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5

2003.07.31

‘음모론 카드’로 정면돌파?

청와대는 등 돌리고 검찰 칼 세워 위기감 고조 … “혼자 십자가 질 수 없다” 마지막 승부수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3-07-23 17: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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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모론 카드’로 정면돌파?

    민주당 정대철 대표(왼쪽)가 이상수 사무총장과 귓속말을 나누고 있다.

    ”시련은 얼마든지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나 시련을 이겨낼 지혜와 용기도 함께 주십시오.”

    7월14일에 이어 19일, 국립묘지에 안장된 선친을 찾은 민주당 정대철 대표의 기도 내용은 지난번과 같았다. 기도를 끝낸 정대표는 조윤형 전 국회부의장 묘소도 들렀다. 국립묘지로 향하는 차 안에서 토막잠을 즐겼지만, 과거의 끈을 붙들고 좌고우면하는 그의 모습에는 벼랑 끝에 몰린 절박감이 그대로 묻어났다. 이런 동선(動線)은 다음날에도 이어졌다. 일요일인 20일, 정대표는 지역구인 서울 중구의 한 교회에서 1시간 동안 기도했다.

    19일, 검찰이 발표한 사전 구속영장 내용은 정대표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측근인 민영삼 민주당 부대변인에 따르면 정대표는 하루 종일 ‘멍한’ 상태였다. 사전 구속영장에는 정대표가 먼저 윤창열씨에게 7억원을 요구했고, 굿모닝시티 건축 허가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자신의 종전 주장과 정반대로, 이권에 개입한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정치인으로 치부되기에 충분했다. 26명의 변호인단이 즉각 반론문을 냈지만 여론은 이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서운한 감정 잇따라 표출

    검찰 발표 직후 정대표 캠프는 다시 한번 청와대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터뜨렸다. 민 부대변인은 “말로 다 할 수 있겠느냐”고 분위기를 전했다. 정대표 캠프의 이런 감정은 다분히 정대표의 심리적 리듬과 궤를 같이한다. 노대통령에게 가장 서운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바로 정대표이기 때문이다. 정대표는 지난 10여일 동안 다섯 차례 정도 노대통령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 첫번째는 10일 새벽에 터져 나왔다. 9일 밤 10시경, 서울지검 신상규 3차장으로부터 “(검찰에) 한번 나와주셔야 할 것 같다”는 통보를 받은 정대표는 밤새도록 통음했다. 만취한 정대표는 새벽4~5시경,



    “노대통령이 나를 희생시키려는 것 같다”는 말로 노대통령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음모론 카드’로 정면돌파?

    7월14일 오후 여의도 민주당사 앞에서 사민당원들이 정대철 민주당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옆에 있던 측근이 “노대통령이 (중국에서) 귀국하면 만나라”고 채근하자 “암, 만나야지”라며 일말의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중국을 다녀온 노대통령과의 30분에 걸친 밀담은 오히려 정대표의 서운함만 키웠다. 이날 청와대를 나선 정대표는 다시 술잔을 잡았고 ‘배신’이란 단어가 정대표 주변을 맴돌았다고 한다. 다음날 정대표는 대선자금을 폭로, 노대통령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

    13일 밤, 정대표, 문희상 대통령비서실장, 유인태 정무수석비서관, 이낙연 민주당 대표비서실장 4명이 회동한 자리에서도 ‘노심(盧心) 읽기’에 나선 정대표의 조바심은 쉽게 드러났다.

    “당신들이 나한테 이럴 수 있느냐. 왜 청와대가 검찰을 통제하지 못하느냐.”

    ‘음모론 카드’로 정면돌파?

    민주당 정대철 대표가 7월20일 지역구인 서울 중구의 한 교회에서 예배중 기도를 하고 있다(위).청와대를 방문한 정대표가 노무현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정대표측은 청와대와의 1차 접촉에서 상생의 길을 찾지 못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최근 정대표 측근들이 정대표에게 올리는 대책 문건에서도 이런 흐름은 그대로 드러난다. 청와대에 대해 ‘불가근 불가원’ 입장을 취하며 대안을 찾자는 보고서가 정대표에게 전달됐고 이는 현재 실행중이다. 측근 A씨가 17일경 정대표에게 올린 보고서의 요지는 ‘청와대와 직접 각을 세우지는 말되, 긴장감은 조성하라’는 것이다.

    아직도 살 길은 청와대에 있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A씨는 “주변 분위기가 대부분 비슷하다”고 전했다. 시간을 벌어 사건을 확대시켜야 한다는 대안도 결국 청와대의 측면지원을 전제로 한다. 측근들과 의견을 교환한 A씨의 보고서 내용도 이런 큰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혼자서 십자가를 질 필요 없다. 검찰에는 호락호락 나가선 안 된다. 굿모닝시티와 관련한 의혹은 삼국지보다 더 방대하다. 지금 들어가면 혼자 희생된다. 다른 이름이 나올 때까지 버텨야 한다.”

