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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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의 당나귀, 모르면 간첩

美업체가 개발한 P2P 프로그램 … 영화 같은 큰 파일도 다운로드 척척 ‘인기 열풍’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입력2004-01-08 13: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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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적의 당나귀, 모르면 간첩
    이런저런 검색 사이트에 들어가 ‘당나귀’를 쳐보자. 관련 사이트 이름이 줄줄이 뜬다. 그중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네 발 달린 짐승, ‘이솝우화’ 속 그 당나귀를 뜻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인터넷을 활보하는 당나귀 이름은 ‘이돈키(e-Donkey)’다. 미국 뉴욕에 있는 소프트웨어업체 메타머신(MetaMachine)이 개발한 P2P(Peer to Peer File Sharing) 프로그램. 전 세계적으로 400여만명이 애용하고 있으며 그중 150여만명이 한국 네티즌이다. 메타머신이 최근 영어·한국어 동시 구사가 가능한 직원을 새로 뽑은 것도 그 이유다. 중·고등학생이나 컴퓨터 좀 만진다는 20, 30대들 사이에선 ‘당나귀’를 모르면 ‘간첩’ 소리를 들을 정도다.

    ‘당나귀’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먼저 P2P에 대해 간단히 짚고 넘어가 보자. P2P란 인터넷으로 연결된 PC끼리 특정 사이트를 거치지 않고 서로 파일을 주고받을 수 있는 통신방식을 뜻한다. 음악파일인 MP3를 주고받는 ‘냅스터’(미국)와 ‘소리바다’ 덕분에 유명해졌다.

    ‘당나귀’가 본격적으로 뜨기 시작한 건 2002년 여름. 한국음반산업협회의 파상공세로 ‘소리바다’ 서비스 중지 또는 유료화가 이슈로 떠오르자 네티즌들이 그를 대체할 만한 P2P 서비스를 찾기 시작한 덕분이었다.

    당나귀사용자포럼 회원수 35만명 달해



    애초에는 국내 인터넷솔루션업체인 그래텍이 개발해 2001년 10월부터 유료(월 3000원) 서비스에 들어간 ‘구루구루’(www.guruguru.co.kr)가 큰 인기를 끌었다. 서비스 개시 4개월 만에 회원 수 100여만명에 도달했을 정도. 그러나 음란물 유통 및 저작권 문제가 제기되자 자체 검색 기능을 삭제해버리면서 최근에는 회원 수가 크게 줄었다.

    이후 급부상한 것이 ‘당나귀’다. ‘당나귀’의 특징은 ‘구루구루’ 같은 일대일 방식이 아닌 다수 대 다수 방식으로 파일을 주고받는다는 것. 예를 들어 A가 파일을 보내고 B가 파일을 받고 있으면, C는 A에게서뿐 아니라 B가 받아놓은 파일도 다운로드할 수 있다. 다운로드 창에 파일을 받고 있는 사람의 리스트도 함께 뜨기 때문에 파일을 보내주는 사람뿐 아니라 받고 있는 사람에게서도 파일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어받기’는 사용자 숫자를 분산시켜 다운로드 속도를 높이는 장점이 있다.

    ‘당나귀’ 사용자인 최영진씨(31)는 “2002년 6월 네티즌 간에 월드컵 자료를 주고받느라 당나귀가 떴다는 소문도 있고 ADSL 속도가 좋아지면서 그렇게 됐다는 얘기도 있는데, 역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영화처럼 큰 파일을 무리 없이 다운로드받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장점은 자료검색이 서버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만큼 정보 공유가 쉽고, 가짜 파일(페이크 파일)을 가려내기도 쉽다.

    당나귀사용자포럼(www.edonkey.or.kr) 운영자인 장모씨(28)는 “영화 DVD를 많이 갖고 있는 것은 역시 미국의 사용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가장 많이 쓰는 프로그램이 ‘당나귀’, 그리고 그와 호환 가능한 소프트웨어인 이뮬(eMule·‘당나귀’와 서버를 공유하는 유사 소프트웨어)이었다. 그들이 가진 DVD를 공유하자니 ‘당나귀’를 활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적의 당나귀, 모르면 간첩

    당나귀(www.edonkey2000.com), 당나귀사용자포럼(www.edonkey.or.kr), p2p월드(www.p2pworld.co.kr)(위쪽부터)

    ‘당나귀’를 사용하려면 먼저 제작사 홈페이지(www.edonkey2000.com)에 접속해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받아야 한다. 다음에는 ‘당나귀’ 서버에 접속해야 하는데, 홈페이지 상단 메뉴의 ‘서버’에 등록된 주소 중 하나를 클릭하면 된다. 국내에서 운영하는 서버에 접속하면 속도가 더 빠르다. 검색창에서 필요한 파일을 찾아 마우스로 더블클릭하면 다운로드가 시작된다.

    ‘당나귀’를 통해 영화 한 편을 다운로드받는 데는 5시간도 걸리고 9시간도 걸린다. 요즘 한창 인기 있는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 같은 경우는 워낙 많은 사용자들이 주고받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빠른 시간 안에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 사용자들은 대개 출근하면서, 또는 잠자기 전 다운로드를 시작해 퇴근 후나 다음날 아침 볼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놓는다.

