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5

2003.07.31

작품 보험료 높아야 관객 몰린다?

나폴레옹 vs 진시황 서울 특별전 진품 대결 … 초대형 이벤트 득세 순수 예술전 찬밥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3-07-24 11: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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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보험료 높아야 관객 몰린다?

    신세방학 기간에는 각종 대형 이벤트전이 열려 어린이와 청소년들로 붐비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

    ‘작품의 보험 산정료만 300억원에 이르는 전시’.

    ‘보험가 1000억원짜리 유물전’.

    ‘보험가 1200억원대 초대형 전시’.

    최근 여름방학을 맞아 잇따라 열리고 있는 ‘나폴레옹과 조세핀’ ‘공룡 발굴 대탐험전’ ‘진시황 미공개유물 특별전’ 등 이른바 문화 이벤트 전시들이 질세라 홍보하고 있는 ‘상상 초월’의 보험가액이다. 보험 추정가란 전시물을 운반하거나 전시하는 동안 훼손되었을 경우 보험회사에서 보상해줄 수 있는 최대 액수. 전시 주최측에서 보험 산정료를 경쟁적으로 발표하는 바람에 나폴레옹과 진시황이라는 동서양의 전쟁 영웅이 서울 특별전을 걸고 보험회사를 통해 한판 대결을 벌이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주최측이 내세운 300억원에서 1200억원에 이르는 작품의 보험추정가는 두 가지 차원에서 큰 의미가 없는 액수다.



    첫번째는 보험 산정료가 실제 보험약정액과 다르기 때문이다. 대개 전시 주최측에서 보험 추정가의 0.3%를 보험료로 내므로 보험료만

    3억원을 내고 입장료로 평균 7000원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4만명 이상의 관람객을 더 동원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문화 전시에서 4만명은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그래서 보험 산정료보다 훨씬 낮게 보험가를 조정해 계약하는 것이 관행처럼 돼 있다.

    산정료 경쟁적으로 밝히며 홍보戰

    작품 보험료 높아야 관객 몰린다?
    또 다른 하나는 현재 열리고 있는 ‘나폴레옹과 조세핀’전 등의 전시에 전시되는 유물들은 각국의 국보를 포함한 문화재로서 보험회사의 산술적 가치계산으로 평가해 이를 비교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올여름에 열리는 특별전들이 약속이나 한 듯 보험 산정료를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전의 대형 이벤트전이 열릴 때 종종 불거졌던 진품 시비를 사전에 방지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보험가가 높다는 것은 전시물이 진품임을 객관적으로 검증받았다는 것이죠. 보험회사, 특히 외국의 재보험사들은 진품인지 위작품인지 미술전문가들 뺨치게 잘 알거든요.”

    ‘진시황 전시기획단’ 차재홍 단장(㈜솔대 대표이사)의 말이다.

    ‘나폴레옹과 조세핀’전과 ‘진시황’전 의 경우 부득이하게 본국에서 진품을 가져오지 못한 한두 전시물에 대해 ‘진품이 아니라 정교한 복제품’임을 전시장과 도록 등에 밝혀놓아 역으로 나머지 전시물이 진품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보물급 진품 문화재를 외국에서 빌려오는 경우 전시기획은 국가간 외교전을 방불케 할 만큼 까다롭고 교섭 기간도 최소 1년 이상 걸린다. ‘나폴레옹과 조세핀’전과 ‘진시황’전은 각각 작품 소장처인 프랑스 국립 말메종 박물관과 중국 산시성 문물국에 작품 임대료를 지불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시 컨셉트에서 전시장 선정, 전시 제목, 유물 운송과 설치방식, 전시장의 조명과 습도, 온도까지 일일이 상의하고 양측의 이해에 맞춰 절충하는 과정을 거쳤다.

    특히 1998년에서 2001년 사이 새롭게 발굴한 진시황릉 유물 7점(전체 전시물 162점)을 세계 최초로 공개한 ‘진시황’전은 한국 쪽 전시기획단에서 ‘미공개 특별유물전’이란 제목을 관철하느라 중국 산시성 문물국과 오랫동안 갈등을 겪었다. 산시성 문물국이 중국에서 공개하지 않은 문화재를 외국에 반출한다는 사실이 공공연히 알려지는 데 대해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작품 보험료 높아야 관객 몰린다?

    올해 대형 이벤트전 기획사측은 천문학적 보험 산정료를 밝히며 전시물이 ‘진품’임을 강조했다.

