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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총선과 탄핵 사이

민심과 법 고난도 방정식… ‘탄핵의 운명’

총선 여론 해석 따라 재판부 색깔에 영향 … 17대 국회 임기 전 5월 말 최종 결정 날 듯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민심과 법 고난도 방정식… ‘탄핵의 운명’

민심과 법 고난도 방정식…  ‘탄핵의 운명’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한 평의가 열린 3월25일 오후 윤영철 헌법재판소장 등 재판관들이 법정에 앉아 사건을 심의하고 있다.



”만물은 변화한다. 세상에 어제와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봄기운에 취한 것일까. 흐드러지게 핀 개나리와 벚꽃을 감상하던 노무현 대통령이 삼라만상의 변화상을 입에 올렸다. 일요일인 4월11일 출입기자들과 함께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을 오른 노대통령이 관망대 숙정문(肅靖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다 불쑥 던진 이 말은 탄핵을 당한 자신의 처지를 빗댄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덧붙인 말을 보태면 의도는 더욱 분명해진다.

“이제 국민의 뜻과 정서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통합의 정치가 시도되고, 실제 성공할 수 있지 않겠나.”

집권 2년째로 접어들면서 노대통령은 정국운영의 핵심 코드를 개혁에서 통합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는 듯하다. 동행했던 한 취재기자는 “(노대통령이) 장고를 끝낸 듯한 분위기였지만 말조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고 전했다. 청와대 주변인사들도 한 달 가량 칩거하고 있는 노대통령이 집권 2년차 국정운영에 대한 구상을 해왔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노대통령의 이런 정국 구상은 5월 말, 늦을 경우 6월 이후에나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것 같다. 총선과 별도로 탄핵과 관련한 헌법재판소(이하 헌재) 심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표현대로 이 벽을 넘어야 제대로 된 봄기운을 느낄 수 있다. 봄의 정취에 자신을 맡긴 노대통령의 모습에는 여유가 실려 있지만 지난 한 달 청와대의 침묵 속에는 상당한 긴장감이 묻어 있었던 게 사실이다.



盧대통령 “이제 통합의 정치 시도 실제 성공할 것”

그 긴장감은 헌재에서도 읽힌다. 탄핵 재판부 주선회 주심 등 헌재 재판관들은 매사 예민한 반응을 보여 취재기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카메라만 봐도 멈칫한다. 애써 미소를 짓지만 작은 코멘트 하나 따기도 어렵다는 게 이들을 취재하는 기자들의 하소연이다. 4월 초, 헌재를 취재하던 한 일선기자는 헌재 관계자한테서 “역사의식을 가져라”는 점잖은 충고를 들었다. 속보 위주 보도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역사적 심판에 임하는 헌재의 비중과 무게를 인정해달라는 조용한 압박으로 이 기자는 이해했다.

헌재는 최근 국회가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의결하면서 내건 선거법 위반, 측근비리, 경제파탄 등 세 가지 사유 가운데 측근비리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4월9일 노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3차 공개변론에서 증인신문 등을 포함한 국회 소추위측 증거조사 신청을 상당 부분 받아들인 헌재는 11일 최도술 전 대통령총무비서관과 안희정씨 등 증인신문 대상자 4명에게 20일과 23일로 예정된 변론 기일 출석을 통보했다. 이 출석 요구는 탄핵심판이 신속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당초 관측이 빗나가고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헌재가 이들을 부른 이유는 대검이나 특검 수사에서 밝혀지지 못한 측근비리에 대해 헌재가 최종판단을 맡는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노대통령 변호인단측은 “청문회 등에서도 밝혀지지 않은 대통령의 비리 공모가 입증되겠느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증인으로 채택된 안희정씨 등이 재판 진행 중이라는 이유 등으로 출석을 거부할 경우 헌재가 다른 액션을 취하기도 어렵다. 이미 대통령에 대한 직접 신문도 난관에 봉착했다. 국회 소추위원측은 “대통령 집무실에서라도 할 수 있다”는 타협론을 제시했지만 헌재는 일단 판단을 유보했다.

탄핵의 또 다른 사유인 경제파탄의 경우 일단 추상적인 성격이 강해 법률 위반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 주장이다. 대통령의 경제 정책상의 실정을 증명하는 것에 대해 다수 헌법학자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정책에 대한 판단 여부를 단순 수치상의 결과나 경제정책에 대한 국민 여론을 놓고 위법성을 판단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설사 그렇더라도 정책 실패가 탄핵 사유가 될 것인가 여부는 또 다른 판단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다. 탄핵안 가결 초기 헌법학자들은 측근비리 관여와 경제파탄에 대해서 탄핵 사유로 근거가 미약하다는 의견이 높았고, 이런 주장은 갈수록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민심과 법 고난도 방정식…  ‘탄핵의 운명’

노대통령은 대통령 권한정지 한 달째인 4월11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북악산에 올랐다.

