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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속으로

“서툴게 종 치며 노래 … 세상은 아직 따뜻”

명동거리 일일 구세군 체험 … 어려운 경제사정 모금액 좀처럼 늘지 않아

  •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서툴게 종 치며 노래 … 세상은 아직 따뜻”

“서툴게 종 치며 노래 … 세상은 아직 따뜻”

한 어린이가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구세군 자선냄비에 돈을 넣고 있다.

”노래 잘해요? 노래 한번 해봐요.”

“네?”

“‘어려운 이웃을 도웁시다’란 구세군의 말보다, 구세군이 부르는 캐럴이 행인의 마음을 더 움직이거든요. 제가 노래 부른 후 사람들이 얼마나 오는지 보세요.”

코와 볼이 떨어져나갈 듯 세찬 바람이 부는 추운 겨울. 서울 명동거리를 오가는 행인들은 무심하게도 자선냄비 곁을 스쳐갈 뿐이었다. 그때 구세군 박정식 사관후보(35)가 기자의 종소리에 맞춰 갑자기 캐럴을 부르기 시작했다.

“거리마다 오고가는 많은 사람들, 웃으며 기다리던 크리스마스….”



신기하게도 행인들이 약속이나 한 듯 지갑을 열고 자선냄비로 다가왔다. 100원짜리 동전에서 만원짜리 지폐까지 돈을 집어넣는 행인들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고사리 손의 어린이도 어머니를 졸라 자선냄비에 돈을 넣었다. 사람들의 외면에 섭섭했던 마음도 잠시, 쏟아지는 손길에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건넸다. 발가락이 얼어붙는 추위 따위는 금세 잊어버렸다.

남녀 한 팀이 자선냄비 지키며 모금

“서툴게 종 치며 노래 … 세상은 아직 따뜻”

구세군 후생원의 브라스 밴드가 연주를 시작하면, 마법처럼 기부의 손길도 늘어난다(위).구세군은 교대 시간이면 전용 승합차 안에서 얼어붙은 몸을 녹인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기자와 구세군 김기찬, 이성희씨.

기자가 구세군 체험을 결심한 것은 사실 ‘미담 발굴’의 강박관념 때문이었다. 연말연시 추운 날씨에 가슴 훈훈한 이야기를 발굴해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기자의 사명일 터. 그러나 2003년 겨울을 장식한 뉴스는 온통 우울한 소식투성이다. 정치권의 불법 대선자금 논란은 끊이지 않고, 경제난에 따른 실업문제와 카드 빚 문제는 도통 해결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온통 음울한 소식 탓에 ‘행복 뉴스’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때 들려온 구세군의 종소리가 구세주였다.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제자리를 지키는 구세군의 삶을 체험해보고 싶다는 충동이 문득 일었다. 더구나 크리스마스 시즌이 아닌 다른 때 구세군은 어떤 일을 하는지 정말 궁금하기도 했다.

구세군은 영국의 윌리엄 부스가 1865년 창설한 기독교의 한 교파다. 처음엔 그리스도교 전도회라는 이름으로 빈민가를 찾아다니며 서민층을 상대로 거리에서 전도활동을 펼치다 이후 보다 효율적인 자선활동을 위해 군대 형식으로 조직을 개편했다. ‘세상을 구원하는 군대’라는 뜻으로 이름이 붙여진 구세군은 전 세계 109개 국가에서 활동하고 있다. 구세군이 되기 위해선 2년제 구세군사관학교를 다녀야 한다. 하지만 구세군이 아닌 일반인들도 자원봉사활동으로 자선냄비 모금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구세군은 검은 제복과 모자를 착용하고, 자원봉사자는 구세군 마크가 그려진 빨간색 점퍼를 입는다. 기자는 꽤 두툼해 보이는 자원봉사자용 점퍼를 입고 구세군의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구세군 대한본영의 안건식 참령은 “구세군 체험을 제대로 하려면 명동 한복판이 좋겠다”며 “날씨가 추우니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제대로 해보겠다고 호언장담하던 기자에게 구세군 활동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미리 경고해준 것이다. 그 당부가 어떤 의미였는지를 깨닫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서툴게 종 치며 노래 … 세상은 아직 따뜻”

승합차 안에서 휴식을 취하다 잠이 든 구세군 신정아씨. 브라스밴드의 음악을 듣고 찾아온 행인 둘이 자선냄비에 정성스레 돈을 넣고 있다.

