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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애자는 주인, 동성애자는 노예”

동성애자 인권운동 10년 3인의 대담 “차이에 대한 인정 늘었지만 사회적 편견 아직 견고”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이성애자는 주인, 동성애자는 노예”

“이성애자는 주인, 동성애자는 노예”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10년 동안 거둔 성과와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박기호, 이송희일, 한채윤씨(왼쪽부터).



”이제 우리가 주인이 될 겁니다. 이성애자들이 당연한 듯 누려온 기득권들이 정말 자연스러운 것이었나 하나씩 의심하게 만들 겁니다.”

동성애자들이 두 번째 ‘커밍아웃’을 시작했다. 첫 번째 ‘커밍아웃’이 ‘나는 동성애자’임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상을 향해 ‘나의 다름을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올해는 우리나라에서 동성애자 인권에 관한 논의가 본격화된 지 11년째 되는 해. 1993년 12월, 최초의 인권모임 ‘초동회’를 결성해 존재를 세상에 알렸던 동성애자들은 이제 새로운 10년을 준비하며 여전히 ‘정상-비정상’의 이분법이 존재하는 세상을 바꿔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1990년대 중반 ‘커밍아웃’한 후 동성애자 인권운동을 벌여온 퀴어문화축제 코디네이터 박기호씨(35)와 한국성적소수자 문화인권센터(www. kscrc.org) 부대표 한채윤씨(33), ‘굿 로맨스’로 한국독립단편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영화감독 이송희일씨(34) 등 세 명의 ‘이반’이 모여 지난 10년 동안 동성애 인권운동이 이룬 성과와 여전히 남은 과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오랫동안 서로를 알아온 ‘동지’들로, 박기호씨와 이송희일씨는 4월8일부터 시작될 동성애자 인권운동 10주년 기념행사 ‘두 번째 커밍아웃’을 맡아 준비하고 있다.

“매력적 게이의 존재 한결 자연스러워져”

한채윤(이하 한): 요즘 들어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그런데 저는 사실 그런 걸 별로 못 느꼈어요. 98년부터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동성애 강의를 해왔는데 질문을 받아보면 궁금한 점이 항상 똑같거든요. 제일 많은 건 변함없이 ‘왜 동성애자가 되었느냐’는 거구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안에 변화가 있었어요. 처음에는 청중이 대학생들밖에 없었는데 점점 범위가 넓어지더니 요즘에는 주부나 중년 직장인들까지 강연을 듣거든요. 아직 동성애에 대한 편견은 견고하지만, 이런 것이 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이송희일(이하 이송): 그렇죠. 예전에는 신문에도 ‘호모’나 ‘동성연애자’라는 말이 자연스레 등장했거든요. 사람들이 동성애자를 가리키는 단어라고는 그거밖에 몰랐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상식 있는 사람들은 다 그런 부분을 조심하는 시대가 됐어요.

박기호(이하 박): ‘메트로 섹슈얼’ 같은 것도 그래요. 게이들은 다 돈 많고 스타일리시하고 화려할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줘서 배 나오고 가난한 보통 게이들은 오히려 더 고통스러워졌지만, 동성애자 모두를 ‘음란한 변태성욕자’로 보던 시선에 비하면 좋은 변화죠. 이제 매력 있는 게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자연스레 받아들여지니까요.

한: 예전에는 ‘커밍아웃’하면 언제 어디서나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는데, 요새는 타협되는 영역이 넓어진 면도 있어요. 오히려 환경에 따라 대우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게 힘들죠. 한편에서는 동성애자와 이성애자가 구별 없이 친구가 되는데 어느 곳에 가면 여전히 예전과 똑같은 대우를 받거든요.

“성적 소수자들 일평생 커밍아웃의 짐”

이송: 우리 때는 ‘커밍아웃’이 전 생애를 걸고 결단해야 하는 인생 최대의 난관이자 선택이었는데, 요즘 애들은 훨씬 간단하게 생각해요. 인터넷을 통해 어린 시절부터 동성애를 접하고, 자신의 성 정체성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니까 중ㆍ고등학교 시절에 ‘커밍아웃’을 하는 친구들도 많고요. 문제는 자기에게는 자연스러운데 학교나 가정 분위기는 그 속도를 못 따라간다는 거죠. 요즘 어린 ‘이반’들을 보면 교사나 부모에게 맞고 가출하는 경우가 부지기수거든요.

