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7

2003.08.14

새고 터지고… 참여정부 상처뿐인 초상

탈 많은 청와대 비서진 ‘梁실장 사건’으로 절정(?) … 현안 표류·경제 무기력·여당과도 엇박자 행보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3-08-06 14: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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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고 터지고… 참여정부 상처뿐인 초상

    전북 부안군 위도면이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부지로 선정된 것에 항의하는 부안군민 1만여명이 7월25일 오후 부안군 수협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왼쪽).재청주 부산상고 동창 모임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과 정화삼씨(오른쪽 맨 왼쪽).

    점입가경이다. ‘굿모닝게이트’로 홍역을 치른 청와대가 이번에는 양길승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몰카’로 인해 또 다른 혼란에 휩싸였다. 청와대는 즉각 음모론으로 맞섰지만 온갖 억측이 청와대 담장을 넘고 있다. 특히 청주 술자리에 노무현 대통령의 친구인 정화삼씨가 ‘조연’으로 등장하면서 상황은 새로운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의혹의 핵심은 ‘왜 숨겼을까’이다. 정씨의 참석 사실을 철저하게 비밀에 부친 배경에 흑막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다. 그들은 왜 숨겼을까.

    정씨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만약 그의 참석이 밝혀질 경우 그날의 술자리 성격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노대통령의 부산상고(53회) 동기인 그가 등장할 경우 술자리의 정치적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그는 노대통령과 가깝다는 게 주변사람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청남대 개방 관련 행사에서의 그의 역할은 두 사람의 관계를 짐작케 한다.

    지난 4월18일, 노대통령은 청남대를 개방하며 지역인사들을 초청했다. 이때 정씨는 지난해 민주당 경선과 대선 당시 노대통령을 지지했던 충청권 인사 200여명을 이끌고 청남대를 방문했다. 당시 참석인원 제한에 걸려 이들의 참석이 불투명했으나 정씨는 노대통령의 핵심측근에게 ‘200석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해 배려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이날 자비로 마련한 커피잔 세트를 참석자들에게 나눠주며 “노대통령은 여러분을 기억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청남대 개방에는 청남대 주변 주민들의 정서를 파악한 정씨의 건의가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국정원 간부 사진 유출·당직 전화 불통 등 잇단 기강해이

    새고 터지고… 참여정부 상처뿐인 초상

    양길승 청와대 제1부속실장.

    2000년 총선 당시 노무현 후보 캠프에서는 열성적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고령의 할머니가 화제로 떠올랐다. 소문을 들은 지역방송도 할머니의 일거수일투족을 다큐멘터리로 제작, 노후보의 당선이 확정될 경우 방영할 계획을 세웠을 정도였다. 그러나 노후보는 패배했고 이 할머니의 열성도 세인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다. 그러나 노대통령의 핵심측근들은 이 할머니가 정씨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노대통령은 자서전에서 정씨를 ‘어머니가 자식처럼 아끼던’ 인물로 묘사했지만 정씨의 어머니 역시 노대통령을 자식처럼 아꼈다고 한다. 총선 당시 정씨는 한 달 동안 회사에 휴가를 신청, 부인과 함께 선거운동에 뛰어들었다. 스포츠 제조용품 회사 전무인 그는 골프에 남다른 소질이 있다. 노대통령을 골프에 입문시킨 사람도 바로 정씨인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주변에서는 노대통령의 골프선생으로 그를 거명한다. 새정부 초기 제주에서 골프를 치던 정씨는 청와대의 연락을 받고 곧바로 비행기에 올라 주변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기도 했다.



