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성산동 교통안전공단 성산자동차검사소의 자동차 배출가스 정밀검사 장면. 검사 과정은 모두 전산으로 관리된다(작은 사진).
박씨가 프라이드를 버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환경부가 시행 중인 자동차 배출가스 정밀검사 제도 때문이다. 이 제도는 환경부가 대도시 대기오염의 주요 원인인 자동차 배출가스(서울의 경우 85%)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1999년 4월15일 도입했다. 시·도 조례에 따라 2002년 5월 서울시를 시작으로 인천(2003년 3월1일), 경기(2003년 4월1일) 지역으로 확대됐고, 점차 부산 대구 등 다른 지역으로 확대 시행할 예정이다.
이 제도에 따르면 박씨의 프라이드처럼 차령(車齡) 12년 이상의 비사업용 승용차는 정밀검사 대상이 된다. 박씨의 애마는 첫 정밀검사 벽을 넘지 못하고 폐차 신세로 전락한 셈이다. 박씨는 정밀검사 대상 통보를 받고 자택 인근 카센터를 찾아 주인에게 자문했다. 배출가스를 정화하는 삼원촉매 정도는 교체해야 정밀검사를 통과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멀쩡한 차량 폐차시키면 국익 낭비
그러나 카센터 주인의 답은 박씨의 예상이 얼마나 순진했는지를 일깨워줬다. “엔진도 손봐야 할 것 같고…. 수리비가 적어도 100만원은 나올 것 같다”는 게 카센터 주인의 추산이었다. 박씨는 “90년식 프라이드면 중고차 값이 50만원도 안 될 게 뻔한데 당연히 폐차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더구나 100만원을 들여 수리한다고 해도 정밀검사를 통과한다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박씨는 “수도권 대기 환경 개선을 위해 정밀검사를 도입하는 것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뭔가 찜찜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다고 했다. ‘차령이 오래된 차들이 내뿜는 배출가스를 개선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과 그 차를 폐차시킴으로써 발생하는 경제적 손실을 비교해봤을 때 어느 쪽이 더 클까.’ ‘나야 프라이드가 세컨드 카이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지만 경제적 사정 때문에 오래된 차를 운행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정밀검사에서 통과하지 못해 폐차시켜야 한다면 심정이 어떨까.’ ‘차령 12년인 승용차를 정밀검사 대상으로 삼은 합리적 근거는 무엇일까.’ 평소 따지기 좋아하는 박씨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었다.
현재 운행 중인 차에 대한 배출가스 검사제도는 정밀검사 외에도 두 종류가 있다. 우선 95년 12월부터 시행된 정기검사제도가 있다. 차령 10년 미만 비사업용 승용차의 경우 출고된 지 4년째 되는 해에 처음 정기검사를 받고, 그 이후부터는 2년마다 한 번씩 받아야 한다. 또 지방자치단체가 주차장이나 노상에서 실시하고 있는 운행 차량 수시검사제도가 있다. 환경부가 정한 기준을 만족하며 운행하고 있는지 여부를 측정, 기준 초과 자동차에 대해서는 개선명령과 함께 과태료 처분을 내린다.
대도시 대기오염의 주범은 자동차 배출가스다.
오너들 자발적 참여 이해 끌어내야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정기검사 불합격률은 9%인 반면 정밀검사 불합격률은 그보다 3배 이상 높은 32%에 달했다. 정기검사를 통과한 자동차도 정밀검사에서는 불합격 통보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환경부 교통공해과 관계자는 “정밀검사 불합격 자동차 가운데 정비를 마친 후 다시 정밀검사를 받으면 90% 정도는 합격한다”고 말했다. 자동차 이용자들이 조금만 신경 쓰면 오랫동안 자동차를 운행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밀검사 대상 자동차는 2004년부터 대폭 확대된다. 비사업용 승용차의 경우 2003년까지는 차령 12년 이상이 대상이었지만 앞으로는 차령 7년 이상으로 확대되고, 2006년부터는 차령 4년 이상 되면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 당장 2004년의 경우 133만대의 자동차가 정밀검사 대상이다. 2003년도 대상 자동차는 34만대였다. 오너 드라이버들에게 파급효과가 큰 제도인 셈이다.
자동차를 운행하는 입장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대목은 환경부가 정밀검사 합격선인 배출가스 허용기준을 무슨 근거로, 어떻게 만들었느냐 하는 점. 내년부터 정밀검사 대상 자동차가 대폭 확대되기 때문에 더욱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박씨처럼 폐차를 한 사람들은 환경부가 임의로 정한 기준 때문에 재산권을 침해당했다는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문제다.
먼저 환경부의 설명은 이렇다. “교통안전공단이 그동안 실시한 자동차 정기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실제 운행실험을 통해 미세조정해 정밀검사 배출 허용기준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환경부 대기정책과 정복영 서기관은 “자동차 이용자들이 자동차회사가 나눠주는 매뉴얼에 따라 엔진오일을 교환해주는 등 일반적인 정비점검을 제대로 했다면 통과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자동차 전문가들은 환경부의 이런 기준 설정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순천대 자동차공학과 김현우 교수는 “신차의 경우 환경부가 정한 자동차 배출가스 허용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생산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차령 12년 이상의 자동차는 이 기준보다 어느 정도 완화해줘야 할까, 가령 2배 정도 더 배출한다면 허용해줘야 하는가 등의 고민에서 출발해 정밀검사 배출 허용기준을 만들어야 합리적인데, 환경부가 과연 이런 고민을 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자동차 배출가스 허용기준이란 일산화탄소 탄화수소 등 인체에 해로운 자동차 배출가스를 제한하기 위해 환경부가 정한 기준으로, 자동차회사는 신차를 생산할 때 환경부가 정한 인증시험에서 이 기준을 만족시켜야 한다.
환경부 관계자들은 오히려 이런 사회적 합의의 중요성을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환경부 자동차공해과 관계자는 “정밀검사 배출 허용기준이 자동차 배출가스 허용기준과 명확한 상관관계가 없다”고 스스럼없이 말할 정도다. 일부 자동차 이용자들이 정밀검사를 이중규제라고 비난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은 아닐까. 효과적인 대기환경 개선을 위해서라도 자동차 이용자들의 자발적 참여와 이해를 이끌어내는 정부의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