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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이동 난타전 해봤자 SKT?

열흘간 KTF로 8만명 이동 … SKT, 초조한 LGT와 물밑 교류 가능할까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번호이동 난타전 해봤자 SKT?

번호이동 난타전 해봤자 SKT?

1월3일 KTF 대리점에서 번호이동 관련 상담을 하고 있는 고객들.

새해 1월1일을 기해 휴대전화 번호이동성제가 실시됐다. 10일 오후 6시 현재 SK텔레콤(이하 SKT)에서 KTF 또는 LG텔레콤(이하 LGT)으로 가입 회사를 옮긴 사용자는 12만82525명만명. 그중 8만856명(62.9%)이 KTF, 4만7609명(37.1%)이 LGT를 선택했다.

이 열흘 남짓한 기간에 이동통신 3사 간에는 ‘혈투’라는 표현이 무색치 않은 대접전이 벌어졌다. 엄청난 광고 공세, 다양한 판촉행사, 치열한 대(對) 언론·국회 홍보전, 정보통신부(이하 정통부) 및 통신위원회를 향한 건의·읍소·항의·해명 러시. 덕분에 연일 뉴스가 터져나왔고 이제 국민은 번호이동성제 하면 절로 ‘공짜폰’, 시차제, 약정할인, 시장과열 등의 단어를 떠올리게 됐다.

그러나 전쟁은 이제 시작일 뿐 각기 다른 조건, 계산, 목표를 가진 SKT KTF LGT 3사 경영진의 긴장은 날로 고조되고 있다. 특히 사령관 격인 영업담당 임원들에게서는, 다른 것 다 떠나 기 싸움에서만큼 결코 밀릴 수 없다는 단단한 각오가 엿보인다. 누군가의 말처럼 “이것은 전쟁이며, 전쟁에서 해명 가능한 패배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워낙 많은 변수 섣부른 예측 금물

그렇다면 ‘번호이동성 전쟁’의 진행 상황과 예상되는 결말은 무엇인가. 여론, 정책 리스크, 불법 마케팅 가능성 등 변수가 워낙 많은 데다 3사 모두 사활을 걸고 나선 만큼 섣부른 예측은 금물이다. 그러나 현재의 ‘전황’과 각 사의 고민을 종합해보는 것만으로도 유의미한 결론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다. 예상 시나리오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SKT-LGT 간의 물밑 교류다. 물론 그럴 경우 최종 승리자는 SKT가 될 것이며, 시장점유율 변화 또한 최소화할 것이다.





번호이동성제의 핵심은 ‘시차제’다. 처음 6개월은 SKT 고객이 011, 017 번호를 그대로 가진 채 KTF와 LGT로 가입 회사를 바꿀 수 있다. 다음 6개월 동안에는 SKT 외에 KTF 고객도 그 대상이 된다. LGT 고객만 이동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게 1년이 지난 후에는 3사 고객 모두 자기 번호 그대로 가입 회사를 자유로이 바꿀 수 있다.

시차제는 사업자 간 경쟁력 차이와 ‘유효경쟁 체제 구축’을 고려한 제도다. 쉽게 말해 경쟁력이 뒤처지는 사업자, 특히 LGT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것이다. 2003년 12월 현재 3사의 가입자 수 기준 시장점유율은 54(SKT) : 31(KTF) : 15(LGT)다. 그러나 매출액을 기준으로 한 시장점유율은 또 다르다. 3사 전체 매출액의 약 62%를 SKT가 가져가고 있는 것. 이는 SKT 고객의 가입자당 월평균 매출액(ARPU)이 KTF, LGT에 비해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우수 고객이 많은 것. 또 미래 수익 창출원인 무선데이터 사용 ARPU도 타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다. SKT가 선발사업자로서의 이점을 충분히 활용한 결과다. 이는 ‘특단의 조치’가 없을 경우 SKT의 이동통신 시장 지배는 ‘그후로도 오랫동안’ 지속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번호이동 난타전 해봤자 SKT?

‘스피드 011 스피드 010’이라는 문구로 공동식별번호시대를 대비해 브랜드 차별화를 꾀하고 있는 SK텔레콤 광고.

