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7

2003.08.14

新 문화코드 ‘전지현 따라잡기’

각종 인기도 조사에서 부동의 1위 … 화장·의상까지 ‘전지현표’ 인기 폭발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3-08-06 16: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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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新 문화코드 ‘전지현 따라잡기’

    영화 ‘4인용 식탁’ 시사회에 참석한 전지현. 2년 만의 공식적인 외출이라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사람들은 언제나 제가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이길 바라죠. 하지만 어떤 사람을 두고 확실하게 이런저런 선을 그을 수 있을까, 그 안에 내가 갇혀 있는 건 아닐까, 그 이미지 안에서 뭘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게 옳을까 하는 고민을 하다가 ‘4인용 식탁’을 선택했어요. 제가 이런 역을 할지 몰랐기 때문인지 다들 놀라요.”

    이론의 여지 없이 현재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배우 전지현(22)이 8월8일 개봉을 앞둔 영화 ‘4인용 식탁’을 ‘처음’ 봤다며 한 말이다. 좀처럼 말문을 열지 않을 것 같은 그에겐 일단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듣는 사람을 설득하는 능력이 있다. 연예계에선 내성적인 성격으로 소문이 나 있는 그다. 중학교 3학년 때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유달리 자기 감시 시스템을 발달시킨 탓으로 보이긴 한다. 가끔은 그의 말에서 쉼표의 의미도 읽어내야 한다. 전지현은 “관객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영화를 보고 싶어 일부러 시사회까지 기다렸다”고 말했다.

    ‘4인용 식탁’ 시사회장 북새통

    첫 시사회장은 말 그대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엽기적인 그녀’ 이후 2년 만의 출연인 데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한 달 동안 미국에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바람에 모든 연예 관련 매체가 그를 만나기 위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엽기적인 그녀’가 일본과 중국에서도 인기를 얻은 탓인지 외신 리포터들의 모습도 눈에 많이 띄었다.

    “솔직히 대중들은 전지현의 신작이 아니라, 전지현의 몸을 좋아하는 거지요. 요즘 보기 드물게 성형수술도 화장도 안 한 얼굴이라 더 인기가 있고요. 소속사의 방침에 따라 인터뷰도 거의 안 하니까 전지현의 일거수일투족이 기삿거리가 될 수밖에 없어요.”



    전지현이 미국에 체류중일 때도 며칠에 한 번씩 전지현 관련 기사를 썼다는 스포츠신문 연예부 기자의 말이다. 그는 “전지현이 데뷔 후 고친 건 ‘왕’씨에서 ‘전’씨로 바꾼 성뿐인 듯하다”고 덧붙였다.

    전지현은 지난 2년 동안 영화에도, 드라마에도 출연하지 않았지만, 연간 50억원의 수익을 기록하며 일반인을 상대로 한 거의 모든 연예인 인기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 ‘여자친구로 가장 사귀고 싶은 연예인’인 것은 물론이고 ‘가장 닮고 싶은 몸매의 연예인’ ‘수영복이 가장 잘 어울리는 연예인’ ‘같이 바캉스 가고 싶은 연예인’ 등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언제나 1위다.

    남성패션잡지 GQ 6월호 ‘광고 비주얼에서 찾은 나만의 심벌’이란 칼럼에는 8등신 외국모델들이 도발적 포즈를 취하고 있는 ‘구찌’ ‘입생로랑’ 등의 광고 비주얼과 나란히 ‘지오다노’의 모델인 전지현의 사진이 게재돼 있다. 김성수 감독이 영화 ‘내일은 없다’를 패러디해 만든, 100% 전지현표 광고다.

    ‘레이어드된 톱을 살짝 치켜올리는 듯한 손과 트레이닝 팬츠를 살짝 내린 손. 그 사이에 펼쳐진 비옥한 복부’.

    전지현이 아니었다면 요즘 여성들 사이에 ‘완벽한 복부 만들기’ 요가가 광풍을 일으킬 수 있었을까. 전지현이 없었다면 인터넷 쇼핑몰에서 ‘전지현의 뺨과 입술’을 만들어준다는 장밋빛 ‘틴트’(색조화장품의 일종)가 정기적으로 ‘품절’될 만큼 팔려나갈까. 제품 구입자들은 ‘엽기적인 그녀’에서 보여준 전지현의 건강하고 청순한 얼굴의 ‘비밀’이 이 화장품이라는 굳은 신념을 나누고 있어서 ‘소비자평’은 ‘정말 전지현처럼 됐어요. 환상이에요’ ‘전지현처럼 되지 않는데, 사용법이 잘못된 건가요’ 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지금 젊은 여성들에게 ‘전지현 스타일’은 샤넬보다 더 위력적인 브랜드인 것이다. 일반인뿐 아니다. 막 데뷔한 신인 연예인들은 ‘제2의 전지현이라 불러주세요’ ‘저는 전지현이 아니에요’라는 인터뷰로 지면을 채운다. 가히 ‘전지현 현상’이라 할 만하다.

