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5

2003.07.31

“기러기 아빠 생활 절대 궁상맞지 않아요”

가족 해외로 보낸 3인의 가장 “취미생활로 외로움 잊고 자녀 생각으로 희망 키워”

  • 정리/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03-07-24 10: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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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러기 아빠 생활 절대 궁상맞지 않아요”

    ‘기러기 아빠’ 김상우, 원유진, 박상빈씨(왼쪽부터)가 함께 명동 거리를 걸으며 서로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기러기 앞에는 ‘짝 잃은’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사람들은 오순도순 다정한 모습으로 함께하는 부부가 아니라 서로 헤어져 있는 이들을 가리킬 때 ‘기러기’라고 한다. 원래 부부간의 사랑이 돈독하고 부정(父情)이 유난히 강한 짐승으로 알려져 있는 기러기는 어느새 ‘초라하고 안타까운 어떤 것’을 상징하는 이름이 됐다. 어두운 거실과 퀴퀴한 냄새, 외도와 자살 같은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기러기 아빠’라는 이름. 하지만 진짜 ‘기러기 아빠’들은 이 같은 고정관념에 불만이 많다.

    7월16일 오후 7시 한국의 보통 기러기 아빠 3명이 진짜 기러기의 삶을 이야기하겠다며 서울 명동의 한 고깃집에 모였다. 직장인 김상우씨(41)와 조각가 원유진씨(51),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박상빈씨(42)가 서로 첫인사를 건넨 후부터 ‘이제 우리 자주 만나자’며 아쉬운 악수를 나누기까지 3시간에 걸쳐 함께 떤 ‘수다’ 한판을 생중계한다.

    “혼자 사는 티 안 내려고 더 깔끔”

    김상우(이하 김)=얼마 전에 기러기 아빠 한 명이 자살했잖아요. 그 일이 알려진 후부터 사람들이 자꾸 물어봐요. ‘안 힘드냐?’ ‘많이 외롭지…?’ 따뜻한 관심이라는 건 알지만, 사실 부담스럽고 불편하죠. 오늘 이 자리도 그 때문에 마련된 거잖아요.

    박상빈(이하 박)=기러기 아빠가 자살한 사건도 있었고, 또 이제 여름방학이니까 기러기 아빠가 많이 생길 때이기도 하고. 겸사겸사 모이게 된 것 같아요. 기러기 아빠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좀 삐딱한 건 사실이죠. 그 사람들한테나, 새로 기러기 아빠가 되려는 사람들한테 우리 이야기를 제대로 해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유진(이하 원)=그럼요. 기러기 아빠로 사는 게 힘들기는 하지만 보람되고 자랑스러운 점도 있죠. 그런 걸 그냥 솔직하게 이야기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사는지, 뭐가 힘든지. 사실 저는 식구를 인도로 보낸 후 원룸에서 혼자 살거든요. 침대랑 컴퓨터 책상, 현관문까지 가는 ‘오솔길’ 하나 빼놓고는 짐이 가득 쌓여 있어요. 책 상자가 거의 천장 높이까지 올라가 있어서 다른 쪽은 갈 엄두도 못 내죠. 그런데 그게 오히려 좋은 것이(웃음) 집이 좁아지니까 일이 줄거든요. 저는 집에서 싱크대도 안 써요. 냉장고는 아예 없고요. 자고 일어나서 빨래하고 청소하고 그냥 집 밖으로 튀는 거죠.

    김=우리 집도 그래요. 저는 식구들 가고 25평짜리 아파트로 옮겼는데 안방만 쓰고, 나머지 공간은 짐으로 채워놓았어요. 그래도 냉장고는 있는데…. 냉장고엔 라면과 같이 먹을 밑반찬이랑 맥주가 가득 차 있어요. 그거라도 있어야 뿌듯하죠.