12월18일 오후 1시, 서울 명동의 한복판 우리은행 앞에서 자선냄비 모금활동에 들어갔다. 기자의 파트너는 박정식씨. 서울 명동은 유동인구가 많아 이곳에만 자선냄비가 세 군데 있다. 특히 명동 우리은행 앞은 중심지 중의 중심지로 남성 구세군과 여성 구세군이 짝을 이뤄 자선냄비를 지킨다. 놋쇠 종을 받아들고 처음으로 종을 흔들었다. 그러나 어색한 손놀림 탓으로 평소에 듣던 청아한 소리가 나지 않았다. 종을 울리는 것에도 요령이 있었다.

“아래위로 살짝 흔들어요. 아니, 너무 크게 흔들진 말고.”

먼 거리까지 자선냄비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 바로 종의 역할이다. 그러나 초보자 티를 내듯 종소리는 엇박자에 ‘삑’ 소리까지 나고 말았다. 어설픈 구세군 자원봉사자의 모습이 자칫 구세군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마저 들었다. 지하철 앵벌이의 그릇보다 구세군 자선냄비에 선뜻 돈을 넣을 수 있는 것도 구세군에 대한 신뢰 때문이 아닌가. 서투른 종소리 때문인지, 점심을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이 자선냄비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추운 날씨보다 사람들의 외면이 마음을 더욱 시리게 만들었다. 실제 2003년 12월16일 현재 자선냄비 모금액은 지난해보다 14.3%나 적다고 했다. 경제가 어려운 만큼 사람들의 마음도 꽁꽁 얼어붙는 모양이다.

한참 마이크를 잡고 있던 박씨는 기자에게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연설과 종 연주를 교대하자는 뜻이었다. 그러나 마이크를 쥔 기자의 목은 금세 잠겨버렸다. 뭐라고 말해야 하나 일순간 긴장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어려운 이웃을 도웁시다. 여러분의 손길이 소외된 이웃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결코 쉽지 않은 일 … 벌써 세 사람 쓰러져

연설 레퍼토리는 5분도 채 안 돼 바닥이 나고 말았다. 시선처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쑥스러움이 더했다. 문득 박씨가 귀띔해준 비법이 떠올랐다. 바닥난 연설 레퍼토리에 별수 없이 노래를 택했다.

“저 들 밖에, 한밤중에 양 틈에 자던 목자들….”

노랫소리가 명동거리 전역으로 울려 퍼졌다. 신기한 듯 쳐다보는 행인들의 얼굴을 보며,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어색함은 서서히 사라지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힘을 얻었다. 한 노인 분이 대견스럽다는 듯 1만원짜리 한 장을 넣어주셨다. 노랫소리도 점점 우렁차게 나왔다.

추운 날씨로 인해 구세군의 교대는 한 시간 간격으로 이뤄진다. 의욕이 충천한 기자는 ‘한 시간 더’를 외치며 구세군 김기찬 사관후보(37)와 두 번째 파트너가 됐다. 하지만 금세 지나친 욕심이었음을 깨달았다.

“춥죠? 발가락 얼지 않았어요?”

김씨의 걱정대로 달랑 스타킹과 신발에 의지한 발은 꽁꽁 얼어 엉거주춤 걷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김씨는 웃으며 건강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힘을 잘 배분해야죠. 12월4일 이후 시작된 자선냄비 모금에서 벌써 세 사람의 구세군이 쓰러졌다고요. 사실 밖에 장시간 서 있으면 입술이 마르고 감기 걸리기가 쉬워요.”

“서툴게 종 치며 노래 … 세상은 아직 따뜻”

자선의 손길을 기다리는 구세군 김기찬, 신정아씨. 기자는 서툰 솜씨로 종을 울렸다.

