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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 평등의 상징 ‘이젠 옛말’

25만~35만원 프리미엄 진 국내 백화점 진출 ‘불티’ … 할리우드 스타들의 영향 커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청바지, 평등의 상징 ‘이젠 옛말’

청바지, 평등의 상징 ‘이젠 옛말’

최근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프리미엄 진’의 컨셉트는 섹시함이다(위). 국내 백화점들이 앞다퉈 문을 열고 있는 오프라인 ‘프리미엄 진’ 매장.

3월5일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 이날 문을 연 ‘프리미엄 진’ 매장에 김정은, 박지윤, 변정수, 베이비복스 등 유명 연예인들이 방문하자 이들을 보려는 사람과 손님들로 인해 매장 앞은 지나다니기가 어려울 정도로 붐볐다.

진 마니아들과 인터넷 해외쇼핑 구매대행 사이트에서 입소문을 타고 팔리던 미국과 유럽산 프리미엄 진이 스타마케팅을 통해 대중적인 유행상품으로 팔리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이 백화점은 강남권의 경쟁 백화점이 지난해 여름 프리미엄급 진 매장을 잇달아 열어 경이적인 매출액을 올리고 있는 데 자극받아 여성복 매장에서 청바지 등 데님 의류의 비중을 크게 늘렸다.

보석 박힌 180만원대도 선보여

갤러리아 백화점 김덕희 여성복 팀장에 따르면 청바지는 3계급으로 나뉜다.

“전통 진 브랜드로 리바이스, 캘빈 클라인, 게스 등이 있습니다. 그 위에 프리미엄 진으로 얼진, 세븐, 페이퍼데님, 휴머니티, 프랭키비 등 할리우드 스타들 덕분에 유명해진 청바지들이 있어요. 럭셔리 진은 돌체 앤 가바나, 디스케어드 같은 디자이너 컬렉션인데 최근 진의 선풍적 인기를 주도하는 것은 프리미엄 진이죠. 우리 백화점 특성상 소비자들이 미국 유행에 민감하기 때문에 일찌감치 프리미엄 진 매장을 열었지요.”



가격도 큰 차이가 난다. 동대문시장 등엔 3만원대 청바지도 많지만 전통 진은 10만원대, 프리미엄 진이 25만~35만원 선, 럭셔리 진이 80만원 안팎까지 올라간다. 특히 올 봄 돌체 앤 가바나는 스와로프스키석을 뒷주머니에 박아넣은 180만원대 청바지를 선보였는데, 우려와 달리 기대 이상의 판매 ‘호조’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마케팅 담당자의 말이다.

최근 백화점의 매출 마이너스 성장 속에서도 유독 청바지 매출만은 20% 정도씩 늘어나서 소비자들이 불경기로 인해 합리적 선택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프리미엄 진이 폭발적인 매출을 새로 만들어내고, 전통 진이 상승세를 따르고 있다는 게 백화점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모 백화점의 경우 프리미엄 진 매장 한 곳에서 월평균 1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데 상승세도 가파르다.

이 때문에 명품 판매가 많은 강남의 백화점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프리미엄 진 매장을 경쟁적으로 입점시키거나 아예 편집매장을 자체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또한 ‘암피오’ ‘더 랩’ ‘랄트라모다’ 같은 프리미엄 진 수입 전문점들도 매장 수를 크게 늘리고 있다. ‘더 랩’ 압구정점 김효정 매니저는 “매일 청바지만 30~40피스가 나간다”고 말했다.

청바지, 평등의 상징 ‘이젠 옛말’

허리선이 배꼽 아래로 한참 내려간 ‘로우 라이즈 프리미엄 진’을 입은 멕 라이언(왼쪽)과 ‘돌체 앤 가바나 컬렉션’의 180만원대 럭셔리 진.

프리미엄 진의 가장 큰 특징은 톱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했다는 것. 그래서 튼튼한 작업복이 아니라 남녀 공히 ‘섹시한 패션 아이템’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프리미엄 진은 밑위(허리에서 엉덩이까지의 길이)가 매우 짧아 배꼽과 복부, 팬티선이 드러나는 ‘로우 라이즈 진’으로 불린다. 최근 신세계 강남점에 프리미엄 진 ‘프랭키비’를 오픈한 가수 이상우씨는 “처음 6인치, 5인치 하더니, 지금은 3인치 진이 제일 잘 팔린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수적이지만, 유행엔 외국인들보다 더 민감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프리미엄 진 시장에서 특이한 점은 할리우드 톱스타들의 영향이 그대로 소비자들에게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수입업자들과 백화점들이 나선 건 그 다음 순서였다. 즉 영화배우 기네스 팰트로가 입은 청바지를 보고 우리나라 트렌드 세터들이 해외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똑같은 진을 사 입고 제니퍼 로페즈, 브리트니 스피어스, 요요비치 등의 청바지를 보고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3인치 진’에 열광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앞에만 주머니를 단 ‘기네스 진’은 프리미엄 진 매장에서 없어서 못 팔 정도이고, 동대문시장에도 복사품이 나와 있다.