측근비리의 경우 사실확인 관계가 벽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고, 경제파탄의 경우 논리적 접근성이 없다는 것이 탄핵 한 달을 맞은 정치권과 헌법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남은 것은 선거법 위반 여부. 헌재는 최근 KBS 등 3개 방송사에 노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지지 발언을 한 2월24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대통령 기자회견 프로그램의 진행방식과 내용에 대한 사실 조회를 요청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대통령이 뭘 잘해서 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는 이 발언과 관련해 노대통령에게 선거법 9조의 공무원 선거중립의무 준수를 요청했다. 위법 결정을 내린 셈이다. 헌재는 선관위에 노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여부를 논의한 2003년 12월30일과 2004년 3월3일 회의록 제출도 요구했다. 이 문제에 대한 헌법학자들의 견해는 극단적으로 갈린다.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공감하는 목소리가 많다.

그러나 “선거법을 위반했다 하더라도 과연 탄핵사유가 될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대다수 헌법학자들이 부정적이다. 문재완 교수(단국대 법학부)는 “선거법을 어긴 흔적은 있지만 이것이 탄핵사유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은 별개”라고 말했다. 최용석 변호사도 “헌법재판소가 정치적 요소까지 고려한다면 몰라도 단순히 선거법 위반이 대통령 탄핵 파면 사유가 된다고 보기 힘들다”고 말한다. 많은 헌법학자들이 선거법 위반에 대해서 인정하지만 야당의 탄핵사유 주장이 미흡하다고 주장하는 배경이다. 그러나 노대통령 탄핵심판에서 검사역을 맡은 김기춘 국회 법사위원장은 “노대통령의 선거법 위반과 지난 1년간 국정운영상 드러난 문제점이 명백한 탄핵사유임을 입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김위원장의 한 법률참모는 4월10일 “선관위에서 이미 노대통령이 선거법 9조 공무원의 선거중립 준수 규정을 위반했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어 위법을 증명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노대통령이 지난해 12월19일 노사모 행사에 참석, 시민혁명은 계속되고 있다고 발언하는 등 지난 1년 동안 상시적으로 선거법을 위반했다”며 “이는 탄핵의 상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헌재의 재판권에는 고도의 정치적 성격과 판단의 영역이 존재한다. 위헌법률 심사, 탄핵 심판, 정당의 해산 심판, 국가기관끼리의 권한 쟁의에 관한 심판 등 정치적 판단이 필요한 사안들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의 경우 정치적 사안의 전형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헌재 주변과 정치권이 탄핵의 수순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4·15’ 총선의 향배에 관심을 기울여왔던 것도 이런 헌재의 재판권이 본질적으로 갖는 속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적 해법과는 별개 헌재는 심판 계속

정치적 갈등 충돌로 생긴 탄핵 문제인 만큼 정치적 결단으로 해소하자는 주장이 무리 없이 나오는 것도 이런 정치적 성격을 감안한 해법이다. 그 선봉에는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있다. 그는 4월8일 총선 후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의 회동을 제의했다. 정의장이 내놓은 해법은 간단하다. “16대 국회가 모여서 여야 합의로 탄핵안을 철회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하면 원인무효가 되고 대통령이 신속하게 복귀해 국정이 급속하게 안정될 것”이라는 것. 그러나 이런 정치적 판단과 헌재의 입장은 전혀 별개다. 문재완 교수는 “갈등 당사자들이 정치적 합의에 따라 취하 의견을 제시해도 헌법질서 전반에 관한 사안일 경우 헌재는 계속 심판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가장 큰 문제는 총선 결과다. 의석 분포에 따라 정치권의 탄핵 해법은 천양지차로 달라진다.

우리당이 과반 또는 원내 1당이 될 경우 노대통령은 국민들한테서 재신임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총선 민의는 헌재 결정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일부 정치권과 헌법학자들 사이에서 제기된다. 이 경우 노대통령은 자연스럽게 정국 주도권을 쥐며 복권 수순을 밟을 수 있다. 거야(巨野)에 의해 발목이 잡혔던 개혁입법 등 국정개혁 구상을 강력히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과반에 못 미친 1당의 경우 양상은 조금 다르다. 이 경우 우리당은 살얼음판을 걸어야 한다. 상대적으로 한나라당은 대여(對與)견제력을 확보한다. 가장 심각한 상황은 한나라당이 1당이 되는 경우다. 정국 주도권은 한나라당이 쥘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정국은 극한 대치를 피하기 어렵고 ‘민심은 불신임’이라는 새로운 논리가 설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이런 주장에 민주당과 자민련이 발을 걸칠 경우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헌재와 정치권은 총선과 탄핵, 그리고 노대통령을 연결하는 이 삼각함수의 출발점인 총선 결과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다.

총선을 조용히 지켜본 헌재는 4월23일 5차 변론을 계획하고있다. 국민 여론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재판부의 색깔은 이날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헌재도 17대 국회의 임기가 시작되기 전 이 문제를 털고 가야 한다는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눈치다. 16대 국회 소추위원의 임기는 5월 말까지다. 헌재는 초기부터 신속한 결론을 강조해왔다. 이에 따라 최종적인 판단은 다음달 중으로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총선을 끝낸 노대통령과 헌재에게 5월은 ‘잔인한 달’로 다가온다.





주간동아 431호 (p12~14)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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