    ‘숨은 1인치’였던 정씨의 등장은 술자리 사건을 새로운 국면으로 끌고 갈 가능성이 높다. 술자리가 노대통령 측근들의 회동으로 그 성격이 격상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사면초가의 위기상황에 빠진 청와대로서는 여론이 이렇게 흐르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참여정부의 각종 정치적 사건에는 1~2명의 노대통령 측근들이 항상 등장해왔다. 경남 거제도 구조라 별장 문제와 관련해 형인 노건평씨가 등장했고, 파문이 확대되면서 후원회장이던 이기명씨와 기업인 박연차 강금원씨 등 노대통령의 숨은 후원자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의 등장은 ‘정치자금’과 관련 온갖 억측들을 만들어냈다. 아킬레스건인 대선자금을 공개한 것도 사석에서 ‘형님’이라고 부르는 정대철 민주당 대표였다. 이번 청주 술자리 사건에서도 광주 노풍(盧風)의 주역인 양실장, 청주와 충북의 대선에 상당한 역할을 했으면서도 세인들에게 노출되지 않은 정화삼씨가 등장한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이미 이번 술자리가 단순한 경선동지회의 격려 차원 이상의 모임이었을 가능성이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다. 술자리에서 뭔가 알려지면 안 될 말이 오가 참석자들이 정씨 보호에 나섰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날 술자리에서 이씨를 양실장에게 소개한 것도 정씨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현지조사에 나섰던 이호철 민정1비서관은 노대통령에게 보고도 하지 않아 ‘남에게는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관대한’ 이중 잣대를 쥐고 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노대통령은 그를 ‘영혼이 순수한 남자’라며 극찬한 바 있다.

    그러나 중심을 잡고 조율에 나서야 할 청와대는 대안을 찾지 못하고 상황에 끌려 다니는 모습이다. 지난 6월에는 청와대 비서실 직원들이 헬기를 타고 새만금 현장을 시찰, ‘정신 없는 비서진’이란 여론의 질책을 받았고 보안자료인 국가정보원 직원들의 얼굴이 찍힌 사진을 버젓이 언론에 흘려 ‘경험 부족’을 드러내기도 했다. 청와대 전화 불통 사건, 송경희 전 대변인 파동 등 이어지는 악재로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다.

    정치 지도력 부재가 국정운영 미숙으로 어어져

    왜 이런 일이 끊임없이 되풀이될까. 정치권과 정치학자들이 가장 먼저 꼽는 것이 노대통령의 정치 지도력 부재다. 지도력 부재는 준비 부족에서 기인하며 이는 국정운영 미숙으로 이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새고 터지고… 참여정부 상처뿐인 초상
    과거 정권의 경우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그룹에는 ‘프로’들과 전문가들이 포진, 대통령의 손과 발 노릇을 했다. 그러나 인재풀이 빈약한 참여정부의 경우 경험이 전무한 386 그룹이 포진, ‘준비 안 된’ 모습을 수시로 노출하고 있다. 386 그룹은 ‘개혁조급증’을 앓고 있다는 지적을 곧잘 듣는다. 조급증의 이면에는 ‘우리만이 개혁을 해낼 수 있다’는 환상과 선민사상이 숨어 있다. 이는 역으로 변화와 개혁의 동력을 빨리 소진시키는 역효과를 불러온다. 주류 교체니, 세대 혁명이니 하는 것은 이분법적 사고에 기인한 편가르기의 한 방편이다. 자연 국론은 분열되고 집권 초기, 만들지 않아도 될 적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과거 정권의 경우 집권여당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동력을 제공하는 엔진역을 수행했다. 그러나 참여정부와 민주당의 관계는 이런 상호보완의 성격을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청와대 공격의 선봉에는 항상 민주당이 서 있다.

    차기 총선의 주도권을 놓고 벌어지는 민주당 신주류와 구주류 간의 신당 공방은 아직도 안개 속을 헤매고 있다. 궁지에 몰린 대표는 청와대를 원망하고, 사무총장은 그런 대표를 구하기 위해 검찰총장의 국회 출석을 요구하고 있다. 또 원내총무는 자신의 지역구에 핵폐기물 처리장을 유치키로 한 부안군수를 대통령이 격려했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당(黨)-청(靑) 관계에 대해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청와대 갈등도 도를 넘어서고 있다. 전직 남해 군수에서 일약 행정자치부(이하 행자부) 장관으로 영전한 김두관 장관은 4월 말, 집들이를 겸한 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 “정권 핵심부로부터 견제를 받고 있다”는 충격적인 얘기를 털어놓았다. 김장관 주변에서는 그 이전부터 “청와대와 민주당, 총리실로부터 끊임없이 견제를 받고 있다”는 입장을 은연중 시사하며 사면초가라는 표현을 썼다. 김장관 주변에서는 김장관이 지칭한 정권 핵심 가운데에는 유인태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도 포함된다고 말한다. 행자부 산하 소청심사위원장 자리 등을 놓고 몇 차례 서로 대립했기 때문. 당시 김장관은 박명재(현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위원) 기획관리실장을 소청심사위원장으로 임명하려 했으나 유수석이 서울대 사회학과 동기인 조기안 민주당 수석전문위원을 밀면서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들의 힘겨루기는 노대통령이 “두 사람 모두 인선에서 배제하겠다”고 밝혀 무승부로 끝났지만 양 진영에는 여전히 앙금이 남아 있다는 후문이다.