할리우드 스타나 충무로 스타나 한국 소비시장에 똑같은 영향력을 미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게다가 이런 소비자들의 해외쇼핑을 대신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곳이 해외인력망을 잘 갖춘 SK글로벌(위즈위드), KT커머스(뉴욕앤조이) 같은 대기업이다. 그런 점에서 프리미엄 진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청바지’라고 부를 만하다. 패션정보업체인 퍼스트뷰 이정민 이사는 “초기 프리미엄 진 소비자는 대개 외국에서 이미 그 브랜드를 알게 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프리미엄 진 매장에서 만난 대학생 이경원씨는 “소위 명품브랜드들의 이미지가 너무 대중화했기 때문에 트렌드 세터들은 독특한 상품을 남보다 먼저 찾고 싶어한다”고 말한다. 그들끼리는 서로 알아봐주기 때문에 새로운 커뮤니티가 형성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20대 여성은 “연기는 뒷전이고 광고만 찍어대는 우리나라 연예인들보다 할리우드 스타를 따라하는 게 훨씬 기분이 낫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이 최지우보다 먼저 ‘기네스 진’을 입었다고 덧붙였다.

국내업체들 독점권 따내려 안간힘

미국 생활을 경험한 우리나라의 R세대(부모의 재산 덕분에 소비에 거리낌이 없고, 돈을 모으기보다는 자신을 가꾸는 데 아낌없이 돈을 쓰는 10~20대)가 인터넷으로 첨단 정보를 접하고 개인적으로 쇼핑하는 데서 프리미엄 진의 유행이 시작됐기 때문에 지금도 프리미엄 진 대부분은 다른 수입 브랜드처럼 한 업체가 독점권을 얻고 유통망을 갖춘 채 수입되는 것이 아니라, 해외쇼핑 구매대행업자들이나 작은 수입업자들에 의해 동시다발적으로 수입된다.

프리미엄 진 편집매장을 준비하고 있는 한 의류업체 관계자는 “요즘 외국에 나가면 외국 브랜드 관리자들이 도대체 ‘서울’이 어떤 나라냐고 묻는다. 서울에서 왔다는 의류업체마다 독점판매권을 달라고 ‘아우성’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서울’이 아시아의 부호들이 모여 있는 어떤 나라라고 생각하는 듯하다”고 말한다.

패션기획사인 인트렌드의 김기동씨는 “프리미엄 진은 각각 특색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선 내 몸에 어떤 브랜드가 잘 어울려서 산다가 아니다. 때문에 시간차를 두고 이 브랜드가 떴다가, 저 브랜드가 뜨는 일이 반복된다”고 말한다.

‘프리미엄 로우 라이즈’ 진이 한국인의 체형에 맞느냐에 대해서도 찬반양론으로 엇갈린다. 서양인보다 다리가 짧은 한국인들의 체형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과 밑으로 내려온 허리선부터 다리로 보이게 하는 착시현상으로 인해 동양인에게 더 잘 어울린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또한 ‘디젤’ 마케팅팀 황경선씨는 “평범한 청바지를 이렇게 다양하게 만든 점이나 허리를 숙여도 뒤 허리선이 뜨지 않도록 패턴을 혁신한 것은 본받을 만하다”고 말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청바지는 ‘서부 개척시대 광부들이 즐겨 입은 실용적인 옷’이다. 그러나 19세기 말 네바다주 탄광에서 발견된 더러운 청바지를 그대로 재현한 ‘네바다 진’이 45만원에 불티나게 팔리는 것 역시 청바지가 보여주는 여러 모습 중 하나다.

청바지는 미국 문화를 중심으로 전 세계가 하나로 묶이면서 언제나 젊은 세대가 속한 세계를 상징해왔다. 그것은 때로 정복이기도 했고, 남성적 권위이거나 질풍노도의 반항이기도 했다.

오늘날 나른할 정도로 섹시한 프리미엄 진은 컨셉트에서 유행의 양상까지 세계화 시대를 살고 있는 젊은 세대의 꿈을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할리우드적 화려함과 상류계급에서 탈락하지 않기, 또는 상류계급으로의 진입이다. 앞에서 보면 너덜너덜하지만 그 뒷면에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신 보석이 박힌 180만원대 럭셔리 진이야말로 오늘날 젊은 세대의 꿈과 현실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주간동아 426호 (p72~73)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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