    ‘당나귀’를 비롯한 P2P 서비스의 최대 단점은 PC 하드디스크에 과부하가 걸린다는 것. 너무 많은 용량의 주고받기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사나 대학 등지에서는 아예 P2P 서비스를 사용할 수 없도록 방화벽을 설치해놓는 경우가 많다.

    ‘당나귀’ 사용자들은 예외 없이 각종 커뮤니티에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2002년 여름 만들어진 ‘당나귀사용자포럼’의 경우 회원 수가 35만명에 달한다. 그외에도 ‘김화당나귀’(www. kimhwa.com), ‘당나귀커뮤니티’(www. p2pnara.net), ‘이지당나귀’(www.kmp3. info) 등 수십 개의 커뮤니티가 활발히 활동 중이다. 그 가운데는 접속 쉽고 속도 빠른 서버만 전문적으로 안내하는 사이트도 있다.

    사용자들이 커뮤니티를 찾는 건 좋은 자료를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괜찮은 영화 자료나 유틸리티, 게임 등이 있으면 네티즌들이 서로 나서 평가를 해놓는다. 그만큼 파일을 골라 다운로드받는 시간을 아낄 수 있다.

    사용자가 많다 보니 개중에는 ‘당나귀 고수’라 불리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 “고수들은 대개 PC에 ‘당나귀’ 전용 하드디스크를 달아 쓴다. 파일을 다운로드받자마자 CD 등에 옮겨놓고 하드를 정리한 뒤 다음 파일을 받는 것. 물론 컴퓨터를 잘 만지는 사람들이다. 사용자들 사이에 ‘고수’라고 한다면, 회사나 학교에서 설치해놓은 방화벽을 깰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을 갖춘 이들을 뜻한다.”

    그렇다면 이런 P2P 서비스 업체들은 뭘로 돈을 벌까. ‘당나귀’ 홈페이지의 경우에도 유료 버전을 팔고 있으나 이를 다운로드받아 사용하는 네티즌들은 많지 않다. 프로그램 화면에 광고가 없을 뿐 성능에는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국내 업체들이 운영하는 P2P 서비스나 웹하드들, 그러니까 프리텔의 ‘파일구리’, 하이텔 ‘아이디스크’, 천리안 ‘넷폴더’, 나우콤 ‘피디박스’ 등도 이용료를 받고는 있으나 현재로선 큰돈이 될 만한 것은 아니다.

    커뮤니티 운영도 마찬가지다. 회원이 많은 만큼 광고 유치 등을 통해 약간의 돈을 벌고는 있지만 서버 유지도 벅찬 실정. 아직은 운영진 몇몇이 십시일반 힘을 합치는 경우가 많다. ‘포럼’ 운영자인 장씨는 “그럼에도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건 미래 수익 창출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역시 이 일을 정말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당나귀’를 비롯한 P2P 서비스가 처한 최대 난관은 저작권 침해 및 음란물 유포와 관련한 불법성 논란이다. 서비스 제공자나 커뮤니티 운영자들은 “우리가 파일 리스트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접속한 사용자 중 파일 보유자의 위치만 알려주는 정보교환 매개체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을 뿐인 만큼 법적인 책임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자료공유를 위한 인터넷 사이트의 서비스 제공이 지적재산권 침해를 방조 내지 조장함으로써 콘텐츠 제작업체에 피해를 끼친다는 주장 역시 설득력이 있다.

    그렇다면 ‘당나귀’ 사용자들의 생각은 어떨까. ‘포럼’ 운영자 장씨는 “많은 사용자가 음란물을 주고받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다는 아니다. 오히려 프로그램이나 게임, 영화를 공유하는 경우가 더 많다. 소프트웨어의 경우 무조건 다 갖다 써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그 하나하나를 다 돈 주고 사 PC를 꾸미자면 수천만원이 들 수도 있는 현실 아닌가. 또 영화의 경우도, 일단 ‘당나귀’에서 다운로드받아본 후 재미있으면 극장에 가 다시 보는 식이다. 재미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극장 가 돈 내고 보라는 것도 딱히 옳은 생각이라고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터넷칼럼니스트이기도 한 사용자 조광현씨는 “‘당나귀’가 활성화됐다 해서 영화 관객이 줄었나. 음반 판매량이 줄었다고 하지만 이는 꼭 P2P 서비스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저작권 보호를 위해 기술적 발전을 억제하려는 콘텐츠 업계의 시도는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당나귀’의 경우 외국 회사가 제공하는 서비스인 데다 서버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고, IP 등 사용자의 흔적이 전혀 남지 않는 관계로 사실상 제재를 가할 방법이 없다. 그렇더라도 서비스 확산에 큰 ‘기여’를 한 ‘고수’들은 몸을 사리는 모양새다. ‘포럼’ 운영자인 장씨가 이름을 밝히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 서비스 자체를 중지시킬 수는 없어도 커뮤니티 운영자 등에 대해서는 법적 제재를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사 커뮤니티가 문을 닫는다 해도 ‘당나귀’의 힘은 계속될 것이다. 이미 아메바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그 영역과 개체를 넓혀가는 ‘사이버 생명체’의 경지에 도달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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