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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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생긴 우리당 시련은 이제부터

탄핵정국 수혜 의미 있는 선거와 성공 … 당내 잡음 해소·국정운영 주도 큰 부담

  • 김기영 기자 hades@donga.com

    입력2004-04-14 13: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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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 생긴 우리당 시련은 이제부터

    4월11일 정동영 우리당 의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상황이 어렵다”며 지지를 호소한 뒤에도 상황이 더욱 어려워지자 다음날 선대위원장과 비례대표후보 사퇴를 선언했다.

    ‘힘이 없어 그들을 막지 못했습니다.’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의 총선 TV광고에 등장하는 카피다. 3월12일 대통령 탄핵 가결 직후 부둥켜안고 눈물 흘리는 우리당 의원들의 모습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47석 소수여당으로는 야당의 탄핵소추안을 막을 수 없었으니 집권당에 걸맞은 의석을 달라는 게 광고의 줄거리다.

    하지만 총선 이후 우리당의 앞날이 그리 밝지만은 않아 보인다. 의미 있는 의석 확보에는 성공했지만 4월15일 이후 우리당이 맞닥뜨릴 현실의 과제가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우리당의 한 핵심당직자는 “솔직히 탄핵정국이 아니었다면 100석 확보도 어려울 정도로 총선 전망은 좋지 않았다. 또 개방형 정당을 만든다는 계획은 거창했지만 실행과정에서 적지 않은 허점이 노출돼, 정상적인 선거 국면이었으면 상당히 힘겨운 선거를 치를 뻔했다”고 말했다.

    총선과정에서 드러난 우리당의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정상적인 선거였다면 100석도 힘겨웠던 상황”



    첫째, 총선정국을 우리당이 주도적으로 이끌지 못했다는 것이다. 탄핵정국의 최고 수혜자임에도 박근혜 대표의 한나라당에 시종 끌려가는 처지를 면하지 못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통과시킴으로써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스스로를 궁지에 빠뜨렸다. 상대방의 실책으로 인한 돌발상황이다 보니 능동적 대처가 전무했다. 탄핵 직후 시민단체의 자발적 탄핵 규탄 움직임을 우리당 지지세로 묶어내는 대응도 부족했다. 지도부는 전통적 여당 지지성향의 안정희구세력을 잡아야 한다며 탄핵을 주도한 한나라-민주당에 대한 공세를 자제했다. 탄핵 직후 영남지역에서조차 우리당 후보가 압도적 우위를 보이자 자만에 빠져 효과적인 영남 민심 공략 방안을 만들지 못했다”는 게 우리당 내부의 분석이다.

    우리당의 영남 공략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선거 중반부터 불기 시작한 ‘박근혜 바람’이었다. 박대표의 등장으로 영남에 구심이 생겼고 전통적 한나라당 지지표도 뭉치기 시작했다. 박의원의 당 대표 당선은 정치권 인사라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우리당은 이를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효율적인 박근혜 공략법을 마련하지 못했다. 박대표를 향해 ‘강자의 여유’를 보이지 못한 정의장의 경직된 태도도 문제로 지적됐다.

    둘째, 위기상황에 대처하지 못하는 허약한 리더십도 문제였다. 선거 초반, 정동영 의장의 노인 폄하 발언은 선거 전반을 그르치는 대형 악재가 되고 말았다. 당내에서는 “정의장의 발언이 아니더라도 전통적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선거막판 다시 결집했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그렇더라도 당의 대표로서 정의장의 언행은 신중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영남 지역 우리당 출마자를 중심으로 총선이 끝나면 정의장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도 일고 있다.

    4월11일 우리당사에는 비상이 걸렸다. 전날 끝난 부재자투표의 출구조사 결과, 한나라당 지지가 의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 정의장의 한 측근인사는 “솔직히 예상은 했으나 심각한 수준이었다. 한나라당 지지표의 결집도 문제지만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 것은 민주노동당의 약진이었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우리가 파악한 부재자투표 출구조사 결과로는 3월 말까지 5%대였던 민노당의 지지율이 배 이상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민노당의 약진은 우리당으로선 악재다. 한나라당을 떠난 부동층이 한나라당 지지로 되돌아간 것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우리당 지지성향이 강한 유권자의 민노당으로의 이동은 박빙의 선두 다툼을 벌이는 수도권에서 치명적 악재가 되고 말았다는 게 우리당 내부의 분석이다.

