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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당신 남편 … 신의주 행정 장관 됐어!”

양빈 전기 ‘불을 훔친~’ 홍콩서 출간 … 우리은행과 위탁 투자 추진 논의 중 전격 연행

  • 권영석/ 연합뉴스 홍콩특파원 yskwon@yna.co.kr

“당신 남편 … 신의주 행정 장관 됐어!”

“당신 남편 … 신의주 행정 장관 됐어!”

관산이 홍콩에서 출간한 양빈 전기.

북한 신의주 특구 초대 행정장관으로 임명된 양빈(楊斌·41) 어우야(歐亞)그룹 전 회장이 중국 공안에 연행된 2002년 10월4일 새벽 5시10분. 당시 양빈 장관이 임시 집무실로 사용하던 중국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시 교외 허란춘(荷蘭村)의 고급별장 대접견실에는 우리은행 임직원 6명과 중국인 사업가 2명이 마지막으로 양빈과 자리를 함께했다.

우리은행의 이종휘 부행장과 황규승 차장, 정준문 과장 일행은 선양시에서는 성공한 사업가로 꼽히는 쑨펑샹(孫鳳祥) 펑샹(鳳祥)그룹 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전날인 3일 밤 11시께 양빈의 별장에 도착했다. 양빈과 북한 신의주 특구 투자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서울을 출발해 베이징(北京)에서 곧바로 비행기를 갈아타고 밤늦게 선양에 도착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 공안은 우리은행 임직원들이 양빈과 협의에 들어간 직후인 밤 11시30분부터 별장을 포위하고 사람들의 출입을 완전 봉쇄해버렸다. 4일 오전 0시30분 양빈 측근들은 바깥 진출을 시도했으나 공안들의 저지를 받았다. 상황이 심각한 것을 파악한 이들은 이종휘 부행장에게 ‘이제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고 알렸다.

이 부행장은 휴대전화를 꺼내 다급한 목소리로 한국 총영사관에 전화를 걸었다. 오전 3시께 랴오닝성 외사처 처장과 선양시 외사처 처장이 고급 경관과 함께 찾아와 양빈 별장의 문을 두드렸다. ‘한국인은 모두 나오라’는 관원들의 지시를 받고 우리은행 임직원들은 무사히 현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특구 1기 1조4178억원 투자 요구



이상은 양빈과 함께 평양을 오가며 신의주 특구 설립 준비 협상에 참여해온 관산(關山·64)이 최근 홍콩에서 ‘불을 훔친 불행한 수반(不幸的盜火者)’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한 양빈 전기에 나오는 대목이다. 양빈 전기 출판은 그를 구속한 중국의 심기를 거스를 수도 있는 것이라 이 책은 소리 없이 출판돼 홍콩에서도 이 책이 나온 것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이 전기에 한국과 관련된 부분이 많을 것으로 기대됐으나 우리은행 건을 제외하곤 이렇다 할 것이 없었다. 관산은 이 책에서 우리은행이 100여개 한국 대기업들의 위탁을 받아 신의주 특구 공항과 항구, 석유화학 공장 건설에 자금을 투자할 계획이었다고 밝혔다. 양빈 전기에 나오는 주요 대목을 옮겨본다.

북한은 한국 기업들의 신의주 특구 직접투자를 허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은행은 100여개 한국 대기업들을 대신해 펑샹그룹과 함께 투자회사를 설립하고 이 투자회사 명의로 다시 양빈과 합작해 신의주 특구에 투자를 한다는 계획이었다.

양빈은 신의주 특구 공항과 항구 등이 들어설 위치가 그려진 개발계획도를 우리은행 대표단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는 “한국 기업들과 우리은행이 신의주 특구 제1기 총투자금 100억 위안(1조4178억원)을 투자해달라”고 말했다. 양빈은 “이중 20억 위안은 허란춘의 마무리공사와 발전자금으로 내놓으라”고 제시했다.