    新 문화코드 ‘전지현 따라잡기’

    영화 ‘4인용 식탁’에 출연한 전지현. G패션광고는 전지현이 이 시대의 아이콘임을 보여주지만, 남성들의 눈을 사로잡는 광고 속의 이미지는 전지현이 누리는 행운이자 극복해야 할 문제다(아래).

    오죽하면 ‘전지현 따라잡기’라는 영화가 만들어졌을까.

    - 평소 마음에 두고 있던 동문선배 우주가 전지현이 나오는 뮤직비디오를 향해 던지던 뜨거운 눈빛이 떠오르며, 그녀는 갑자기 궁금하다. 왜 모든 남자의 이상형은 전지현이지? 선배의 진정한 우주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내가 전지현이 되는 거야. 결국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찾기 위해 그녀는 전지현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전지현의 모든 것을 분석하여 온라인에서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 클럽을 조직한다. 클럽의 이름하야 ‘전지현 따라잡기’.(중략) 클럽의 활동은 CF와 드라마, 영화, 연예프로그램까지 통계 및 스타일을 정리하며 차트화한다. 그리고 비슷한 외모를 가꾸기 위한 노력을 거듭하고 스타일과 말투 등 사소한 모든 부분에서 전지현이 되는 것.(후략) - 영화 ‘전지현 따라잡기’ 시놉시스

    10대 패션잡지 모델로 연예활동을 시작한 전지현은 지금까지 드라마 두 편과 ‘화이트 발렌타인’ ‘시월애’ ‘엽기적인 그녀’, 그리고 ‘4인용 식탁’ 등 단 네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결국 사람들이 기억하는 전지현은 테크노 음악에 맞춰 그 긴 몸(172 cm)을 흔들어대던 광고들과 바로 그 캐릭터를 90분 동안 보여주는 영화 ‘엽기적인 그녀’뿐이다.

    전지현이 ‘엽기적인 그녀’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는데도 여전히 연기가 아니라 15초짜리 ‘광고 이미지’로 존재한다는 점은 그에게도 퍽 곤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와 인터뷰를 하는 거의 모든 기자들이 전지현에게 ‘광고에서 보여준 섹시한 이미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기 때문이다. 그가 아이를 가진 30대 주부, 혼령을 보는 무당의 딸이라는 쉽지 않은 연기를 해야 하는 ‘4인용 식탁’을 선택한 것도 그런 이미지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마음에 들어서 영화를 선택했어요. 하지만 나이 많은 주부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을 겪은 여자라… 연기는 너무 많이 힘들었어요. 내가 가진 상상력 안에서 그녀의 심리상태를 알려고 내가 그런 일을 겪으면 어떨까… 고민 많이 했는데. 결과는 관객들이 판단해주시겠지요.”

    자연산 섹시미와 청순미의 조화

    관객들은 장밋빛 입술에 흩날리는 머리가 아니라 부르튼 입술에 질끈 묶은 머리, 복부를 노출하기는커녕 시종 두툼한 겨울옷으로 몸을 감싸고 나오는 전지현의 모습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

    ‘4인용 식탁’으로 데뷔한 이수연 감독은 “훨씬 나이 많은 배우를 캐스팅하려다가 전지현씨가 나이는 어리지만 카리스마가 있고, 신비한 느낌이 있다는 점, 다양한 캐릭터가 가능한 얼굴을 가졌다는 점 때문에 그를 캐스팅했다. 물론 본인이 강력히 원했다는 점이 제일 많이 고려됐다”고 말했다.

    ‘4인용 식탁’은 전지현이 ‘운명’이라 말했던 작품을 선택하는 능력, 이미지가 아니라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는 카리스마, 그리고 배우로서의 열정과 성실함을 관객들이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스트레이트’한 영화다. 그것이 전지현의 ‘도전’을 부추겼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4인용 식탁’은 ‘전지현 현상’ 이후 배우로서 그를 평가하는 첫번째 영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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