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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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입맛 잡아라, 돈이 보인다”

요식업계 ‘여성 마케팅’ 불황 탈출 새 전략 … “女心 잡으면 입소문 나고 곧 매출로 연결”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3-08-06 14: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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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 입맛 잡아라, 돈이 보인다”

    ‘여성 감각’을 내세운 생맥주 전문점 ‘큐즈(Q’z)’에서 여성 손님들이 맥주를 즐기고 있다. ‘Q’z’는 ‘Queen’s zone’의 약자라고.

    지난 5월 초 처음으로 문을 연 생맥주 전문점 ‘큐즈(Q’z)’에는 ‘비어 갤러리(Beer Gallery)’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맥주 미술관’이라는 뜻이다. 흔히 생맥주 전문점이라고 하면 널찍하고 밋밋하기 이를 데 없는 호프집을 연상하게 마련. 그러나 ‘큐즈’는 여느 생맥줏집과는 달리 ‘미술관’이라는 닉네임에 걸맞게 입구에서부터 홀 구석구석까지 아기자기한 인테리어가 눈길을 잡아끈다. 홀 한편에는 맥주의 제조공법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쿨링 파이프(cooling pipe)’가 있고 혼자 앉아서도 맥주를 즐길 수 있는 중앙의 바에는 저녁마다 인공눈이 내려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생맥주를 즐기는 사람들은 대부분 독특한 맥주맛에 무릎을 치거나 값싼 안주에 흡족해하는 사람들이다. 인테리어나 시설은 매상과는 별 관계가 없는 부가서비스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맥줏집을 찾는 손님이 여성들이라면 사정이 조금 달라진다. “500 한 잔 더!”를 외치며 연거푸 생맥주만 들이켜기보다 술과 분위기를 함께 즐기고자 하는 여성들에게는 맥주맛 못지않게 깔끔한 여성 취향의 인테리어가 중요하기 때문. ‘큐즈’는 아예 문을 열 당시부터 여성을 위한, 여성 감각의 맥주 전문점을 표방했다.

    여성만을 위한 점포 잇따라 개업

    최근 창업 시장에서 이렇듯 ‘여성’을 테마로 하는 새로운 업종들이 하나둘씩 선보이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여성’을 마케팅의 중심에 놓는 발상은 불황기 전략의 고전이 되었지만, 먹고 마시는 데 관한 한 여성이 중심에 놓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최근의 트렌드는 불황기 창업 시장의 새로운 틈새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여성 입맛 잡아라, 돈이 보인다”

    젊은이들의 거리인 신촌에서는 아예 ‘남성출입금지’를 내세운 ‘여성 전용’ 낙짓집도 찾아볼 수 있다.

    여성 감각의 맥주 전문점 ‘큐즈’는 인테리어뿐만 아니라 각종 설비나 메뉴까지도 철저히 여성들을 겨냥했다. 최근 창업에 나서는 사람들 사이에서 화두 중 하나로 등장한 ‘숍 인 숍(shop in shop)’ 개념을 도입해 향초나 캐릭터 인형 같은 액세서리를 파는 별도의 소형 매장을 마련했다. 깜짝퀴즈나 인터넷 방송 등 여성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아기자기한 이벤트도 빠지지 않는다. 메뉴 또한 생맥주 전문점치고는 다양하고 화려하다. 다이어트 냉채, 저지방 기능성 치킨 등 여성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음식들이 한둘이 아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여성 고객, 그 중에서도 자가 운전자들을 노린 ‘세트 메뉴’까지 등장했다. ‘세트 메뉴’는 패스트푸드점에나 있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생맥주 285cc잔에 한 주먹의 스낵 안주를 곁들인 ‘세트 메뉴’를 내놓은 것이다. 생맥주 285cc는 맥주를 마신 뒤 바로 음주단속에 응해도 혈중 알코올 농도가 기준치를 넘지 않는 정도의 음주량에 해당한다는 것이 업소측의 설명이다.



    음주문화에서는 늘 ‘조연’일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이 ‘주연’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이 입소문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 지 3개월. ‘큐즈’에는 매일 저녁 전체 고객의 70% 이상을 여성들이 차지한다. 심지어 맥줏잔을 나르는 남자 종업원들조차 여성들의 관심을 끌 수 있도록 인물 위주로 뽑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나같이 미끈하다.