    전시물은 대개 점보기를 이용해 옮겨지며 육로로 이동할 때는 작품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무진동 트럭을 이용한다. 설치 전에는 빌려주는 쪽과 빌리는 쪽 양측 입회 하에 작품 상태를 사진으로 촬영하고 전시중 손상되지 않았는지 수시로 체크해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보험회사에 통보한다. ‘나폴레옹과 조세핀’전의 경우 혹시 있을지 모를 비행기 사고에 대비해 유물을 여러 편의 비행기에 분산해 실어 보낼 정도였다고 한다.

    “작품을 빌려주는 말메종 박물관 관장은 비행기에서 내려 숙소로 가지 않고 유물 운송 트럭을 따라 전시장인 서울역사박물관까지 오더군요. 우리를 믿지 못하나 싶기도 했지만, 관장의 태도가 우리를 더 긴장하게 한 것도 사실이죠.”(㈜연하나로 기획 ‘나폴레옹과 조세핀’ 전시팀장 신동호)

    이 같은 전시물 소장처의 간여는 때로 관람자를 보호하는 장치가 된다. 전시를 여는 쪽으로서는 어떻게든 많은 관람객들을 불러모아야 하므로 내용을 과장하거나 선정적으로 홍보하려는 욕심이 생기기 때문이다. 몇 년 전 한 거장의 전시를 유치한 한 기획사는 작가의 특정 시기의 작품만 들여오면서 ‘걸작전’이란 제목을 붙이려다 작품을 빌려주는 박물관측에 의해 제동이 걸리기도 했다.

    “이벤트전은 금융 투자사 유망 아이템”

    작품 보험료 높아야 관객 몰린다?
    우리나라에서 이 같은 초대형 문화이벤트전의 시발점이 된 것은 관람객 98만명이라는 경이적 기록을 세운 1994년의 ‘진시황’전이다. 이미 일본에선 90년대 초 대형 문화기획전 붐이 일어 국내 기획사들이 이를 한국까지 끌어오기 위해 눈독을 들이던 차였다. 특히 2002년 4월에 시작해 11개월간의 서울 전시를 마치고 다시 부산으로 옮겨 전시를 열고 있는 ‘인체의 신비’전(서울관객 168만명 이상)은 이벤트 전을 질적으로나 규모면에서 크게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다. ‘인체의 신비’전이 ‘이벤트전=황금알을 낳는 거위’일 수 있음을 보여주자 금융투자사들이 앞 다퉈 기획에 뛰어들었고, 전시 규모도 경쟁적으로 커지게 되었다.

    “영화 제작비가 워낙 늘어나 리스크가 커지고 투자 회수 기간도 길어서 투자 매력이 많이 떨어졌어요. 이에 비하면 전시는 6억~10억원 정도 투자해 보통 20%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어 요즘 금융투자사들이 많이 관심을 기울이는 아이템입니다.”

    ‘나폴레옹과 조세핀’전에 투자한 ㈜브릿지웰 인베스트먼트 유진조 부장의 말이다. 유부장은 이 전시가 방학을 맞은 학생들에게 어필하는 데다 홍콩에서 이미 성공을 거두어 투자를 결정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시 규모가 커지면 이윤 추구의 필요성도 강해져 일부 대형 이벤트전의 경우 비싼 입장료를 받으면서 비전문가들이 마구잡이로 도록이나 조악한 기념품 등을 팔아 폭리를 취함으로써 이벤트전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키워놓기도 했다. 또한 대부분 외국에서 이미 기획되어 수입되는 대형 이벤트 전시들이 여름과 겨울 방학 시즌 문화가를 싹쓸이하는 바람에 순수미술 전시기획자들은 아예 ‘전의’를 상실해버렸다.

    작품 보험료 높아야 관객 몰린다?
    “10년 동안 큰 문화전시를 열어보니 제일 중요한 것이 관람객들의 입소문이더군요. 그래서 이젠 전시를 유치하는 기획사들도 질을 높이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습니다. 관람객들을 직접 만나는 운영요원들도 전문가 수준으로 교육시키고 있고요.”(차재홍 단장)

    전시와 미술 관계자들은 ‘나폴레옹’전과 ‘진시황’전이 영리 추구를 최고의 목적으로 하는 이벤트전이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순수 문화전시에 가깝다는 점에서 이후 대형 전시의 흐름을 결정하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두 전시가 호평 속에 흥행에 성공을 거둘 경우 문화적 유물이나 미술품 전시가 이어지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야말로 센세이셔널한 일회성 ‘이벤트’만 수입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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