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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은 영부인, 일요일은 주부

권양숙 여사의 청와대 1년 … 각종 행사 참석 바쁜 나날, 무료할 땐 운동 즐겨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6일은 영부인, 일요일은 주부

6일은 영부인, 일요일은 주부

2003년 11월 19일 권양숙 여사(오른쪽)가 출근하는 노무현 대통령을 배웅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는 일요일 아침이면 평소보다 배는 바빠진다. 하루 세 끼를 ‘외식(?)’으로 때우는 남편에게 직접 상을 차려주는 날이기 때문이다. 아침상이래야 별것도 없다. 고구마 감자 빵 과일 등이 요리 재료의 전부. 그럼에도 노대통령은 아침상을 기다린다고 한다. 부속실 한 관계자는 “기분 아니겠느냐”고 풀이한다. 검식(檢食)에 대한 부담이 없고, 기계적인 영양섭취 비율도 따지지 않는 편안한 아침상이라는 뜻이다.

권여사는 음식 솜씨가 뛰어나다. 명륜동에서 권여사의 음식을 먹어본 사람들의 이구동성이다. 특히 권여사가 만든 해물탕, 삼계탕은 명륜동 요리 베스트 5로 거론된다. 노대통령은 30여년 동안 권여사가 만든 이런 음식에 맛을 들였다. 까탈스러운 조건을 건 청와대 음식이 쓴 것은 불문가지. 운영관(청와대 관저 음식 책임자)이 퇴근하면 노대통령은 권여사에게 가끔 ‘밤참’을 요구, 건강을 이유로 반대하는 권여사와 ‘밤참투쟁’을 벌인다는 전언이다. 권여사를 담당하는 제2부속실 이은희 국장은 대통령의 밤참에 대해 “부속실에서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시중 여론 가감 없이 대통령께 전달

권여사의 일요일은 또 다른 행사가 기다린다. 이른바 ‘로열 패밀리’ 모임이다. 대통령 부부와 아들 건호씨 부부 및 딸 정연씨 부부가 이 모임의 멤버. 가족 모임은 일주일 가운데 가장 편안한 시간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장하고 밥을 먹어야 하는 권여사도 이날만큼은 ‘자유’를 만끽한다. 일요일은 권여사가 ‘국모’가 아닌 아내로서, 주부로서, 어머니로서 사는 날이다.

출산한 며느리 배정민씨는 그동안 친정에서 몸조리를 해왔다. 차분한 권여사와 달리 정민씨 는 성격이 활달하다. 주변에서 당돌하다는 지적이 있을 정도로 어른들에게 말을 또박또박 잘한다고 한다. 권여사는 그런 정민씨를 ‘또 하나의 딸’로 여긴다. 임신 중(3개월)인 정연씨는 요즘 입덧이 심해 권여사의 애를 태운다고 한다.



6일은 영부인, 일요일은 주부

2004년 2월3일 노대통령이 아들 건호씨의 딸을 안으며 미소 짓는 모습을 권여사가 바라보고 있다.



대통령학을 강의하는 함성득 고려대 교수는 대통령 부인의 역할을 ‘제1의 비공식 참모’라고 정의했다. 대통령과 물리적 거리가 가까운 만큼 영향력이 크다는 것이다. 권여사는 각종 신문을 스크랩하고 시중 여론을 가감 없이 전달하는 역을 한다. 때로 인사에 개입한다거나 정책결정 과정에 목소리를 낸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정색하고 노대통령의 잘못을 지적할 때도 있다고 한다. 지난해 5월 노대통령이 “대통령 못해 먹겠다”고 했을 때 권여사는 정색하고 노대통령의 잘못을 지적했다.

이런 사실이 왜곡돼 “대통령 부부의 목소리가 청와대 담을 넘었다”는 것으로 확대 해석되는 경우도 있다. 지난 1월, 전도유망한 한 여성경찰이 좌천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노대통령과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섬씽’이 있다더라”거나 “노대통령과 권여사가 사이가 안 좋아 부부싸움을 한다더라”는 ‘카더라식’ 시중 소문을 입에 올린 게 죄목이다. 실상은 어떨까. 대변인실 한 관계자는 “두 분 금슬은 좋다”고 말한다. 저녁 외출을 거의 하지 않는 노대통령은 지인들을 청와대로 불러 관저만찬을 연다. 이 자리에 권여사는 빠짐없이 함께한다. 지난해 9월 정대철 열린우리당 의원은 이런 사실을 알고 “밤에 청와대에서 권여사하고만 있지 말고 포장마차도 가고 강원용 목사도 만나라”고 권유했다.

지난해 연말 강금실 장관이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다. 우연히 강장관을 본 권여사가 강장관 손을 잡고 “차 한잔 하고 가세요”라고 권했다. 권여사 청을 거절하지 못한 강장관이 권여사와 장시간 대화를 나눴다. 이후 1월 초 한 여성단체의 신년하례회에서 강장관을 본 권여사는 측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강장관은 어디에 내놓아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만하다. 마치 흑진주 같다.”