대체 신체적 고통도 불사하면서 구세군들이 거리로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하루 이틀의 봉사야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겠지만, 봉사를 ‘업’으로 삼는 이들의 삶은 험난한 여정이다. 구세군의 휴식을 위해 마련해놓은 승합차에서 몸을 녹이며 구세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구세군 이성희씨(27)는 남편을 따라 구세군에 몸을 담았다고 했다. 기독교 다른 종파의 신자였으나, 어려운 사람들에 헌신하는 구세군의 모습에 감동받았다는 것. 실제로 구세군사관학교에 입학하는 사람들은 구세군교회를 다니는 부부가 거의 대부분이다. 사관학교는 “봉사에 헌신하기 위해 부부가 함께 입학해야 한다”는 엄격한 교리를 갖고 있었다. 다만 최근에는 독신이 많아지면서 홀로 입학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게 달라진 모습이다. 모든 구세군들은 구세군사관학교 기숙사에 머무르며 봉사에 대한 뜻을 다진다고 한다. 자선냄비 모금이 없는 다른 계절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고아원, 양로원, 병원 등을 위문 다니며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게 이들의 임무다. ‘봉사특공대’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승합차 안에서 한 시간의 달콤한 휴식을 마치고 김기찬씨와 다시 명동거리로 나섰다. 오후 4시 명동거리는 더욱 붐볐다. 흥미로운 점은 구세군이 행인과 방송사들의 주된 촬영 대상이 된다는 것. 따스한 겨울 풍경을 담기 위해 각 방송사는 앞다퉈 모델이 된 구세군을 촬영했다. 구세군을 배경 삼아 드라마 촬영도 이뤄졌다. 많은 행인들이 카메라폰과 디지털카메라로 구세군의 모습을 찍었다. 예상치 못했던 카메라 세례로 어색해하는 기자에게 김씨는 “구세군은 좋은 모델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겨울만 되면 사람들은 따뜻한 구세군의 이미지를 가슴에 담고 싶어한다는 것. 하지만 이어진 그의 말에 가슴 한 켠이 시렸다.

“앞다퉈 구세군을 촬영하는 것을 보면 세상에 정말 행복한 볼거리가 없다는 느낌이 들어요. 정말 슬픈 현실 아닌가요?”

김기찬씨는 1시간 동안 연설하면서 한 번도 끊이지 않을 정도로 말솜씨가 뛰어났다. ‘어려운 이웃을 돕자’는 취지의 코멘트는 여러 형식으로 변주돼 행인의 마음을 끌었다. 그의 연설 전략은 바로 행인들에게 어려운 이웃에 대한 정보를 다양하게 제공하는 것. 실제로 과거 구세군의 코멘트가 “헐벗고 불쌍한 이웃들에게 자선을 베풉시다” 식의 ‘감정 호소형’이었다면, 김씨의 코멘트는 “태풍 매미로 뜻하지 않은 고통을 당한 여러분의 이웃이 아직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식의 팩트(fact)를 이용한 ‘논리 호소형’이다.

‘행복 바이러스’ 1년 내내 이어졌으면 …

오후 5시가 넘어서자 명동거리에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명동을 지나는 사람들은 더욱 늘었지만 자선냄비를 찾는 사람은 썩 늘지 않았다. 김씨는 “오늘은 별로 모금 성적이 좋지 않은 편”이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12월11일 50대 한 신사가 자선냄비에 3700여만원을 넣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자선냄비에 대해 ‘반짝 관심’을 보였지만, 전체적으로 모금액이 좀처럼 늘지 않는다고 했다.

오후 6시 구세군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철수하기 전 막바지 행인들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서였다. 자선냄비의 손길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우리네 인심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1만원짜리 한 장을 슬며시 집어넣던 40대 아주머니는 수고가 많다며 흰 우유를 건넸다. 네 살짜리 여자 어린이는 돈을 집어넣고는 고맙다며 구세군에게 꾸벅 인사를 한다. 추운 날씨에 서 있는 구세군을 염려해주는 사람들의 마음에 또다시 힘이 솟았다.

자선냄비 모금 활동은 구세군 후생원(고아원의 다른말) 어린이들의 브라스밴드 연주로 절정을 이뤘다. 7명으로 구성된 악단이 캐럴을 힘차게 연주하자 거리를 거닐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브라스 밴드의 연주는 명동거리에 ‘행복 바이러스’를 전염시키며, 행인들의 지갑을 열었다. 구세군은 연신 ‘고맙습니다’란 말로 기쁨의 표현을 대신했다. 구세군이 가장 바빠진 순간이었다.

“만두 좀 먹고 가요.”

리어카에서 만두를 파는 아주머니가 오후 7시 모금을 마친 구세군을 불러 세웠다. 만두라도 먹으며 허기를 채우라는 뜻이었다. 자선냄비를 거는 기구를 맡아 보관해주는 옷집 아가씨들은 몸 좀 녹이고 가라며 따뜻한 차를 내밀었다. 한 입 베어 문 만두에 허기가 금세 사라졌다.

오후 7시 반 구세군 체험이 끝났다. 하루종일 종을 흔드느라 뻐근해진 손목의 통증에도 입가에 머문 웃음은 쉬 떠나질 않았다. ‘행복 바이러스’를 머금은 채 걸었던 명동거리는 그 어느 겨울보다 따뜻했다.





주간동아 416호 (p46~49)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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