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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 ‘매화’

찾았다! 한·중·일 문화 동질성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찾았다! 한·중·일 문화 동질성

찾았다! 한·중·일 문화 동질성
퇴계 이황은 매화가 피는 섣달 초순에 운명했다. 그는 운명하던 날 아침 기르던 분매(盆梅)에 물을 주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는 평소 매화를 ‘매형’ ‘매군’ ‘매선’ 등으로 부르며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했으며, 매화를 제재로 한 시만을 모은 ‘매화시첩’을 냈을 만큼 매화를 아꼈다.

퇴계가 매화를 사랑한 이유는 그가 추구했던 도학(道學)과 관계가 깊다. 그는 매화를 ‘인간 내면 세계의 청진(淸眞)’ ‘고결한 기품을 가진 사람’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매화의 이런 특성을 자신이 추구했던 ‘이(理)의 세계’의 상징으로 읽으려 했던 것이다.

매화가 퇴계의 학문에서만 중요한 의미를 지녔던 것은 아니다. 매화는 추위를 이기고 눈 속에서 피는 강인한 특성이 있어 사군자(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나 세한삼우(소나무, 대나무, 매화)에 들어가는, 문인화의 중요한 제재였다. 그 향기는 맑고 깨끗한 인품을, 강인한 줄기와 화사한 꽃은 옥과 같이 강하고 고귀한 성질을, 아름다운 자태는 봄을 미리 알려주는 봄의 전령사를 뜻했다.

옛사람들은 매화를 일상적 의식주의 도구로도 이용했다. 사랑방의 문구와 여인네의 쪽에 꽂은 매화잠(매화를 새긴 비녀) 같은 장신구에도 썼다. 매화부인이나 매화보살이라는 이름으로 사당에 내걸려 숭배의 대상이 됐으며, 관기나 천한 계집종의 이름이 되어 불리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매화가 수천년 동안 한·중·일 삼국에 공통적인 문화적 소재로 자리매김해왔다는 것이다. 서양에는 없고 동북아 삼국에만 있었던 이 나무를 매개로 삼국의 문화적 유산과 동질성을 발견하자는 취지의 책이 출간돼 눈길을 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책임 편집한 ‘매화’는 ‘동북아 2000년의 문화적 DNA를 해독하고, 글로벌 문명을 향한 삼국의 문화 콘텐츠를 발견하기 위해서’라는 거창한 부제를 달고 있다. 정양모 문화재위원회 위원장, 홍윤식 동국대 명예교수, 가미 가이토 데쓰카야마대학 교수 등 각 분야 전문가 22명이 집필한 이 책은 갈등과 분쟁으로 점철됐던 동북아 3국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미 초(超)국가 형태의 유럽연합(EU)의 탄생을 통해 문화의 공유와 그 정체성이 정치·경제를 이끌어가는 새로운 파워로 등장하고 있는 시기”(이어령)이기 때문이다.

물론 삼국은 매화를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발전시켜온 문화도 각양각색이다. 중국에서는 매(梅)라고 했고, 한국에서는 선비들 사이에서 상용되면서 고유어 없이 화(花)를 덧붙여 매화라고 했다. 일본에서는 매실을 훈제시켜 약용으로 쓴 오매(烏梅)의 한자음에서 따 우메(ウメ)라고 불렀다.

매화의 원산지는 중국 쓰촨성(四川省) 등지로 알려져 있는데, 2000년 전에 나온 중국 의약서인 ‘신농본초경’에도 매화에 관한 기록이 있으며, 3000년 전에도 매화가 재배됐다는 증거가 있다. 국내에는 선사시대에 들어왔다는 설이 있고, 일본의 경우에도 기록에 남아 있는 재배 역사가 1200년에 이른다. 그런 유구한 역사를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의 꽃이 피어났던 것이다.

이 책에 실린 다양한 회화와 공예품들은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매화의 희고 정결한 모습을 비유해 얼음 살결과 옥의 뼈라고 칭한 빙기옥골(氷肌玉骨)을 감상할 수 있다.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에 소장된 진헌장의 ‘만옥도’의 매화는 한 송이 한 송이가 마치 옥을 깎아놓은 듯 아름답다.

매화 문양이 들어간 여인들의 장신구, 선비의 문방구, 의약품으로서의 매실의 효용성 등 생활 속에 뿌리내린 매화 문화를 개괄하는 글들은 백과사전식 정보를 제공해준다. 매화가 만발한 곳이나 매화 명소를 찾아 관상하는 관매(觀梅), 아직 봄이 오기엔 이른 때 매화를 찾아 산야를 소요하는 탐매(探梅) 같은 풍습들도 정겹게 다가온다.

오늘에 와서 매화는 상징성보다 실용성이 중시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한국에서는 추상적 의미는 추락하고 건강에 좋다는 이유로 매실주와 매실 원액에 대한 관심만 커졌다. 중국에서도 식용 매실제품들이 개발되고 있으며, 젊은이들 사이에선 장미 등 서양꽃만큼 인기를 얻고 있다. 일본에서는 청주나 소주 상표 가운데 ‘매’ 자가 들어간 술이 46종이나 될 정도로 벚꽃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또 축제와 분재 등을 통해 매화는 우리 생활 속에서 은은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이어령씨는 그래서 욕심낼 만하다고 말한다. 유교 문화권이라는 말로는 풀지 못했던 것(동질성)이 어쩌면 매화 문화권이라는 좀더 구체적이고 복합적인 동북아시아의 문화 콘텐츠를 통해서 가시화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의나무 펴냄/ 288쪽/ 2만9500원





주간동아 413호 (p88~89)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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