    측근들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정대표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정면돌파에 나서라고 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은 ‘200억원 대선자금’ 후속 폭로라는 과격한 주장도 내놓는다. ‘200억원 대선자금’ 발언 등 여권 핵심부를 겨냥한 강공 발언을 통해 이번 사건을 정치문제로 몰아가는 데 성공했다는 자평에 따른 것. 다른 한편으로는 굿모닝시티와 관련한 각종 정보들을 삼국지를 쓸 만큼 광범위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자신감에서 출발한다.

    18일 한 측근은 “굿모닝시티 계약자협의회(회장 조양상)는 여야 국회의원 10여명의 금품수수 의혹을 증명할 수 있는 증빙자료를 공개하겠다는 입장을 내부적으로 정해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지적은 20일, 서울 종묘공원에서 열린 굿모닝시티 사기분양 범국민 규탄대회장에서 사실로 확인됐다. 이날 조회장은 “굿모닝시티 윤창열 대표가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들에게 30억원을 전달한 증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19일 정치권 로비를 전담한 윤석헌씨를 구속(상자기사 참조), ‘굿모닝 드라마’를 클라이맥스로 이끌고 있다.

    다른 한 인사는 “굿모닝시티측이 지난해 대통령선거 당시 모 후보 당선시 10억원을 축하금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로비계획이 담긴 문건을 작성했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은 검찰에 의해 간접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검찰은 윤창열씨가 지난해 대통령선거 전후로 정치권에 집중적으로 금품을 살포했다는 정황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 여권 한 실세가 장모상을 당하자 평소 안면이 없었는데도 상가를 찾아 조문에 나선 점과 이 실세의 여동생이 경영하는 노래교실을 방문해 매년 얼마씩의 후원금을 내기로 약속했다는 등의 첩보에 대해서도 유달리 관심을 나타낸다. 결국 정대표 죽이기가 음모론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사안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한 측근은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은 정대표에게 보고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정대표가 참석한 대책회의에서는 연일 “혼자만 받은 것이 아니다”는 얘기와 “모종의 음모가 있다”는 등의 상황들이 논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대표의 측근들은 이런 의혹과 의문들이 하나둘 풀리면 정대표에게 집중된 검찰의 사정 칼날이 분산될 것으로 확신한다.

    정대표측은 한편으로는 청와대 내 386그룹에 대한 의혹을 감추지 않고 있다. 정대표 한 주변인물은 “아마도 ‘굿모닝 게이트’ 시나리오 밑둥치를 더 까보면 386과 정신적인 교분을 나누는 인물이 웅크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안희정 부소장은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현 정권에 참여한 386세대가 무한의 책임을 느끼며 철저히 준비할 때가 왔다”며 “집권당 사무총장이 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정대표측은 “여권 내 386그룹이 주도하는 세대교체론이 생각보다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며 그 일환으로 ‘굿모닝 게이트’가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대표의 버티기가 실효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노대통령은 19일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된 정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요구서에 주저 없이 서명했다. 노대통령은 또 21일 정치자금을 공개하자고 선언, 정대표의 압박카드를 무력화하기도 했다.

    강성 검찰의 의지도 철벽이다.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14일 서울지검 부장검사 10여명과 강남 모 음식점에서 저녁을 하면서 반주로 폭탄주 서너 잔을 돌렸다고 한다. 그 직후 일주일간의 장기휴가를 선언했다. 검찰은 강장관의 이런 일련의 액션을 “원칙대로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요즘 대검찰청 홈페이지 ‘국민의 소리’에는 굿모닝시티 사건 수사를 놓고 여당과 정면대결하는 검사들을 격려하는 내용들이 넘쳐난다.

    “일본의 검찰도 총리의 부정부패를 엄정하게 수사한 이후 정치검찰의 꼬리표를 떼고 진정한 검찰의 위상을 세웠다고 합니다. 총장님 이하 서울지검 특수2부 검사님들, 4500만 국민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화이팅!”

    아무래도 국민은 정대표보다 검찰을 응원하는 분위기고, 검찰은 그런 배경을 지렛대로 삼아 원칙대로 갈 것 같다. 검찰 한 관계자는 최근 검찰 분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대통령도 (굿모닝시티와 관련) 혐의가 포착되면 소환하겠다.”

    청와대와의 협상과 음모론을 손에 든 정대표의 위상은 이런 검찰 앞에 서면 더없이 낮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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