    힘 생긴 우리당 시련은 이제부터

    4월11일 포천 신읍 네거리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주민과 악수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의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다.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우리당 지지표의 민노당으로의 이동은 정의장 중심의 지도부가 노출한 지도력 한계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셋째, 공천과정에서 발생한 잡음이 두고두고 우리당의 진로에 장애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권의 한 인사는 “우리당은 공천 잘못으로 적어도 25석은 잃었다”고 주장했다. 총선을 앞두고 여야 3당은 공히 개혁공천을 천명했다. 새로운 인물로 물갈이를 하는 한편, 공천방식도 상향식으로 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3당 가운데 상향식 공천원칙에 유난히 집착한 곳이 우리당이었다. 전략지역으로 선정한 일부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구에서 경선을 치르면서 우리당 경선은 유난히 지역 토착후보가 강세를 보였다. 그러면서 외부영입 인사가 당내 경선에서 맥을 못 추고 패하는 현상이 속속 벌어졌다. 일부 지역에서는 야당 후보와 비교해 인물 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후보가 우리당의 간판으로 나가는 경우가 속출했다. 한나라당 후보보다 더 보수성향이 강해 당의 정체성과 거리가 먼 인사들이 지역예선에서 승리하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런 선거구가 전국적으로 25곳에 이른다는 것이다. 문성근 명계남씨 등이 우리당을 ‘잡탕’이라고 표현한 것이나 “총선 뒤 분당이 불가피하다”고 말한 것도 이런 공천과정의 잡음을 두고 한 말이었다.

    본선 경쟁력이 떨어지는 후보의 출전은 시간이 지나면서 고스란히 당의 부담이 되고 말았다. 전반적인 우세였을 때는 문제가 없었으나 선거 막판 박빙의 승부가 지속되면서 경쟁력 약한 후보들이 속속 나가떨어지면서 당 전체의 위기로 확산되고 말았다. 이런 지적은 경쟁자인 한나라당 쪽에서도 나오고 있다. 선거 중반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유권자의 집으로 후보들의 경력과 공약이 담긴 유인물이 배달되면서 우리당보다 한나라당 후보가 인물 경쟁력에서 낫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선거 분위기가 피부에 와닿을 정도로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처럼 문제 많은 경선제도의 도입을 적극 주장한 사람은 신기남 선거대책본부장이었다. 지난 연말, 경선제도의 문제를 지적하는 당내 목소리에 신의원은 “한번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물러설 수 없다”며 고집을 부렸고, 그의 원칙론에 다른 사람들도 입을 다물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당식 공천은 곳곳에서 토착후보의 예상 밖 ‘낙승’으로 이어졌다. 결국 본선 막판에 이르러 우리당 전체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악재가 되고 말았다. 물론 “과도기에 겪어야 할 통과의례”라는 지적도 있지만, 선거에 지면 대통령 탄핵이 현실화될지 모른다는 절박한 상황에서 치러지는 총선치고는 후보선택이 안일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비례대표 공천과정에도 잡음은 여전했다. 한 당직자는 “선거가 코앞이어서 다들 목소리를 낮췄지만 비례대표 공천은 한마디로 정의장의 ‘자기 사람 심기’였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당선권 내 상위 공천자 가운데 박영선 대변인, 정덕구 전 산업자원부 장관, 민병두 총선기획단장, 김현미 총선기획단 부단장 등 정의장과 가까운 후보만 12명이다. 이처럼 정의장과 가까운 인물들을 비례대표에 대거 공천한 것은 총선 뒤 벌어질 당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정의장의 꼼수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당은 선거 내내 “4·15총선은 대통령 탄핵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라고 주장해왔다. 탄핵과 관련되어 있는 당사자들도 이 주장에 내심 동의하고 있다. 탄핵을 주도했던 민주당 한나라당은 물론 탄핵 심판을 맡은 헌법재판소도 선거결과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누구보다 총선결과를 애타게 기다린 이는 노무현 대통령이다. 노대통령과 청와대는 선거전 내내 민감한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정의장 쪽에 비서진을 보내 함께 대책을 논의해왔다. 노인폄하 발언 직후 정의장이 내놓은 ‘탄핵철회 여야회담’ 제안이 대표적으로 청와대와 조율을 거친 아이디어인 것으로 알려졌다. 4월11일에는 대통령 스스로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등산을 ‘핑계’로 언론에 얼굴을 내밀고는 “내게 봄이 오려면 두 번의 심판(총선과 헌재 심판)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탄핵은 노무현 정권의 사활이 걸린 중대 사안이고 이의 정치적 해결의 열쇠가 될 총선결과 또한 중요하다. 하지만 총선을 끝낸 우리당 앞에는 시련의 계절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힘이 없어 탄핵을 막지 못했다’는 우리당. 이제는 힘을 얻었지만 그 힘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허둥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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