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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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열정이 ‘고통 부메랑’으로

선친 유업 퍼주기 밀실협상 취급 분통 … ‘150억원+α’ 공론화에 “탈출구 없다” 심경 피력도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3-08-06 13: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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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북 열정이 ‘고통 부메랑’으로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사옥 12층에 있는 고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 집무실.

    특검이 끝난 6월25일, 현대아산과 현대상선의 임직원들 가운데 정몽헌(MH)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과 가까운 인사들은 회사 경영진들로부터 묘한 ‘오더’를 받았다. 유선을 통해 전달된 이 지령의 핵심내용은 “150억원+α 수사는 검찰이 아닌 특검을 통해 받을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라”는 것이었다. “더 이상 특검은 안 된다”는 청와대와 집권여당의 정치논리가 곧 정회장과 현대를 살리는 길이라는 판단이 대세였던 당시 이 오더를 받아든 임원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회장측은 왜 반대의 길을 가려 했을까. 정회장이 제시한 역설적 제안이 안고 있는 비밀은 얼마 가지 않아 풀렸다. 현대 사정에 밝은 한 기업인의 설명이다.

    “정회장은 당시 언론의 특검 보도를 놓고 꽤나 고민을 했다. 특히 대북정책 전반이 퍼주기나 밀실협상의 산물로 왜곡당하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정회장은 당시 기업 내 정보팀이 올린 보고서를 통해 수사기한이 분명한 특검 수사가 새정부 출범 이후 ‘독’이 오른 검찰 수사보다 훨씬 신사적이며 향후 대북사업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받고 이런 선택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후 관련 임원들이 정치권 인사들을 찾아 나서면서 “현대가 특검을 자청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나 이들의 로비는 청와대와 여권의 정치논리에 밀려 실패했고 ‘150억원+α ’에 대한 수사는 대검으로 넘어갔다.

    정회장이 자신의 12층 집무실에서 뛰어내린 8월4일, 정치권과 현대 주변에서는 그의 ‘투신’을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정치권과 검찰, 그리고 현대호 내부의 진단이 조금씩 다르지만 검찰 수사에 대한 부담감에 대해서는 모두 인정한다. 정회장은 7월26일과 31일, 8월2일 등 세 차례에 걸쳐 출퇴근 형식으로 검찰의 소환에 응해 조사를 받았다. 이 가운데 2일 수사 수위가 매우 높았다는 후문이다.



    내성적인 성격 … ‘왕자의 난’ 때는 3부자 퇴진 칼 뽑아

    정회장을 잘 아는 사람들은 정회장이 매우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라고 평한다. 재벌 총수답지 않게 일처리도 꼼꼼하고 평소 조용한 스타일이라는 것. 이 때문에 CEO(최고 경영자)로서의 자질과 능력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었지만 선친(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에게서 배운 스파르타식 ‘제왕학’으로 위기를 곧잘 넘겼다고 한다.

    그가 2000년 4월, 왕자의 난을 일으킨 것은 필요할 때는 칼을 뽑는다는 결단력과 추진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그는 당시 선친과 현대가(家)의 사실상 장자인 정몽구(MK) 현대자동차 회장과 함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는 ‘현대 3부자 동반 퇴진’이라는 극약처방을 발표했다.

    대북 열정이 ‘고통 부메랑’으로

    7월21일 심문을 받기 위해 검찰에 출두하고 있는 고 정몽헌 회장.

    언론은 형제들의 추악한 재산 및 자리 싸움이라고 평가했지만 정회장측으로서는 대북정책을 이어갈 수 있는 물적, 인적 토대를 갖추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설명한다. 정회장은 대북사업에 남다른 애착을 보였다. 특히 정회장은 사석에서 대북사업이 부친의 유업이자 마지막 사업이란 판단에 따라 총력을 기울였다고 말하곤 했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49일재에 참석한 정회장의 한 측근은 “굵은 눈물을 흘리며 돌아가신 어른을 생각하는 모습이 가슴 뭉클하게 했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와 중공업 등을 제외한 현대그룹의 굵직굵직한 계열사들을 물려받아 그룹의 대통을 이었지만 그는 총수 자리에 오른 이후 심각한 경영난을 겪게 된다.

    DJ 정권 후반기로 가면서 대북사업도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특히 DJ 정권 말기 정치권에 대선 분위기가 감돌면서 대북사업은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했고 이때마다 정치적, 법적 공방에 휘말렸다.

    수사망 압축에 곤혹 “이러다 …” 여러 차례 우려

    그 과정에서도 정회장은 개성공단 착공식을 하는가 하면 육로관광길을 개척하는 등 가시적 성과를 일궈냈다. 재계에서는 흔히 삼성은 시스템이, 현대는 가신(家臣)이 이끈다고 말한다. CEO 정회장의 곁에는 측근 3인방이 포진하고 있었다.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 김윤규 현대건설 사장, 김재수 구조조정위원장 등이 이른바 ‘MH 3인방’이다. 이 가운데 김사장과는 별도의 유서를 남길 정도로 각별했다. 정회장과 김사장은 대북사업을 위해 지금까지 북한을 40여 차례, 중국을 20여 차례 함께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회장의 주변사람들에 따르면 두 사람은 호텔방에서 옷을 벗고 술을 마시면서 정을 나누었다고 한다. 정회장은 유서를 통해 “대북사업을 끝까지 추진해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대북 열정이 ‘고통 부메랑’으로

    2003년 2월 초, 개성공단 육로답사에 나선 고 정몽헌 회장.

    정회장은 DJ 정권 시절 홍업씨를 자주 찾았다. 홍업씨 수사를 맡은 한 검찰 관계자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정주영 명예회장과 정몽헌 회장,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 등은 앞으로 우리 그룹을 잘 봐달라’는 의미로 거액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정회장 주변에서는 “원만한 대북사업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이를 설명했다. 정회장은 대북송금 의혹사건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린 7월4일, 법정에서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 때문에 심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몇 차례 인사를 하려 했으나 박 전 실장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계속 그를 외면했다. “특검에서 한 정회장의 발언 때문에 상황이 박 전 실장에게 불리하게 돌아갔고 이 때문에 박 전 실장이 정회장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다”는 게 현대측의 분석이다. 정회장은 지난주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이 검찰 수사를 받은 이후 “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며 고통스런 심경을 자주 토로했다고 한다. 정회장 주변 사정을 잘 아는 재계 한 인사는 “‘150억원+α ’ 등에 대한 검찰의 수사망이 압축해오고 수사로 인해 주변사람들이 피해를 보자 심리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특히 최근 북한핵문제를 비롯해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에 미묘한 변화 움직임이 감지되자 “이러다 (대북사업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여러 차례 입에 올렸고 ‘150억원+α’ 문제가 공론화한 7월 초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더 이상 탈출구가 없다”며 자포자기한 심정을 내비치기도 했다고 한다. 결국 12층 집무실에서 밤을 지샌 정회장의 마지막을 지킨 것은 재벌 총수로서 개인의 능력을 벗어나는 부분까지 판단을 요구받는 데서 오는 과중한 중압감과 스트레스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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