한: ‘커밍아웃’의 문제, 특히 부모와의 관계를 풀어나가는 데서 생기는 어려움은 동성애 인권운동 20주년 기념 좌담회를 해도 또 나올 거예요. 요즘 이성애자들 가운데는 ‘도대체 무슨 차별을 받는다고 인권 운운하느냐’고 말하는 이들도 많은데, 이 사회에서 성적 소수자로서 살아가는 것은 일생 내내 ‘커밍아웃’의 짐을 지고 사는 거거든요. 평생 자기 검열을 해야 해요. 누가 내게 잘해주면 ‘저게 진심일까’를 고민하고, 잘해 주고 싶어도 상대방이 오해할까 싶어 조심해야 하고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어느 단계에 도달했을 때 나를 털어놓아야 하느냐를 끊임없이 고민하죠. 이성애자는 일생 동안 단 한 번도 고민하지 않을 주제를 죽을 때까지 안고 살아가야 하는 고통을 상상도 할 수 없을 거예요.

“이성애자는 주인, 동성애자는 노예”

박기호

박: 여전히 손만 대도 긴장하는 이들이 많아요. 이성적으로는 자연스레 대하려고 하지만 작은 스킨십까지 민감하게 여기는 거죠. 그런 반응을 느끼고 나면 저도 마음을 열기가 힘들어져요.

이송: 제 ‘일반’ 친구 중에는 제게 ‘야, 이 호모 새끼야’라고 장난치는 놈이 있는데, 그러면 저는 ‘왜, 이 헤테로 새끼야’라고 대답하거든요. 그럴 때 비로소 마음이 열리는 거예요. 호모든 헤테로든, 저는 저고 그 사람은 그 사람일 때 말이죠. 동성애에 대한 사회의 첫 반응이 경멸과 분노였다면 지금은 존중, 혹은 무시의 단계예요. 부담스러워서 아무 말도 못하는 상태요.

한: 최근에 청소년 유해물 기준에서 ‘동성애’를 삭제해도 되는가를 놓고 논쟁이 있었죠. 이성애자들은 그걸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사이의 토론이었다고 여기고 ‘세상 좋아졌다’고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사실 처음부터 이성애자들은 자기가 동성애를 허용해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올라 있는 상태였고, 동성애자들은 그들을 설득하는 거였거든요. 그들이 뻣뻣하게 나오면 우리는 읍소해야 해요. ‘동성애자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사는 줄 아느냐. 홍석천을 봐라. 가족에게 외면당하고, 심지어 자살하는 사람도 있다.…’ 이성애자들은 무슨 권리로 기본적으로 자신을 ‘정상’이라 놓고 다른 것을 ‘정상’으로 봐줄까 말까를 결정할 수 있는 지위를 얻는 거죠? 저는 이성애자들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자기가 자연스럽다고 여기는 행동이 정말 자연스러운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송: 예, 바로 그거예요. 지금 사회는 이성애자가 주인이고, 동성애자는 노예예요. 우리가 요청하고 구걸하면 이성애자가 판단을 하죠. 그들은 단 한 번도 노예가 되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고민조차 하지 않았어요. 저는 이제부터 변화가 시작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성애자들이 고민하고, 공부하고, 노력하는 거예요. 우리가 성 정체성을 인정하면서 아파했던 것처럼. 그래야 진정한 존중과 평등이 가능해지죠.

“이성애자는 주인, 동성애자는 노예”

이송회일

박: 동성애자 인권운동에 무관심한 이성애자들이 많잖아요.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사이에 선을 긋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기고요. 정부도 시민운동 지원 기금 등을 배정할 때 동성애 인권단체에는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며 잘 주지 않아요. 동성애자 인권운동을 지원하는 게 결국은 이성애자를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것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한: 환경운동은 겉으로 보면 풀, 나무를 위한 것 같지만 결국은 인류를 위한 것이거든요. 동성애자 인권운동도 마찬가지예요. 미국이나 프랑스에서는 지금도 하루에 4명꼴로 동성애자에 대한 테러가 발생하고 있어요. 동성애가 신의 뜻을 거역한 것이라거나, 에이즈 같은 돌림병의 근원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이성애자들이 적지 않은 거죠. 이건 누구의 책임인가요. 동성애를 신이 내린 형벌이라고 생각했던 부모에게서 동성애자 자녀가 태어난다면 그 고통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어요. 정부와 사회단체들이 동성애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모두를 위해 반드시 필요해요.

박: 저는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서 사람들의 후원이 많아진다면 동성애에 관한 문화센터를 짓고 싶어요. 함께 연구하고 토론하고 문화생활을 즐기면서 편견과 오해를 없애나갈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면 좋겠죠.

이송: 진정으로 평화롭고 안정적인 세상이 되기 위해서 당장은 이성애자들이 불편해져야 할 거예요. 자신들이 생각해온 ‘정상’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말하는 ‘차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해봐야 할 테니까요.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다름에 대한 존중’이에요. 어느 일방만 ‘주인’이 되지 않는 공존의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습니다.



주간동아 425호 (p46~49)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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