 밝힌 것. 그 과정에서 해프닝도 벌어졌다. 김총장은 북한 용천동포 돕기 모금운동과 관련해 기자들과 대화를 나누다 ‘북한 정부’라는 표현을 썼다. 한나라당에서는 듣기 힘든 이 표현을 기자들이 놓칠 리 없었고 바로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김총장은 “북한이 국가보안법상에는 국가가 아니지만, 남북교류협력법상의 용어였다”고 해명했다.

    총선 때도 ‘남북평화통일시 개발’ 등 전향적 공약 제시

    한나라당의 대북정책에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온 사람은 박근혜 대표다. 1950년대생 70년대 학번인 그는 ‘보수’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그러나 누구보다 열린 마음으로 대북정책에 접근, 한나라당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박대표의 대북관은 남북공동발전론을 토대로 삼는다. 영토적, 정치적 통일 외에 안보상 위협이 제거된 상태에서 교류 왕래 투자 등을 통해 경제적 공동체를 형성, 통일의 초석을 까는 것도 이 발전론의 한 축이다. 남한의 권력자를 아버지로 두었던 박대표의 대북관은 아버지(고 박정희 대통령)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북한의 권력자였던 김일성을 아버지로 두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매우 ‘호의적인’ 관계(상자기사 참조)를 유지하며 화해와 협력의 장을 열겠다는 것도 아버지에게서 배운 외교이자 정책이라는 게 측근들의 분석이다.

    박대표는 5월3일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정동영 의장과 만나 “초당적 대북정책 기구를 만들자”고 제의했다. 이에 앞서 박대표는 4월23일 “정부 당국이 허락한다면 북한을 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남북관계 진척이나 북한의 국제사회 진출에 최대 장애요인으로 작용하는 북핵 문제를 해결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이른바 특사로서의 역할을 자임한 것이다.



    박대표는 또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와 관련, 매우 시사적인 발언도 했다. “지금 상황에서 철폐는 안 되고 보완 문제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고 밝힌 것. 수구 보수 이미지로 비쳤던 한나라당의 대표로서는 내놓기 힘든 얘기들이지만 박대표는 무난하게 소화했다. 한나라당 H의원은 “이회창 전 총재와 최병렬 전 대표 등이 박대표를 보면 뭐라 할지 궁금하다”며 격세지감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윤여준 여의도연구소장은 “박대표가 대북정책에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했으니, 기본 자세만큼은 많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한나라당의 변화는 이미 지난 총선 때 흐름이 감지됐다. 한나라당은 4월1일 ‘50대 공약’을 발표했다. 총선 당시 탄핵과 박풍, 노풍(老風) 등으로 눈길을 끌지 못했지만 지금 와서 보면 ‘과연 한나라당 공약인가’라는 의문이 떠오를 정도로 전향적인 정책들이 눈에 띈다. 한나라당은 당시 ‘이산가족 만남의 광장, 남북 공동시장, 교역센터 등 교류 협력이 진행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며 ‘남북 접경지대에 평화통일시(市)를 개발하겠다’고 공약했다. 또 대북투자 기업에 대한 세제지원 확대, 민간경협 투자에 대한 투자보험제 등 경협 활성화 방안 등과 관련한 공약도 내놓았다.

    한나라당 대북관 정말 변했나

    4월27일 열린 한나라당 주요 당직자회의.

    그러나 한나라당의 이런 변화가 생산적인 남북관계를 형성할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 않다. 민주노동당이나 우리당과 차별성 없이 경쟁적으로 대북 지원에 나설 경우 대북정책의 균형이 깨질 수 있다는 게 첫 번째 우려. 일방적으로 평양 기류만 살핀다는 지적이 역효과를 불러올 소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이런 우려는 이미 현실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나라당 내 대표적 보수론자인 정형근 김용갑 홍준표 의원 등은 벌써부터 평양 기류를 살피는 당지도부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 태세다. 박대표의 열린 대북정책에 대해 한 인사는 “대북문제를 선점, 지도자로서 모양을 갖추려는 의도로 읽혀진다”며 정치적 저의를 경계했다. 이 인사는 또 박대표의 대북관에 지지 의사를 보내는 소장파 인사들에 대해 ‘기회주의자’라고 비판했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의 변신은 ‘반대 목소리’의 톤이 과거보다 낮아지는 정도의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 것이란 지적이 많다. 당의 정체성과 지지세력의 성격상 대북정책의 기본 방향까지 바꾸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박대표의 발목을 잡는 족쇄로 작용한다. 극우와 진보가 공존하는 당을 안고 가야 하는 박대표로서는 특별한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박대표의 한 측근은 “박정희 대통령은 10%의 약속에 90%의 확인이라는 원칙으로 나라를 이끌었고, 박대표는 10%의 약속에 50%의 확인으로 당을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말한 것은 실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박대표는 2002년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말한 것은 지켜야 한다”는 박대표의 지적에 대해 김위원장도 공감했다고 한다. 박대표는 과연 당의 환골탈태를 골자로 하는 대북정책 변화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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