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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는 지금 ‘해적과의 전쟁’

영화 개봉 전 해적판 유통으로 ‘흥행 혼쭐’ … 극장 내 촬영 금지·파일 유출 방지 등 ‘비상’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할리우드는 지금 ‘해적과의 전쟁’

할리우드는 지금 ‘해적과의 전쟁’

해적판 영화를 막기 위해 ‘매트릭스 3’는 전 세계에서 같은 시간에 개봉했다.

지금 전 세계 영화팬들 사이에서 초미의 관심사는 11월5일 개봉될 ‘매트릭스’ 3부작의 마지막 ‘매트릭스 3-레볼루션’이다. 결국 ‘매트릭스 3’는 기계와 인간의 전면전으로 이어질 것인가? 네오는 매트릭스 밖에서 살아남을 것인가?

영화팬들이 흥분 속에서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반면 긴장 속에서 ‘D-day’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매트릭스 3’를 만들어 전 세계에 배급하는 워너브라더스사(이하 워너사)다. 극장 개봉 전에 행여 해적판 영화가 유통돼 흥행 수입이 줄어들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트릭스 3’를 전 세계 ‘영화 해적’들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워너사가 수시로 내놓는 대책과 비법에서는 비장감마저 느껴진다.

우선 11월5일 ‘매트릭스 3’는 영화사상 처음으로 전 세계 58개국에서 정확히 같은 시간에 개봉된다. 즉 LA에서는 새벽 6시, 뉴욕에선 오전 9시, 모스크바에선 오후 5시, 그리고 서울과 도쿄에선 밤 11시에 공개된다. 워너사는 이것이 “흥미의 최대치를 높이기 위한 팬서비스”라고 말했으나, 인터넷과 노점상들을 통해 기승을 부리고 있는 해적판 영화를 막기 위한 조치임이 분명하다. 워너사의 대책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한국배급사인 워너브라더스코리아는 시사회에 참석한 관객들이 캠코더나 동영상 촬영 휴대전화 등으로 영화를 찍어 돌리는 ‘캠버전’이 만들어질까봐 보안 및 경호 전문업체에 ‘영화 보호’를 의뢰했으며, 문화관광부 지원을 받아 해적판 영화를 단속하는 ‘한국영상협회’와는 별도로 온라인 대책반을 구성해놓았다.

‘매트릭스3’ 개봉 앞두고 초긴장

할리우드는 지금 ‘해적과의 전쟁’

시사회에서 관람객이 맡긴 촬영 관련 기기(위)와 압수된 해적판 DVD.

“‘매트릭스 2’ 때는 미국보다 일주일 늦게 한국에서 개봉됐기 때문에 인터넷상에서 적발된 것만 500건이 넘었어요. 우선 ‘웹하드’ 회사들에 ‘매트릭스 3’와 관련된 일체의 이미지들을 삭제해달라는 공문을 보냈어요. 시사회장에선 보안검색을 합니다. 대부분 직배사들이 영화에 ‘워터마크’(영화의 프린트에 투명한 표시를 남겨 그것이 촬영됐을 때 언제 어디서 찍은 것인지 확인한다)를 합니다. 모든 유출 가능성을 생각하는 거지요.”(워너브라더스코리아 심영신씨)



워너사로부터 시사회의 보안검색을 의뢰받은 보안 및 경호 업체도 긴장 속에서 시사회를 준비중이다. 주로 VIP 경호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들이 ‘영화 경호’까지 맡게 된 것은 올해 4월 있었던 ‘엑스맨 2’(20세기폭스)의 시사회부터다. 20세기폭스코리아의 허인실씨는 “동영상이 아니더라도 주요 장면들이 개봉 전 유출되는 것을 막는 게 회사의 원칙”이라고 말한다. 이후 거의 모든 직배사들이 블록버스터 시사회 때 전문 보안업체에 ‘보안검색’을 의뢰하고 있으며 최근엔 국내 영화에까지 이런 분위기가 확산되는 추세다.

‘매트릭스 3’ 시사회의 보안검색을 맡게 된 K&I security(이하 K&I)는 원래 톰 크루즈, 마이클 잭슨 같은 해외 스타들이 방한할 때 의전수행을 맡아오다 영화 경호로 연결됐다. 영화사의 의뢰를 받은 K&I 요원들은 시사회장이 결정되면 입구에 센서가 달린 검색대를 설치하고, 소지품 검사를 해서 입장객들이 소지한 카메라 등을 보관했다 돌려준다. 또한 극장 안에선 특수 적외선 안경을 쓴 요원들이 스크린을 촬영하는 관객이 있는지 살핀다.

할리우드는 지금 ‘해적과의 전쟁’

‘캠버전’ 유통을 막기 위한 보안검색은 이제 시사회 관람객에겐 보편적인 ‘통과의례’가 되었다.

테러 공포에 떨고 있는 미국인들과는 달리 우리나라 사람들은 1980년대 ‘가방 검색의 추억’을 갖고 있는지라 ‘겨우’ 영화 한 편 보여주면서 가방까지 뒤지는 데 대해 불만을 가진 이가 없을 수 없다.