    신촌 일대에서 값싸고 특색 있는 음식점을 원하는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아저씨네 낙지찜’은 ‘여성 우대’라는 면에서 보면 원조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아예 출입문에 ‘남성은 여성을 동반할 경우에만 출입이 가능하다’는 문구를 써 붙여놓았을 정도로 여성 위주의 영업을 원칙으로 한다. 술안주로 유명한 낙지를 주메뉴로 하면서도 술은 1인당 1병으로 제한하고 술에 취했거나 큰소리를 내는 손님에게는 옐로카드를 제시한다.

    “여성 입맛 잡아라, 돈이 보인다”

    ‘여성 우대’를 내세우는 음식점은 특색 있는 맛과 낮은 가격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벤트로 여성들을 즐겁게 한다.

    유민수 사장은 “여성 고객은 특히 입소문이 빠르기 때문에 여성 우대 전략은 곧바로 매출로 연결된다”며 “여성 고객 1명이 남성 고객 5명 몫을 한다”고 말했다. 당연히 모든 서비스는 여성 중심이다.

    노출이 심한 여름철에는 여성에 한해 1회용 앞치마를 제공하는 서비스도 유사장의 아이디어다. 다른 사람이 쓰던 앞치마가 피부에 닿는 것을 불쾌해하는 여성 고객들을 위한 배려. 심지어 화장실에 만일에 대비해 생리대까지 비치해놓았을 정도로 여성의 마음을 읽는 세심한 서비스가, 어쩌면 낙지보다도 더 유명한 이 집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렸다.

    특화된 아이디어 제공 여부가 관건

    여성들의 씀씀이는 남성에 비해 불황을 덜 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여성들만의 음주가 늘어나면서 일부 음식점이나 술집의 여성 특화전략은 그대로 맞아떨어지고 있다. ‘남성 출입금지구역’을 내세워온 여성 전용 낙짓집은 IMF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3개월 정도의 반짝 불황을 겪은 것 이외에는 호황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유민수 사장은 “외환위기 때도 40명에 이르는 직원들을 한 사람도 줄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극심한 경기 침체를 보이는 최근에도 매출이 10∼20% 정도밖에 감소하지 않은 걸 보면 ‘여성의 힘’은 곧 불황을 헤쳐나가는 힘인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견기업들까지 여성들을 위한 음식점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중저가 패션 의류업체인 이랜드가 ‘미시 레스토랑’을 내세우며 지난 3월, 1호점을 낸 ‘애슐리’ 역시 여성 위주의 레스토랑을 표방하고 있다. 이랜드가 운영하는 할인 패션몰인 아울렛2001 분당 미금점 안에 들어선 ‘애슐리’는 자녀들을 학교에 보낸 주부들이 낮시간대에 주로 할인점을 이용한다는 점에 착안해 고급 인테리어로 여성들만의 공간을 꾸며 이들의 발길을 붙잡는다는 전략을 세웠다. 피자 등 패스트푸드만 취급하던 이랜드가 처음으로 정통 레스토랑을 표방하며 뛰어든 사업이다. 그러나 ‘애슐리’ 1호점은 문을 연 이후 기대만큼의 매출을 올리지 못한 채 고전하고 있다. 이랜드 관계자는 “여성들에게만 특화된 서비스 아이디어가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음식점이나 술집을 찾는 여성들은 맛과 가격 이외에 뭔가 다른 것을 찾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한국창업컨설팅협회 이형석 회장은 최근 불고 있는 요식업계의 ‘여성 우대’ 열풍에 대해 “여성들이 주로 이용한다는 것은 그만큼 여성들뿐만 아니라 남성 고객들에게도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점이기 때문에 불황기일수록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여성’을 주요 마케팅 포인트로 잡고 있다”고 진단한다. 푹푹 찌는 날씨 탓에 온도계 수은주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어디 물 좋은 곳 없나’ 하고 두리번거리는 남성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당분간 ‘여성 전용’의 행렬은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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