    원=그런 게 생기면 집에 일이 많아지잖아요. 혼자 사는 사람은 어떤 것에도 떠밀리면 안 된다는 게 제 지론이거든요. 설거지나 요리에 떠밀리기 시작하면 끝장이에요. 저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서 늦어도 7시 전에는 꼭 집을 나서요. 전날 술을 마셔서 피곤해도 목욕탕이나 작업실에 가서 더 잘지언정 절대 늦잠 안 자고요. 그런데 냉장고가 있으면 집에서 냄새도 나고 집이 좀 지저분해지지 않나요?

    김=냉장고 그릇은 ○○○(특정 상표가 있는 식기 이름)이 제일 좋아요. 김치 냄새가 절대 안 빠져 나온다니까요.(웃음) 사실 저도 평일 저녁은 주로 사 먹고, 주말에는 다른 집에 가서 함께 식사하면서 가정적인 분위기를 느끼고 오죠.

    박=저는 저녁을 거의 직접 해 먹는데…. 좀 다르네요. 하긴 저는 원래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 가족들이랑 함께 있을 때도 제가 자주 요리를 해주곤 했어요. 요새는 식구들한테 못 차려주니까 주말에 다른 기러기 아빠들을 초대해서 같이 밥 먹으면서 애들 이야기, 힘든 이야기하며 수다 떨고 그래요.

    김=애들 이야기 하면 힘들기보다는 신이 나지 않아요? 저는 요새 다른 사람들 만나면 자꾸 애들 이야기를 하고 싶어져서 그걸 참느라 애를 써요. 저희 아이들이 뉴질랜드에서 참 잘 지내거든요. 처음 한두 달은 적응을 못해서 학교 갈 때마다 배 아프다고 하며 울었다는데 요새는 ‘아빠가 한국 들어오라고 한다’고 하면 겁낸대요. 말도 잘 듣고요. 그만큼 학교생활이 즐겁다는 거죠.

    원=그럼요, 우리가 한국에서 이렇게 열심히 사는 이유가 다 아이들 때문인걸요. 저도 우리 태백이가 인도에서 맨발로 학교 다니고 세계 각국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유롭게 지내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힘이 솟아요. 태백이가 있는 오로빌 공동체는 요가와 명상, 수련을 기본 과목으로 하는 곳이거든요. 그 안에서 아이가 영적으로도 성숙한 진짜 좋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져요. 저도 여기서 부끄럽지 않은 존재가 되려고 노력하게 되고요.

    박=그렇죠. 솔직히 가족이랑 떨어져 있으면서 예전보다 더 성실하고 건전해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요?

    김=맞아요. 저는 애들이랑 집사람이랑 함께 살 때는 집 앞 슈퍼 갈 때 반바지에 민소매 티셔츠 입고 슬리퍼 끌고 갔거든요. 그런데 혼자 남은 후부터는 그런 적이 없어요. 오히려 머리 빗고, 긴 바지 입고, 면도까지 하고 나서죠. 가끔은 향수까지 뿌리고.(웃음) 예전에 한번 수염 더부룩하게 기르고 머리가 엉망진창인 채로 라면 사러 나간 적이 있는데 바로 동네에 소문이 나는 거예요. ‘몇 호 아저씨 기러기 아빠라더니 사는 게 힘든가 보다’ 하면서. 그 다음부터는 절대로 대충하고 다니지 않죠.

    박=그 소문들 때문에 얼마나 깔끔을 떨게 되는지. 그런데 그런 것말고 다른 것도 문제가 되잖아요. 솔직히 여자 생각나면 어떻게 해요? 집사람이 떠나면서 그랬거든요. 다른 건 다 해도 좋은데 살림만 차리지 말라고. 같이 살 때는 솔직히 혼자가 되면 얼마나 자유로울까 싶어 좋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혼자가 되니까 그 말이 계속 생각나는 거예요. 그때 나도 그랬거든. 당신도 살림만 차리지 말라고. 그게 족쇄가 되더라고요. 정말 딴 일 하는 게 너무 쉬우니까, 또 그 사람도 그런 유혹을 이기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같이 살 때보다 오히려 더 딴 짓을 못하겠어요.