번호이동에서 시차제 적용은 바로 이 같은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정부가 후발사업자를 위해 내놓은 ‘특단의 조치’인 셈. KTF, LGT로서는 이 천재일우의 기회에 절박한 심정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말이 후발사업자 지원이지 알맹이는 다 빠져 실효성이 거의 없다”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요약하면 이렇다. “사업자를 바꾸려면 단말기를 바꿔야 한다. 그 부담을 덜어주고 상대적으로 싼 요금으로 승부하기 위해 내놓은 것이 약정할인제다. 그런데 정부는 LGT, KTF뿐 아니라 SKT에까지 약정할인제를 허용해주고 말았다. 이래서야 후발사업자에 뭔가 배려를 했다고 할 수 있느냐.”

약정할인제로 인해 ‘약발’이 발휘되기 어렵게 된 만큼 이제 남은 경쟁 요소는 통화 품질과 각종 아이디어 요금제, 히트 가능성이 높은 단말기 선점, 타사보다 효과적인 마케팅 기법을 구사하는 것 등이다. 그러나 이 역시 ‘주파수 대역 좋고 투자 여력 많은’ SKT를 당해내기는 쉽지 않은 일. 그래서 논쟁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단말기 보조금 지급을 비롯한 각종 불법 마케팅, 제 살 깎아먹기식 요금 할인, 특정사에 대한 안티여론 형성 등이다.

SKT라 해서 이러한 ‘진흙탕 게임’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유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SKT 역시 “절대 빼앗겨선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한 까닭이다. 무엇보다 ‘피 같은’ 고객이 하루 1만 명 이상씩 다른 회사로 넘어가고 있는 현실 앞에서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반대로 고객 이동이 생각보다 적을 경우 정통부가 나서 더 강력한 선발사업자 규제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는 피해의식마저 갖고 있다. 정통부가 KTF의 ‘무제한 정액제(매달 10만원으로 무제한 통화할 수 있는 제도)’를 허가한 것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 또한 같은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이런 정황에서 각 사가 안고 있는 구체적 고민과 ‘공격’ 또는 ‘수성’의 포인트는 무엇인가.

후발 사업자 위해 시차제 적용

서울 삼성동 KTF 사옥의 분위기는 요즘 상당히 고무돼 있다. 아직 판단을 내리기는 이르지만 일반의 예측과 달리 번호이동성제 시행의 최대 수혜자가 LGT가 아닌 KTF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SKT에서 KTF로 넘어간 고객 수는 LGT로 넘어간 고객의 1.7배에 이른다.

KTF측은 “지난 9개월 동안 각종 요금제와 서비스 개선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라며 흡족해하고 있다. 앞으로도 “1000여 가지에 이르는 맞춤요금제와 MP3폰 제공 등 고객의 요구에 적극 부응하는 서비스로 선전할 것”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내보였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노력해서 될까” 하는 의구심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 임원은 “시차제가 혜택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고, 약정할인도 아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요금 할인뿐이다. 우리로서는 SKT의 고급 고객을 노리는 무제한 정액제 등의 상품을 선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액제는 시외전화 경쟁 사례에서 보듯 시장 규모를 줄이는 악영향을 끼친다. 제 살 깎아먹기 경쟁이 과열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KTF가 의외로 선전하고 있다면 LGT는 당초 기대에 못 미치는 실적으로 인해 다소 초조한 상태다. 그러나 LGT측은 “지금의 결과는 SKT와 KTF 양사가 있을 수 없는 불법 행위를 저지르고 있기 때문”이라며 “정통부와 통신위원회가 나서 불법 마케팅을 근절할 경우 해볼 만한 게임”이라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LGT의 한 임원은 “먼저 KTF는 관계사인 KT 직원을 통한 재판매로 엄청난 실적을 올리고 있다. 하루 5000명 정도는 그렇게 넘어간 고객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KT 재판매란 KT 및 자회사 직원을 동원, 이동전화 가입자 유치를 종용하는 것을 말한다. SKT의 한 임원은 “KTF가 지난해 그렇게 모은 새 가입자 수가 LGT의 한 해 신규가입자 수보다 더 많았다”고 주장했다. LGT측은 “KTF가 초기 기선 제압을 노리는 것 같다. 설사 문제가 된다 해도 제재를 받는 것은 KT이니만큼 큰 부담은 없다는 계산 아니겠느냐”고 추측했다.

