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7

2003.08.14

‘게임 갈등’ 세대 간극 더 벌어지나

게이머 vs 겜맹 시각차 넘어 대결 양상 … ‘각종 부작용’ 가족간 신뢰 부재 탓 분석도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03-08-06 15: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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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 갈등’ 세대 간극 더 벌어지나

    게임에 몰입한 청소년들은 종종 극심한 현실과의 단절현상을 겪는다.

    ”인생은 게임이랑 비슷한 것 같아. 아이템과 레벨에 대한 집착 때문에 아까워서 사는 것 같아. 지금은 처자식도 없고 레벨도 낮으니까. 하지만 사는 이유와 자신을 바꿀 힘이 없다면 이런 게임 관두면 되잖아….”

    7월21일 한 대학생이 자신의 방에서 줄넘기로 목을 매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자신의 스물한 번째 생일날 밤이었다. 충격적인 것은 그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이미 자살을 암시했다는 사실. 그는 자신이 자살에 사용한 줄넘기 사진을 싣고 “줄넘기나 해야지. 어, 줄에 걸렸네…. 잠깐 이대로 있어도 괜찮겠지”라는 글을 남겼다. 대학교수 아버지와 명문대생 아들을 둔 남부럽지 않은 가정이었지만, 일본 애니메이션과 컴퓨터게임에 지나치게 몰입해 거의 우울증 증세를 보인 아들과 이 아들을 정신병원으로 이끄는 아버지 사이에 마찰이 심했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30대 직장인까지 중독에 반발

    청소년들이 지나치게 게임에 몰입하는 데 대한 기성세대의 우려가 최근 ‘게임중독’ 논쟁으로 ‘확전되는’ 양산을 보이고 있다. 오래 전부터 컴퓨터게임을 즐기는 이들 게이머는 학교생활과 직장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게임에 몰입해 정상적인 대인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받아왔다. 하지만 이제 30대 중반까지 확대된 두터운 층을 자랑하는 게이머들의 본격적인 반격이 시작됐다. 경쟁을 권하는 사회에서 홀로 즐길 수 있는 최상의 두뇌 스포츠가 게임이며 게임을 이해하게 되면 고립감이 아니라 오히려 소속감을 느낀다는 주장이다. 앞서 자살한 대학생 역시 동호회 회원들 사이에서는 스스럼없이 쾌활하게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21세기 최고의 문화 콘텐츠 산업이라는 게임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는 이미 세대갈등을 넘어 게임을 모르는 이른바 ‘겜맹’들과 게이머 간의 심각한 대결 양상으로까지 나타난다.

    7월21일 KBS 프로그램인 ‘아침마당’측은 국내 최고의 프로게이머 임요한 선수를 초청해 게임과 중독에 대한 일종의 청문회를 열었다. 프로그램 진행자들은 ‘게임회사와 프로게이머가 청소년들을 게임중독의 길로 이끌고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게임중독과 그로 인한 폭력성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며 임요한을 몰아세웠다. 그러나 프로그램이 방영된 지 단 일주일 만에 30만명에 달하는 임요한 팬클럽 회원들과 게임 마니아들이 KBS 홈페이지 게시판에 5만 건에 가까운 항의성 글을 올리며 KBS측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놀라운 점은 초등학생부터 30대 직장인에 이르기까지 논리정연하게 ‘중독’이라는 게임에 대한 기성세대의 부정적인 선입관에 대해 각성을 촉구하고 나선 것.



    겜맹의 눈에는 게임에 빠진 이들의 삶이 그야말로 한심해 보이지만 게이머들은 ‘게임중독’이란 표현에 대해 수긍할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미디어평론가 라도삼 박사는 “모든 미디어에 중독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중독만으로 게임문제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는 ‘게임산업은 21세기 우리 경제의 희망’ 따위의 낭만적인 시각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게임을 산업으로 바라보면 청소년들이 소비자로만 보이며, 중독의 틀로 이해하면 범죄자로만 보인다.”

    하지만 병리학적으로는 인터넷과 게임 중독은 알코올 중독과 도박중독과 같이 실질적인 악영향을 미친다는 데 기성세대의 고민이 있다. 대인관계에 한계를 드러내고, 현실과 가상공간을 구분하지 못하는 등 청소년 탈선과 폭력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각종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중독에 대한 진단법과 치료법이 속속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겜맹 의사가 어떻게 게이머를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인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더구나 최근 약물중독과 게임중독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다는 연구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대화 단절에 대해서는 게이머들이 할 말이 많아 보인다. 고등학생 정모군(18)은 “우리는 게임이라는 통로를 통해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른들은 소통이 단절됐다고 하고, 우리는 게임을 학습하고 연구하는데 그저 놀고 있다고 비난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 따른 갈등이 증폭되면서 심각한 사회적 갈등으로 표출되고 있는 셈이다.

    얼마 전 ‘리니지’에 몰입해 학교를 자퇴하고 가출했다가 부모손에 이끌려 병원에 온 전형적인 게임 중독성 환자를 치료한 적이 있는 서울 백병원 신경정신과 우영재 전문의는 게임 자체보다는 가족관계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게임으로 인해 사회에서 낙오됐기 때문에 중독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환자를 치료하면서 아이가 게임이라는 거대한 세계로 도피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게임중독은 자살의 이유가 아니라 살아오면서 부모와의 사이에서 생긴 마찰을 게임으로 해소한 경우였다.”

    게임산업개발원의 김민규 박사는 미래적인 매체인 게임의 가능성에 주목하지만 세대갈등, 나아가 게이머와 겜맹 사이의 인식 차에 대해 우려를 표시한다.

    “매 시각 수많은 가상공간 속에서 젊은이들은 새로운 경험을 축적하고 있다. 단지 게임에 대한 비하와 몰이해가 세대간의 갈등으로 비쳐지면서 문제가 커지고 있을 뿐이다. 기성세대가 게임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절대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인 만큼 답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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