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7

2003.08.14

미꾸라지 이천수 “빅리그서 용 될래요”

베컴·호나우두 등 세계적 스타들과 경쟁 기회 … 기대 반 의심 반 반응 속 자신만만

  • 산 세바스티안= 최원창/ 굿데이신문 기자 gerrard@hot.co.kr

    입력2003-08-07 10:1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미꾸라지 이천수 “빅리그서 용 될래요”

    이천수는 프리메라리가 에서 영플레이어상을 수상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Come on! 스페인.’ 스페인 왕족이 일광욕을 즐겨왔다는 휴양도시 산 세바스티안. 바로 이곳이 ‘미꾸라지’ 이천수(22·레알 소시에다드)가 세계적인 빅스타로 발돋움하기 위한 전초기지다. 한국인 최초의 프리메라리거인 이천수는 이적료 350만 달러(42억원), 연봉 50만 달러(6억원) 등 한국선수 사상 최고액을 받고 스페인 레알 소시에다드에 입성했다. 그는 베컴과 호나우딩요 등이 합류한 올 시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과연 ‘이천수 돌풍’을 일으킬 수 있을까. 이천수는 입단식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레알 마드리드를 깨보이겠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세계축구역사통계연맹(IFFHS)이 프리메라리가를 세계 최고의 축구 리그로 선정했을 만큼 스페인 프로축구의 수준은 높다. “베컴을 이겨 보이겠다”는 이천수가 스페인에서 성공의 축포를 쏘아 올릴 수 있을지에 축구팬들의 눈과 귀가 쏠려 있다.

    차붐을 이어라

    1978년 차범근이 독일에 진출한 이후 유럽 땅을 밟은 축구선수는 이천수를 포함해 모두 25명. 하지만 분데스리가 통산 308경기에 출전, 98골을 터뜨리고 유럽축구연맹(UEFA)컵에서 두 차례 우승을 이끈 차범근을 능가한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다. 김주성 황선홍 서정원 안정환 이동국 등 내로라하는 한국축구의 스타들이 좌절을 맛보며 국내로 복귀했고, 송종국(페예노르트) 이영표 박지성(이상 아인트호벤) 차두리(프랑크푸르트) 등도 아직은 유럽 무대에 확실히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천수가 국내의 한 축구전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축구사에 차범근 감독님과 동급으로 기록될 선수가 되는 것이 목표다”라고 밝힌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페인리그는 전 세계 축구팬이 주목하는 빅리그인 만큼 프리메라리가에서의 성공은 곧바로 세계적인 대형 스타로의 등극을 의미한다. 이천수의 올시즌 목표는 주전 확보와 챔피언스리그 득점, 그리고 리그 우승과 ‘영플레이어상’ 수상이다.

    초반에 승부수를 던져라



    지난 시즌 44골을 합작한 세르비아-몬테네그로 국가대표인 코바체비치의 ‘힘’과 터키 국가대표 니하트의 ‘세기’는 그야말로 스페인 최고의 공격라인으로 손꼽힌다. 2002년 월드컵에서 스페인 대표로 나서 3도움을 기록한 왼쪽 날개 데 페드로와 오른쪽 날개인 러시아 대표 카르핀 등의 면면을 살펴봐도 이천수가 주전을 따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35살 노장인 카르핀이 지키고 있는 오른쪽 날개 자리가 그나마 이천수가 노려볼 만한 포지션이다.

    스페인리그와 챔피언스리그, 코파 델 레이(스페인컵) 등에 모두 출전해야 하는 레알 소시에다드는 빈약한 선수층을 보완하기 위해 이천수를 영입했다. 이런 이유로 이천수는 시즌 초 후반 조커로 투입될 가능성이 높다. 만일 이천수가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한다면 안정환 이동국이 그랬던 것처럼 시즌 내내 벤치 신세를 면치 못할 가능성도 높다. 레알 소시에다드의 드누에 감독은 “이천수가 스페인에 온 것이 단지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천수는 경기장에서 나를 놀라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레알 소시에다드의 초반 대진은 이천수의 편이다. 9월1일(이하 한국 시간) 개막전 상대인 에스파뇰은 지난 시즌 17위를 차지하며 간신히 2부 리그로 강등되는 것을 면한 약체고 이후 맞붙을 셀타 비고, 라싱 산탄테르, 사라고사 등도 충분히 해볼 만한 상대다. 만약 이천수가 이들 팀을 상대로 데뷔골을 터뜨린다면 이천수의 성공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레알 소시에다드 올라베 사무국장은 빠른 스피드를 가진 이천수가 스페인리그의 느슨한 수비라인을 충분히 돌파해낼 것으로 믿고 있다. 그만큼 골키퍼와의 1대 1 찬스가 많아진다는 것인데 이천수가 스페인에서 명심해야 할 것은 ‘1대 1 찬스를 절대 놓치지 말라’는 것이다. 해결사가 즐비한 최고의 리그에서 결정적 찬스에서 골을 터뜨리지 못하면 감독에게 신임을 받을 수 없다.

    산 세바스티안 현지의 반응은 환영 일색이다. 하지만 그들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이천수가 몸담고 있는 산 세바스티안은 스페인에서도 거칠기로 소문난 바스크 지방의 핵심 도시다. 다혈질인 시민들은 조금이라도 실망하게 되면 가차없이 등을 돌린다. 터키 출신의 니하트가 초반에 ‘투르코(터키인을 비하하는 별명)’로 불리며 텃세에 시달린 것도 이천수가 참고해야 할 사항이다.

    스페인 스포츠전문지 ‘아스’의 R. 산체스 기자는 낯선 이방인인 이천수가 과연 스페인 문화에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해 우려를 보이며 “이천수가 뭔가 다른 독특한 컬러를 보여야 성공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또 다른 스포츠전문지 ‘엘문도데포르티보’는 “이천수는 자신이 베컴보다 낫다고 주장한다. 그 역시 벤치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리그에서 10골을 터뜨리겠다고 자신하고 있다. 하지만 드누에 감독은 아주 냉정하고 명확하게 판단한다. 이천수는 몇 달 동안 벤치에 머물러야 할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속옷 세리머니는 계속된다

    이천수의 가장 큰 장점은 매사에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말수가 적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다른 한국선수들과는 다르다. 바로 이 점이 이천수의 성공 가능성을 높여준다. 국내 축구팬들이 “이천수는 무언가 다를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내는 것도 건방져 보일 만큼 당돌한 이천수의 당당함 때문이다.

    스페인에선 이천수가 말끝마다 베컴과 자신을 비교하는 게 화제가 되고 있다. 이천수의 이런 자신감에 흥미를 느끼면서도 스페인 기자들은 조소를 금치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천수의 생각은 다르다. 이천수는 “베컴이나 나나 스페인리그 새내기일 뿐이다. 베컴이 나보다 나은 것은 줄곧 유럽에서 뛰어왔다는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이천수는 베컴을 뛰어넘어 3년이 지난 후 자신의 몸값을 1000만 달러까지 올려놓겠다고 자신한다.

    이천수는 프리메라리가에서 첫 골을 터뜨린 후 ‘대한민국’이 적힌 속옷 세리머니를 보여줄 준비를 하고 있다. 한글로 적힌 조국의 이름 네 글자로 자신의 첫 출발을 알리겠다는 것이다. 이천수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대한민국에서 온 베컴’으로 등극할 수 있을지는 9월 한 달 그가 어떤 플레이를 보여주느냐에 달려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