양빈이 북한으로부터 신의주 경제특구 설립 제의를 처음 받은 시점은 2002년 1월21일이었다. 그가 아무런 대가도 없이 거액을 투자해 북한에 건설해준 온실이 성과를 내기 시작하던 때였다.

이날 양빈을 위한 환영연회를 마친 북한의 김동규 조선원예총사 사장은 이날 밤 평양 모란봉국빈관 2층 양빈 회장의 방으로 따라와 신의주에 경제무역구를 설립해 관리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의했다. 양빈 회장은 상상치도 못했던 제안에 깜짝 놀랐으나 다음날 곧바로 북한의 제의를 수락했다.

1년여 협상 끝에 양빈이 북한측에서 신의주 특구 행정장관 임명 통고를 받은 것은 2002년 9월18일이다. 중국 국가세무총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으며 낭떠러지로 몰리고 있던 양빈은 안도감과 함께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그날 저녁 평양의 모란봉국빈관에서 열린 환영만찬에서 술을 얼마나 마신지 기억 못했다. 그가 기억하는 것은 방에 들어와 네덜란드에 있는 부인에게 전화를 한 것뿐이었다.

“나…, 양빈…. 당신의 남편 이제 신의주 행정장관이 됐어!”

그러나 그는 부인과 더 이상 무슨 말을 주고 받았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양빈은 이어 홍콩의 홍보대행사에 전화를 걸었다.

“외국기자들을 22일까지 평양으로 불러와. 비용? 내가 낸다. 500만 홍콩달러(7억5000만원) 정도 든다고? 상관없어.”

양빈은 15국 1판공청으로 구성된 신의주 특구 정부 조직기구표를 완성하고 주요 직책별 인선안까지 거의 마무리했다. 그러니 연행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먼저 그는 그가 맡을 행정장관 유고시 대행할 장관 조리로 웡융시(翁永曦)를 내정했다. 또 행정장관 직속 지도기구로 판공청을 설치하고 산하에 비서처와 인사처, 공보처, 외사처 등을 두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우리의 국회에 해당하는 입법원의 초대 원장으로는 둥롄파(連發)를 점찍었다. 이밖에 지린(吉林)성이나 랴오닝성에서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젊은이 중에서 특구 정부에서 일할 간부를 충원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양빈은 “10월25일 행정장관으로 정식 부임한다. 신의주 특구의 압록강호텔을 임시 정부청사로 사용하겠다. 그곳에서 조각을 마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양빈 신화는 중국 공안에 구속되면서 끝내 빛을 보지 못하고 막을 내리고 말았다.

관산은 중국이 북한의 신의주 특구 설립을 사전 통보받지 못했다는 일부 주장과 관련, 북한 외무성이 2002년 6월9일 신의주 특구 설립과 양빈 초대 행정장관 내정 사실을 평양 주재 중국대사관에 미리 통보했다고 밝혔다. 당시 북한 정부는 평양 주재 중국 공사를 외무성으로 불러 3개 사항을 전달했다.

“첫째, 신의주에 특구를 건설하니 중국 정부는 이해와 지지를 해달라. 둘째, 양빈 어우야그룹 회장을 초대 행정장관으로 결정했다. 셋째, 중국에 있는 양빈의 기업과 자산, 개인의 안전을 보증해달라.”

양빈과 마찬가지로 줄담배를 즐기는 관산은 2002년 3월6일 양빈을 처음 만났다. 그는 포브스지가 중국의 2대 갑부로 선정한 양빈 회장의 성공기를 쓰기 위해 취재차 들렀다가 양빈을 알게 된 것. 그때 양빈 회장으로부터 전기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와 함께 생활하면서 신의주 특구 기본법의 초안 작성과 협상, 그리고 양빈의 구속과 재판 과정까지의 결정적인 순간들을 옆에서 지켜봤다. 그는 “북한은 개방된 특구 설립을 원하고 있으며 국제사회 진입을 열렬히 희망하고 있다”면서 “내가 이 책을 쓴 최종 목적은 북한 주민들에게 이런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주간동아 426호 (p42~44)

권영석/ 연합뉴스 홍콩특파원 ysk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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