    “기러기 아빠 생활 절대 궁상맞지 않아요”
    김=아, 그런 거요? 저도 그렇죠. 밤중에 벌떡 일어나서 낚시 가거나 그런 자유는 좀 누리는 편인데 여자 문제는…. 더 어려워졌죠. 제가 사실 좀 동안이잖아요. 아직 노총각으로 보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느낌이 들면 먼저 딱 선을 그어요. 나 기러기 아빠라고 밝히는 거죠. 한 번 무너지면 끝장이라는 위기감 때문에 더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지갑 속에도 열면 (펼쳐 보여주며) 이렇게 바로 애들이랑 집사람 사진 보이게 넣어 다니고.

    원=사실 사람 사이의 불꽃 튀는 애정이라는 게 2년 이상 안 가잖아요. 저는 부부가 사랑으로 10년을 같이 살았으면 오래 산 거라고 생각해요. 그 다음에는 믿음과 정으로 사는 거죠. 정말 서로를 믿고,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부부가 아니면 떨어져서 살 생각 못할 거예요.

    박=제 주변에서도 그런 경우가 있었어요. 아이들이 너무 나가고 싶어해서 갈 나라도 알아보고 짐도 싸고 준비를 다 했거든요. 그런데 바로 나가기 직전에 바람 피우다 딱 걸려버린 거야. 부인이 어떻게 나가겠어요. 그냥 눌러앉았죠. 아이들만 불쌍해지고.(웃음)

    “여자 문제엔 더 철저해졌어요”

    김=오히려 힘든 건 아이들하고의 관계죠. 내가 네 아빠이고, 언제나 네 곁에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줘야 하니까. 저는 점심을 매일 12시20분에 먹어요. 12시10분에 뉴질랜드로 전화하거든요. 그때가 뉴질랜드 시간으로 오후 3시10분인데 아이들이 학교 마치고 집에 도착할 시간이에요. 전화하면 제일 먼저 큰딸이 받아서는 이랬다, 저랬다 하며 재잘대다가 제 동생을 바꿔주죠. 마지막으로 집사람하고 통화하고 나면 한 10분쯤 걸려요. 매일 볼 수는 없지만 이야기는 꼭 하는 거, 그게 아빠의 역할 아닐까요?

    원=저도 아이가 인도에 가기 전에 함께 히말라야 종단을 했어요. 아이를 목마 태워 산에 오르며 ‘아빠는 네가 아빠보다 더 먼저, 더 높이, 더 먼 곳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죠. 그러고는 자신이 있는 곳의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 현재를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카메라, 망원경과 현미경에 대해 각각 설명해줬어요. 아이가 아빠의 사랑을 느끼고 소중히 생각할 거라고 믿어요.

    박=저는 다른 기러기 아빠들과 같이 요즘 합창 연습을 해요. 크리스마스 때 같이 휴가를 내서 뉴질랜드에 갈 거거든요. 아이들이랑 엄마들 모아놓고 공연을 할 생각이에요. 여러분이 열심히 사는 동안 우리는 항상 당신들 생각하며 이 공연 준비했다고 말할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기분이 굉장히 좋아져요.

    원=사실 기러기 아빠들이 돈이나 보내주고 자신은 궁상맞게 사는 줄 아는 사람이 있는데 절대 아니죠. 저는 혼자 되면서부터 로터리클럽에도 가입하고 일요일에는 교회에서 하루 종일 봉사를 하거든요. 사실 퇴근 후에 운동하고, 주말에 패러글라이딩 같은 레포츠 즐기는 폼나는 남자들 중에 기러기 아빠가 굉장히 많아요.

    김=그럼요. 그런 마인드 컨트롤이나 자기관리가 없으면 기러기 아빠 생활 못 견디죠. 저는 아이들 보낸 후에 미국 PGA 프로 자격증을 땄어요. 다른 생각 날 때마다 열심히 운동을 한 덕분이죠.

    박=그러니까 기러기 아빠는 짝 잃은 외기러기가 아니라, 더 높이 더 멀리 날기 위해 끊임없이 날갯짓하는 ‘프런티어’라는 거죠? 우리 앞으로도 서로 자주 만나면서 진짜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돼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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