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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총선 그 이후

‘盧의 봄’은 시작되는가

민주화 세력 의회 장악 탄핵 ‘정치적 해금’… 집권 2기 ‘개혁 로드맵’ 추진, 대선자금 사면?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盧의 봄’은 시작되는가

‘盧의 봄’은 시작되는가

3월21일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 선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이 총선 후에 한나라당에 입당할 것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총선 기간 중에 ‘농담으로’ 한 얘기다. 그러나 이 발언에는 나름대로 노대통령의 비원(悲願)이 함축돼 있다. 당시는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의 압승이 예상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노대통령이 한나라당에 입당한다면 국회를 완전히 ‘장악’, 자신의 정책을 일사천리로 추진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이 발언은 노대통령이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 총선 승리를 얼마나 바라고 있는지를 보여준 셈이다.

노대통령은 자신의 희망대로 이번 총선에서 승리했다. 우리당은 과반보다 2석 많은 152석을 확보했다. 더욱이 진보정당 민주노동당이 제3당으로 원내에 진입함으로써 민주화 세력이 처음으로 의회 권력까지 장악했다. 그러나 한나라당도 나름대로 선전해 121석을 확보했다. 이는 개헌 저지선 100석을 훨씬 웃도는 의석으로, 노대통령과 여당을 견제하라는 국민의 뜻이 표출된 셈이다.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조정관 교수는 이를 국민의 절묘한 선택이라고 풀이했다. 조교수는 “민주화세력에 입법부까지 맡기긴 했지만 우리당에 절대 과반수를 주지 않은 의미가 무엇인지 음미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들이 노대통령의 일방적인 개혁 추진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노대통령은 앞으로 자신의 개혁 정책을 실현해가는 과정에 국민적 합의와 동의를 무엇보다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 합리화 ‘상생정치 프로그램’ 제시 관측



청와대도 이를 위해 노대통령이 우리당에 입당하지 않는 방안도 한때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분권이나 균형 발전, 정부 혁신 등 대통령 프로젝트를 원활히 추진하기 위해서는 여·야 간 등거리를 유지하는 미국식 대통령제를 실험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판단에 따른 것. 그러나 노대통령의 입당 문제는 이를 강력히 바라는 우리당 쪽의 뜻이 관철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노대통령이 우리당에 입당한다고 해서 과거처럼 여당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정이 분리돼 있기 때문이다. 결국 노대통령으로선 정치권 전체와 협력정치를 모색할 수밖에 없다. 노대통령이 ‘상생정치 프로그램’을 제시할 것이란 관측이 나도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벌써부터 청와대 일각에서는 “노대통령이 올 연말쯤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 결과 나타난 정치권과 재계의 전비(前非)를 대사면하는 조치가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돈다.

노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국회도 어느 정도 ‘합리화’됐다. 노대통령은 지난해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통과를 위한 야당 의원 설득 과정에서 국회의 ‘합리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절감했다고 한다. 야당의 일부 의원들이 설득되는 듯했으나 당으로 가서는 전혀 다른 소리를 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청와대측이 한나라당 당선자 가운데서도 새로운 정치를 모색하는 ‘젊은 피’들이 많은 것을 반기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이런 점에서 보면 우리당이 민주노동당과 정책연합을 통해 ‘코드 독재’를 추진할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가 될 것 같다. 우리당 일각에서도 당장 “호주제 폐지 등 ‘가벼운’ 사안에서는 정책연합을 추진할 수 있겠지만 국가보안법 폐지, 이라크 파병 철회, 미군기지 재배치 문제 등 이념적으로 민감한 사안에서는 역풍이 심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얘기가 나온다. 우리당 내부에서부터 반발이 나올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당이 제기하는 탄핵 철회론은 노대통령의 대야 관계에 한 변수가 될 수도 있다. 노대통령의 뜻을 잘 아는 한 의원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총선 올인’을 위해 대통령 탄핵 등을 추진했으나 총선 민의가 확인된 만큼 결자해지 차원에서라도 16대 국회에서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면서 “원만한 여야관계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주장했다. 노대통령의 사과 문제는 그 다음이라는 주장이다.

어쨌든 총선 결과에 따라 노대통령은 ‘정치적으로’ 해금(解禁)됐다. 물론 노대통령에게 진정한 봄이 찾아오려면 법적인 해금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당의 ‘정치적 해결론’ 주장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일단 총선 결과에 상관없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심리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정치권이 탄핵소추안 철회에 뜻을 모으면 그때 가서 검토해볼 문제라는 반응이다.

노대통령 입장에선 최악의 경우가 헌재의 재판관 5명이 탄핵에 찬성하고 4명이 탄핵에 반대하는 상황이다. 이 경우 탄핵 요건(재판관 6명 이상의 찬성)에 미달돼 탄핵소추안은 기각되겠지만 노대통령이 입는 상처는 치명적일 수 있다. 남은 임기 동안 대통령으로서의 권위와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은 낮다.

‘盧의 봄’은 시작되는가

노무현 대통령이 4월11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함께 청와대 뒤 북악산을 등반하고 있다. 총선 결과는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헌재의 심리 모습(왼쪽부터).

노대통령이 복권되면 이때부터 노대통령의 집권 2기가 시작된다. 노대통령은 집권 2기에서는 지난해 마련해놓은 각종 개혁 로드맵을 추진하는 데 역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고건 대통령권한대행은 그동안 여러 차례 물러날 뜻을 밝혔기 때문에 자신의 뜻대로 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원내 1당이 된 우리당에 총리와 각료 추천권을 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물론 노대통령이 그동안 “17대 총선 후 원내 1당에 책임총리 추천권을 주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히기는 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한나라당이 1당이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한 발언이었다. 우리당이 1당이 됐기 때문에 노대통령의 이 발언은 폐기됐다고 봐야 한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얘기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총리직은 철저히 검증된 실무형 인사에게 맡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노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은 지난해 말 오명 과학기술부 장관, 올 2월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등의 기용에서 변화가 감지됐다. 따라서 노대통령 복권 이후 개각이 이뤄진다고 해도 우리당 인사들에 대한 배려보다는 이런 기조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는 동북아 경제중심 등 주요 국정과제의 차질 없는 수행을 위해서도 불가피하기 때문이라는 것. 개각 시기는 정부 혁신 작업이 마무리된 후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노대통령이 총선 이후 남북 문제에서 ‘승부’를 볼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남북 문제를 푸는 데는 현실적인 장벽이 너무 높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인식이다. 현재로선 남북 문제를 푸는 데는 어디까지나 북한 핵 문제의 종속변수가 됐기 때문이다. 북한 핵 문제가 풀려야 남북 문제에서도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두말할 필요도 없이 노대통령의 집권 2기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경제다. 노대통령은 경제를 살려야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노대통령이 취임 초기 경기 부양책을 쓰지 않은 이유도 그것이 오히려 집권 말기에 ‘독’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노대통령은 경제 문제에 관한 한 이헌재 경제부총리와 김대중 정권에서 역시 경제부총리를 역임한 강봉균 의원을 신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대통령의 새로운 임기가 이제 막 시작됐다. 그러나 주인공인 노대통령이 무대에 등장하려면 좀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주간동아 2004.04.29 432호 (p38~39)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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