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7

2003.10.30

‘실세 찍어내기’ 이광재는 신호탄?

통합신당, 후속 인적 청산 집요한 요구 … 정국돌파 카드인가, 총선전략인가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3-10-23 1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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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세 찍어내기’ 이광재는 신호탄?

    이광재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10월18일 새벽, 이광재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은 매우 괴로운 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정치권의 사퇴 압박 때문이다. 측근들은 전화를 통해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듣고 그가 만취했음을 직감했다. “이제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나는 욕심 없다. 대통령이 잘되는 길이라면 지금이라도 그만둘 수 있다.”

    취중이었지만 주군을 향한 충성심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이어지는 목소리는 그를 ‘찍어’내려는 세력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했다고 한다.

    “내가 무슨 정보와 권력을 독점했나. 쉬지 않고 일했는데…. 내가 뭘 잘못했나.”

    이실장은 이날 “모든 것을 끝내겠다”고 측근들에게 선언했다. 미국 유학을 가겠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지난 2월, 청와대로 가기 전 미 스탠퍼드대 유학을 준비했던 그였다. 고통의 밤을 지샌 이실장은 바로 사표를 제출했다. 청와대를 나선 이실장은 강원도 오대산에 있는 산사(山寺)로 갔다고 한다. 한 측근은 “이실장이 ‘왜 하필 나인가’라는 화두를 놓고 가을 산사에서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력이 아니라 의무이자 사명’으로 청와대 생활을 했던 이실장이다. 그런데 ‘왜 이광재일까.’

    이광재 실장 인사 관련해 여기저기에 ‘적’



    이실장은 2급 비서관이다. 청와대에는 1급 및 수석비서관, 보좌관 등 수십개의 더 높은 직책이 그 위에 있다. 직제로 보면 이실장은 수십명에 이르는 비서관 가운데 한 사람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파워맨으로 군림하는 데는 15년지기라는 노대통령과의 연(緣)에서 비롯된 노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해 ‘눈물 흘리는 노무현, 기타 치는 노무현’ 등과 같은 아이디어를 제안, 미디어 선거를 압도했던 이실장은 청와대에서도 비슷한 역할을 수행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실장은 노대통령이 각종 난제에 맞닥뜨릴 때마다 ‘미국의 경우 이런 방법을 동원, 이렇게 해결했다’는 식의 대안을 수시로 제시해 노대통령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고 한다.

    통합신당 K의원은 “대통령의 이런 신임이 불행의 시작이었다”고 말한다. 이 신임을 바탕으로 대통령의 눈과 귀를 멀게 했다는 것이 K의원의 진단. 참여정부 7개월 만에 찾아온 국정혼란과 위기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이실장이 져야 한다는 주장의 이론적 배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추상적 책임론이 ‘이광재 끌어내리기’의 전부라고 볼 수는 없다.

    그 속에는 정국 주도권을 놓고 청와대와 ‘여의도 정치권’이 벌인 보이지 않는 파워게임도 존재한다. 조직과 인사를 놓고 벌인 암투는 참여정부 출발 전부터 시작됐다. 특히 인사와 관련해 이실장은 ‘공공의 적’으로 규정됐다. 참여정부 출범 초기의 일이다. 민주당 고위관계자의 한 측근은 취재진에게 당시만 해도 생소한 ‘배신’이란 단어를 써가며 이실장을 비난했다. ‘윗선’의 내락까지 받은 모 인사의 청와대행을 이실장이 틀어 수포로 만들었다는 게 비난의 배경이었다. 당시 이런 불만은 민주당 내 ‘대선공신’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터져 나왔다. 2월 말, 청와대 비서진 인선 당시 대선공신인 민주당 L의원에게는 “행정관 한 명 제대로 집어넣지 못했다”는 현역의원들의 항의가 수시로 쏟아졌다. 이 의원은 이들에게 “나도 마찬가지”라고 위로했지만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이들 현역의원들은 나중에 청와대 인사가 386 그룹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힘에 의해 확정된 것을 확인한 뒤 탄식했다고 한다. 언론으로부터 모 부처 장관 후보로 거론된 민주당 소속 한 현역의원은 2월, “축하전화까지 받았는데 갑자기 (노무현 대통령과) 라인이 끊어졌다”며 의아해했다. 이 인사는 이후 다른 경로를 통해 자신이 이 386 장벽의 피해자임을 확인하고 씁쓰레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도대체 왜…’라는 의문은 내막을 파헤치는 적극적인 행동으로 이어졌고, 결국 길목마다 등장하는 이실장과 386그룹의 ‘그림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 당시 ‘물’을 먹은 민주당 인사들은 “이실장이 개혁과 코드라는 명분으로 당과 외곽의 접근을 철저하게 차단했다”고 보고 있다.