    새고 터지고… 참여정부 상처뿐인 초상

    7월31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

    7월29일, 과학기술부(이하 과기부) 문유현 과학기술정책실장이 사표를 제출했다. 참여정부 출범 후 줄곧 과기부와 청와대의 정책 조율을 담당해온 잘나가던 관료의 돌연한 사표는 곧바로 정(政)-청(靑)의 갈등설을 몰고 왔다. 과학기술자문회의 개편을 놓고 청와대와 과기부가 심심찮게 갈등상을 노출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 중심 사회 구현을 제1 국정과제로 삼은 청와대는 대통령 직속 과학기술자문회의를 통해 자문회의를 직접 챙기겠다며 나섰고 이 과정에 과기부 직장노조협의회 간부들이 청와대 정보과학 보좌관실을 직접 방문,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관과의 갈등설도 흘러 나온다.

    검찰도 청와대와 정치권에 대해 불만이 많다. 민주당 이상수 사무총장이 “9월 정기국회부터 검찰총장의 국회 출석을 추진하겠다”고 말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다.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문제와 관련, 민주당은 김두관 행자부 장관과 윤진식 산업자원부 장관의 사퇴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한나라당은 그 배경에 포퓰리즘이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자신을 지지했던 소수를 배려하다가 침묵하는 다수의 반발을 부르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건설 과정에서도 참여정부의 포퓰리즘적 접근방식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부안 군민의 반발 수위가 갑자기 높아지고 위도 주민들이 불만을 표출하게 된 데는 정부와 부안군, 한국수력원자력㈜이 민주적인 절차를 무시한 데다 현금보상 문제에 일관성 없는 행태를 보인 것이 한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노사분규 102차례 … 정부정책과 관련한 파업 늘어

    노대통령은 ‘소득 2만 달러 시대’와 ‘동북아 경제중심’을 강조한다. 그러나 경제현실을 보면 이는 한낱 구호에 그칠 것이란 불안함을 떨쳐버릴 수 없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3%대를 유지하기도 힘들 것으로 경제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치솟는 실업률은 1997년 IMF 외환위기 때와 곧잘 비교된다.

    참여정부 들어서 일어난 노사분규는 모두 102차례(6월29일 현재). 파업의 강도와 파업에 동참한 노동자의 규모도 문제지만 심각한 것은 정부정책과 관련한 파업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정이 이렇게 된 배경에는 ‘노조는 약자, 사용자는 강자’라는 노대통령의 노동관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게 일선 기업인들의 주장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런 한국의 노동 현실에 대해 ‘노동자 국가(Labor State)’로 전락할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노동자 국가’란 1980년대 초반 세계 6대 강국으로 1인당 GDP가 1만 달러를 넘었던 아르헨티나가 극단적 노동조합과 인기영합주의에 의해 디폴트의 국가로 떨어진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노대통령은 요즘 담배를 많이 피운다고 한다. 한때 담배를 끊었던 노대통령의 관저에는 아예 담배가 따로 준비돼 있다. 그만큼 고민이 많다는 증거다. 그런데도 노대통령은 지금도 자신감을 내비친다고 한다. 한 비서관은 “위기 때 기회를 찾는 것이 노대통령의 특장”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키려면 자기성찰이 전제되어야 한다.

    새정부는 출범 초 △동북아 중심국가 건설 △지방분권 및 국가 균형발전 등을 국정지표로 내놓았다. 그러나 참여정부 6개월이 지난 지금 이 아젠다를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노대통령은 8월2일, “(언론의) 특권에 의한 횡포는 용납할 수 없다”며 언론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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