권여사는 ‘여성경찰 해프닝’에 속이 많이 상했던 모양이다. 징계론이 불거지자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입장을 보였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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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5월 권여사가 노대통령과 함께 한 병원을 방문,어린이 환자들을 격려하고 있다(위). 2003년 12월16일 권여사가 학교급식 현장 점검에 나서 학생들에게 직접 음식을 나누어주고 있다.

어디를 가더라도 외적인 인격과 품위를 유지해야 하는 권여사는 그 ‘외면’을 대부분 스스로 관리한다. 어느 행사에 가든 권여사는 스스로 얼굴(화장)을 매만진다. 의상도 마찬가지. 청와대 생활 초기, 대통령 전용 코디네이터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남자와 여자의 코디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조언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후 권여사는 모든 사항을 스스로 챙긴다. 대통령 부인의 옷이 특정제품이라는 게 알려지면 구설에 오른다. 이런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제2부속실 직원들은 수시로 의류회사 카탈로그를 챙긴다. 권여사는 이 카탈로그에서 옷을 고른다. 권여사의 청와대 생활은 단조롭다.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는 대통령의 임기 말년 “하루빨리 이곳을 나가고 싶다”며 지인들에게 눈물로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권여사 역시 구중심처에 갇힌 자신의 처지가 새장에 갇힌 새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가질 만하다.

권여사는 운동으로 답답함을 푼다. 청와대 안의 수영장을 찾거나, 저녁이면 대통령과 배드민턴을 칠 때도 있다. 요가나 맨손체조, 골프도 한다. 권여사는 대통령과 함께 한 몇 차례 골프로 인해 구설에 올라 자신에 대한 인상을 한때 부정적으로 만들기도 했다. 권여사의 골프 실력은 90대 초반. 국산 골프채를 생산하는 ㈜미사일골프코리아는 지난해 ‘대통령이 국산 골프채를 써주시는 게 우리나라 골프산업을 살리는 길’이라는 뜻의 편지와 함께 자사 골프채 한 세트를 청와대에 선물했다고 한다. 이은희 국장은 “(권여사가 이 골프채를) 사용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권여사는 경내 산책도 열심히 한다. 잘 다듬어진 청와대 경내를 한 번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20~30분. 한때 자전거도 탔지만 경내 도로가 굴곡이 심해 포기했다. 지금은 주말마다 등산으로 ‘구중심처’의 외로움을 달랜다.

청와대 본관과 관저에는 그림들이 걸려 있다. 이 그림들은 청와대를 방문하는 국빈에 따라, 또 계절에 따라 분기별로 교체하는 게 원칙이다. 권여사는 관저 그림을 스스로 선택, 딱딱한 청와대 생활에 윤활유로 활용한다. 청와대 관저에는 대통령 부부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1m 크기의 ‘관음죽(觀音竹ㆍ열대성 야자과 식물)’이 자라고 있다. 대통령 부부와 25년째 연을 맺고 있는 이 관음죽은 노대통령이 서울 종로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1998년과,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취임한 2000년 등 지금까지 두 번 꽃을 피웠다. 권여사는 이 관음죽을 키우는 데도 쏠쏠한 재미를 느낀다.

취임 초 권여사는 “해야 할 일은 많은데 뭐부터 해야 할지 순서가 잘 안 잡히고 생각보다 바쁘다”고 토로했다. 허둥거리던 권여사는 100일이 지나면서 점차 방향을 잡았다. 공식행사에 홀로 참석하는 일이 많아진 것도 이때부터. 6개월을 넘긴 권여사는 대통령 부인으로서 자신감을 얻었다. “어느 부인을 흉내내고 싶다기보다는 노대통령에 맞는 부인이 되고 싶다”고 밝힌 것도 이 무렵. 주변에서는 본격적으로 대통령 부인상 정립에 들어간 시기로 본다. 지난 1년 동안 권여사는 총 350여개 행사에 참석, 1만여명을 만났다. 연초 청와대는 권여사의 지난 1년을 평가한 자료에서 “전임 이희호 여사에 비해 활동량이 적었다”고 분석했다.

이은희 국장은 “권여사의 본격적인 활동은 총선 후 시작될 것”이라며 “총선 후 활동할 프로그램과 로드맵이 이미 작성됐다”고 말했다. 아동 및 청소년 교육 문화 등과 관련한 것이 활동의 핵심 내용.

노대통령은 지난해 일본 방문 때 TBS방송에 출연해 이런 말을 했다.

“한국에서는 남편의 월급이 부인이 관리하는 통장으로 그대로 들어간다.”

최근 공개된 공직자 재산신고 결과 노대통령은 월급을 모아 1억5000만원대의 적금을 부었다. 대통령 표현대로라면 권여사가 적금을 붓고 있는 셈. 세간에는 “청와대 입성을 전후해 집을 판 권여사가 집을 사기 위해 적금을 들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에 대해 이국장은 “두 사람만이 아는 비밀”이라고 해명했다. “대통령이 피곤해하면 권여사도 피곤해하고, 대통령이 괴로워하면 권여사도 괴로워한다.” 제2부속실 관계자들 눈에 비친 권여사의 취임 1주년 자화상은 ‘부창부수’로 모아진다.



주간동아 425호 (p24~25)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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