LGT측은 SKT에도 큰 불만을 토로했다. “SKT가 각 대리점에 12만~15만원의 판매 수수료를 주고 있다. 수수료가 이렇게 많으면 대리점에서는 그중 최소 5만~6만원을 단말기 가격 인하에 사용한다. 그렇게 해서 판매량을 늘리는 게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반면 LGT가 대리점에 주는 리베이트는 3만원이 고작이다. 이렇게 하면 불법적인 단말기 보조금 지급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최근 정통부에 SKT의 ‘약탈적 리베이트(수수료)’ 문제를 해결해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무장해제에 가까운 고통을 감수하며 ‘준법 마케팅’을 하고 있는 우리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LGT도 똑같은 방식으로 싸움에 나설 수밖에 없다.”

시장 과열 땐 재무구조 악화의 길

이러한 주장에 대한 SKT의 반응은 어떨까. 최근 SKT의 움직임을 보면 수성(守成)이 공격 이상의 스트레스를 동반함을 알 수 있다. 여론의 비난에 부딪혀 일주일 만에 결국 중지하고 만 연결음 마케팅(011 가입자에게 전화를 걸면 연결음 앞에 ‘SK텔레콤 네트워크’라는 음성 메시지가 등장)도 ‘통화품질 실명제’의 필요성 못지않은 위기의식의 발로일 것이다. SKT 임직원들에게는 엄청난 자금을 들여 구축한 ‘스피드 011’ 브랜드를 강제 사장해야 한다는 ‘억울함’과 ‘선발사업자 역차별’에 대한 뿌리 깊은 피해의식이 내재해 있다. 그런 만큼 시차제와 010 번호통일에 대한 감정적 반발 또한 크다.

아울러 현재의 기업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올해 또한 지금까지 못지않은 성장성과 안정성, 발전가능성을 시장에 증명해야 하는 ‘미션’이 있다. SKT의 한 임원은 “우리의 고민은 번호이동성제 시행 그 이상의 것에 닿아 있다. 카드사업 등 금융사업 진출, 위성DMB(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 등 새 수익원 창출이 더 큰 과제다. 그러나 어떻든 올해까지는 기존의 방식으로 목표한 만큼의 성장을 이뤄야만 한다. 고객 이동 방어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것”이라고 말했다.

앞에서 정리했듯 정부가 제시한 ‘룰’이 잘 지켜진다면 SKT가 우려할 만한 수준의 ‘고객 상실’을 경험할 가능성은 적다. 우려할 것은 오히려 시장 과열로 인한 불법 마케팅의 창궐로 3사 모두 매출 하락 및 재무구조 악화의 길을 걷게 되는 것. 때문에 SKT측은 “클린 마케팅이 자리잡아야 한다”는 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SKT의 한 임원은 “일부 영업점에서 몇몇 대리점에 고액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본사의 지시에 따른 것이 아니며, 타사의 지나친 불법 행위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였다. SKT가 고객을 지키는 길은 클린 마케팅뿐이다. 시장 전체에 그런 분위기가 조성돼야만 우리에게 가장 유리한 국면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임원은 “우리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LGT가 아닌 KTF에 모든 과실이 돌아가는 것이다. KTF는 현재로서도 생존에 문제가 없는 회사다. 그런데 번호이동성제 혜택을 KTF가 독점하게 된다면 유효 경쟁 확보란 명분으로 또 다른 ‘LGT 부양책’과 선발사업자에 대한 강력 규제가 등장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시장점유율은 5(SKT) : 3(KTF) : 2(LGT)”라고 말했다.

3사의 입장을 검토했을 때, 결국 수많은 갈등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지점에서 두 회사의 이해관계가 정확히 일치함을 알 수 있다. ‘번호이동성제 효과’가 KTF에 집중될 것에 대한 SKT와 LGT의 깊은 우려다. 번호이동성제의 미래 시나리오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KTF로서는 펄쩍 뛸 일이고, LGT 또한 쉽게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겠으나 판도는 지금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SKT가 8일 ‘KTF가 번호이동 시차제의 수혜를 독차지하고 있다’는 보도자료를 내자 KTF의 한 임원이 “SKT가 KTF와 LGT를 이간질하려 하고 있다”며 목청을 높인 것은 어쩌면 가장 정확한 현실 인식인지도 모른다.





주간동아 419호 (p40~42)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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