K&I 사업본부 함상욱 팀장은 “열 명 중 한 명 정도는 항의를 하고, 간혹 시사회를 포기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호하는 마음으로 검색에 응해달라고 설득하면 대개 이해해준다. 간혹 상영 중 영화를 찍는 사람들이 적발되는데 대개는 호기심 차원에서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처럼 극장에서 캠코더로 찍은 영화는 잡음이 많이 녹음되지만 간단한 프로그램으로 잡음을 제거하고 화질을 DVD 수준으로 개선해 인터넷상에 유통된다.

그러나 최근엔 ‘캠버전’ 불법영화보다 영화사나 배급업자, 프린트 제작회사 등 영화 제작 관련사에서 흘러나온 원본파일이 불법으로 유통되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질이 떨어지는 ‘캠버전’에 비해 원본파일 영화는 완벽한 화질과 음질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더 인기가 높다. 원본파일 영화는 웹하드나 P2P(일대일 파일공유)를 이용하는데 웹하드의 경우 운영회사를 통해 영화파일을 삭제시킬 수도 있지만 개인들 사이에 파일이 오가는 P2P는 감시할 수도, 제재할 방법도 없다.

한국영상협회의 자료(2003년 7월)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학생 10명 중 8명은 인터넷을 통해 불법영화를 본 것으로 나타났지만 대개는 상업적인 목적 없이 ‘남들보다 더 빨리 보고 싶어서’ ‘공짜라서’ 봤기 때문에 죄의식도 희박한 편이다. 한국영상협회 온라인팀의 김계형씨는 “외국에서 먼저 개봉된 영화들은 대개 해적파일이 돈다고 할 수 있다. 해적파일을 만드는 사람들은 예전엔 중·고교생과 대학생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나이가 꽤 든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한다. 대개 그걸로 돈을 버는 건 아니고 네티즌들의 정보 ‘공유정신’이란 명분으로 한다. 자막팀까지 만들어 밤새워가며 번역해 그냥 인터넷에 올린다”고 말한다.

해적들, 돈보다 공유정신 때문?

‘공유정신’은 종종 근거 없는 ‘민족주의’와 결합된다. 네티즌 사이에 한국영화의 불법파일은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 불문율처럼 돼 있다. 한국영화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최초 공개되므로 원본파일이 유출되기 어렵다는 현실적 장애가 있기도 하다.

‘취미 삼아’ 불법 영화파일을 만들어 친구들에게 나눠주곤 하는 회사원 이모씨(31)는 “영화 마니아들의 경우 직배사에 대해 원한(?)이 있는 듯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우리 영화인 ‘조폭마누라 2’의 경우 국내 개봉시 중국에서 불법파일이 들어와 피해를 입었다.

“한류붐이 일어 중국에 ‘조폭마누라 2’의 비디오와 DVD를 수출하기로 했습니다. 그 배달 과정에서 원본파일이 유출됐고 중국어 더빙판이 국내로 들어왔어요. 국내에선 추석 대목을 맞아 영화가 막 개봉된 시점이라 피해가 컸지요.”(현진영화사 강재석 제작이사)

국내 영화사들이 인터넷에 떠도는 불법영화들에 대해 손놓고 있는 반면 해적들을 회개하게 해 극장으로 끌어들이려는 할리우드 영화사들의 각오는 단호하고 그 방법도 다양하다. 미국영화협회(MPAA)는 인터넷 불법영화로 할리우드 영화사들이 매년 40억 달러의 손해를 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할리우드는 ‘캠버전’을 막기 위해 검문검색은 물론이고 아예 촬영이 되지 않는 새로운 영사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며, 원본파일의 유출을 막기 위해 개봉 전 배급업자나 아카데미 회원들에게 DVD를 돌리던 관행을 없애자는 주장도 내놨다. 인터넷에 영화파일을 올린 사람을 법정에 세우는 초강경책을 쓰는가 하면, 극장의 팝콘 판매원을 등장시켜 ‘불법영화 때문에 일자리를 잃게 된다’는 읍소형 광고를 만들어 방송하는 데 막대한 돈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인터넷의 바다는 넓고 해적들이 훔칠 영화는 많다. 이를 막을 대책이 없다면 대안을 만드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가장 현실적인 안은 영화사에서 파일을 유료로 팔거나 영화 콘텐츠를 다양한 단말기를 통해 판매하는 것이다.

영상미디어센터의 김명준 소장은 “지금의 영화는 문화로서 사회적 기능을 잃었다. 혼자 소비하고 즐기면 끝이다. 토론도 없고, 공론화되지도 않는다. 인터넷의 불법영화들은 개인적 오락이 되어버린 영화가 스스로 불러온 결과”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영화의 지적재산권은 보호받아야 하나 영화가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은 인터넷의 해적들이 아니다.

역설적이지만 인터넷의 해적들 대부분은 본질적으로 열성적인 영화팬이다. 해적을 잡겠다는 영화사의 대책들이 이 점을 지나쳐버린 건 아닐까.



주간동아 407호 (p72~73)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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