    ‘실세 찍어내기’ 이광재는 신호탄?

    5월28일 노무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동안 문재인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회견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최근 이실장은 인사위원회 관계자와의 회의자리에서 공론화한 안에 대해 반대의견을 개진, 참석자들을 머쓱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 소식은 곧 ‘청와대발’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통합신당과 정치권에 전해졌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정치권 인사 한 사람이 이실장을 ‘DJ(김대중 전 대통령) 정부 4년차의 박지원’이라고 표현하더라”고 전했다.

    이실장은 청와대와 정부 내에 포진한 386그룹의 횡적 네트워크를 형성, 사실상 구심점 노릇을 했다는 의혹을 산다. 이 네트워크를 통해 386의 중심에 서고 이 네트워크를 통해 국정운영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게 정치권의 진단이다.

    초기 인사를 통해 기선을 제압한 이실장은 이후 정보와 권력까지 장악했다는 게 그에 대한 비판적인 사람들의 주장이다. 4, 5월에 접어들면서 민주당 주변에서는 청와대의 핫라인에 이상이 있다는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커뮤니케이션 부재로 인해 청와대에 대한 당의 불신과 불만이 증폭됐다. 당정 간 정책조율도 불가능했고 여당과 청와대가 ‘따로 노는’ 한심한 상황까지 발생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분당되기 전 신당으로 간 의원들이 현재와 같은 비정상적인 ‘당-청 관계’가 지속될 경우 최악의 상황이 올 것이라며 몇몇 청와대 참모진의 ‘찍어내기’에 대한 생각들을 공유했다”고 말했다. 7월, 민주당 주변에서 느닷없이 이해찬·천정배 의원 등 당내 인사들의 청와대 입성론이 터져 나왔다. 미숙한 정국운영을 지켜보던 당 관계자들이 몇몇 측근들과 386그룹의 대안세력으로 이들을 생각했던 것. 그러나 당의 이런 계획에 청와대가 반응을 보이지 않아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다 재신임 정국을 맞아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온 ‘인적 청산론’이 힘을 얻고 있다.

    “문재인 정찬용 이호철도 물러나야”’

    ‘실세 찍어내기’ 이광재는 신호탄?

    노무현 대통령이 10월19일 APEC 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출국하면서 환송 나온 인사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이제 관심은 ‘이광재’ 이후의 청와대다. 통합신당측은 계속 밀어붙이겠다며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인적 청산 바람은 마치 2000년, 정동영 의원이 주창한 ‘정풍운동’과 흡사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천정배 의원은 “어느 한 사람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 아니라 청와대 보좌진의 전면개편을 요구한 것이 내 진의이자 본심”이라고 말했다. 비리가 있어서가 아니라 참여정부가 분위기를 일신하기 위해서는 큰 변화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청와대 보좌진을 개편해야 한다는 생각을 밝혔다는 것이다. 신당의 대체적인 기류는 ‘선(先) 쇄신이 정국 돌파에 도움이 된다’다. 어차피 내년 총선에서 노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불가피하며 이에 대한 책임은 신당에 전가될 수밖에 없다. 386 측근들이 청와대에 남아 있으면 득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적 청산의 또 다른 배경이 총선전략임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지난 대선 당시 노후보 언론특보를 지낸 통합신당의 장세환 원내대표 정치특보는 10월19일 “사표를 낸 이광재 국정상황실장 외에 실세 참모 세 명도 당장 물러나야 한다”며 문재인 민정수석비서관, 정찬용 인사보좌관, 이호철 민정1비서관의 사퇴를 주장했다. 이와 함께 정부의 이라크 추가파병 결정 과정에서 정부가 통합신당측과 아무런 사전협의를 하지 않은 것이 ‘불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통합신당 김성호 의원은 의원총회에서 “청와대 정무 라인, 외교·안보 라인 등 관련 수석비서관들을 경질할 필요가 있다”며 유인태 정무수석비서관, 라종일 안보보좌관 등을 겨냥한 발언을 했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집권 초기 ‘아칸소 사단(아칸소 주지사 시절 측근 그룹)’을 중용했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집권 1년차를 전후해 퇴진했다. 미국 언론은 이들의 퇴진 배경에 대해 “워싱턴 (정치) 문화가 낯설었고, 무엇보다 경험과 경륜이 일천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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