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5

..

‘환경사랑’ 애틋한 고백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3-07-24 14:3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환경사랑’  애틋한 고백

    ‘하늘마음 자연마음’, 새만금 해창 갯벌 설치, 2001.‘펭귄이 녹고 있다’, 시청 앞 광장 설치, 2003 . 펭귄을 조각하고 있는 최병수씨.(왼쪽부터 시계방향)

    ” 새만금 공사가 중단됐답니다. 그건 당연한 결정이죠.”

    1987년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걸개그림을 그려 한국 민중미술의 힘을 보여주었던 ‘현장예술가’ 최병수씨(44)는 자신의 전시에 대해서가 아니라 ‘법원의 새만금 공사 중지 판결’ 속보를 전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의 마음은 세 번째 개인전이 열리는 서울 전시장을 떠나 이미 새만금 해창 갯벌로 달려간 듯했다. 그는 2000년부터 아예 갯벌 앞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자신이 깎아 세운 솟대들과 함께 바다를 지켜왔다.

    “작년만 해도 작업실 앞에서 바로 맛을 잡아 술안주를 했는데, 이젠 갯벌이 썩어서 조개가 없어요.”

    그는 스스로 “난 예술가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림으로 예술을 하려는 게 아니라, 운동을 할 작정이기 때문”이다. 그는 브라질 리우 환경회의에서 ‘쓰레기들’(1992)을 전시했고, 교토 세계환경회의(1997)와 헤이그 기후변화협약(2000) 총회장 밖에 얼음으로 깎은 펭귄 조각을 설치해 전세계 환경운동가들을 감동시켰다. 당시 현지 언론들은 기사에 ‘펭귄이 녹으면서 저항한다’는 제목을 달아 대서특필했다.

    지난 3월 최병수씨는 이라크 바그다드로 달려가 알 타흐지르 광장의 야자나무에 대형 걸개그림 ‘너의 몸이 꽃이 되어’를 걸고 반전시위에 참여해 다시 주목을 받았다. 미술에 대한 이처럼 선명한 신념은 어쩔 수 없이 엘리트가 중심이 된 90년대 민중미술계 내부의 이론적 논란과 본능적 머뭇거림을 훌쩍 뛰어넘는 매우 예외적인 것이다.



    그를 알게 하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최고 학부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독일에서 유학한 뒤 사회참여적인 작업을 하는 한 작가가 소주잔을 기울이며 최씨에게 “나도 형처럼 미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씨는 웃으며 대답했다.

    “일단 넌 죽어야 한다. 그리고 가난한 집안 여섯째로 태어나 14살에 가출해라. 중국집, 공장, 전기상, 음식점을 전전하고 목수일까지 하다 보면 나처럼 미술을 할 수 있게 된다.”

    1986년 목수였던 최씨는 우연히 대학생들이 벽화 그리는 곳에 가서 사다리를 짜주다 경찰에 연행됐고 형사가 직업란에 ‘화가’라고 쓰는 바람에 이한열의 죽음과 관련한 걸개그림을 그리게 됐다. 그러나 최병수씨는 민중미술의 주요 작가가 된 바로 그 순간, 환경문제로 눈을 돌렸다.

    ‘환경사랑’  애틋한 고백

    ‘통일솟대’, 시청 앞 광장/전시장 설치, 2003

    다음 타깃은 ‘핵 폐기장’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건 대부분 임금인상 때문이었어요. 자기 폐가 썩고, 몸이 녹아 내리는데 회사의 이익을 위해 오염물질을 계속 버리는 모습을 보며 전체적인 시야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그때만 해도 ‘환경운동에 나서더니 최병수가 맛이 갔다’는 말이 나오더군요.”

    그러나 당시 그를 비판했던 작가들은 모두 현장을 떠났다.

    그는 언제나 사회문제에 대해 발언해왔지만, 미술이 자신만의 미학적 언어를 갖고 있다는 점도 분명히 인식해왔다. 그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기 위해 ‘가장 적확한 형식과 재료를 찾아온’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열리는 ‘최병수 현장전’은 이러저러한 그림 전시가 아니라 최씨가 전 세계에 지구를 살리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미학적 도큐멘트다.

    “다음엔 핵 폐기장 유치 문제를 다룰 것 같아요. 바로 작업실 옆이니까요. 좀 쉬면 좋을 텐데, 원래 피해 가지는 못하는 성격이라서요.”

    서울에서의 그의 전시는 7월31일까지 문화일보 갤러리(02-3701-5340)에서 열린다.



    전시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