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0

2003.06.26

정치인 입 속에 숨겨진 부메랑

  • 손혁재 /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입력2003-06-19 16: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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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인 입 속에 숨겨진 부메랑
    이 세상에서 가장 흔한 말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사랑’이라는 말일 것이다. 대부분의 종교가 사랑을 가르치고 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사랑 때문에 울고 웃는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말이 너무 흔하다 보니 이제 사랑이라는 말의 신비함과 소중함이 줄어들었다. 게다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매를 들고 사랑이라는 말을 내세우면서 복수나 배신을 서슴지 않는 세태가 사랑이라는 말의 존귀함과 힘을 믿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오용과 남용으로 말이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을 ‘언어의 테러리즘’이라고 비아냥대는 사람도 생겨났다. 오늘날 가장 뛰어난(?) ‘언어의 테러리스트’로 정치인을 꼽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선량(選良)’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의 정치인들이 선거 때만 되면 한없이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온갖 아름다운 말로 한 표를 호소하지만 그 말을 그대로 믿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결국은 지켜지지 않고 쓰레기통에나 처박힐 쓸데없는 말임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에게는 달콤한 말을 속삭이던 입으로 정치 경쟁자에게는 듣기에도 거북한 증오와 저주를 쏟아 붓는 것을 너무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상대 향한 독설과 망언이 언젠간 자신에게 돌아올 것

    정치인이 거짓말쟁이의 전형이 된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게다가 이제는 난폭함과 무례함, 그리고 상스러움까지 갖추게(?) 됐다. 의정단상에서 가끔씩 볼썽사나운 격투기가 벌어지고 거기에 양념처럼 상스럽고 거친 언어가 따라붙는다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 다 알고 있는 ‘상식’이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날이 갈수록 커지는 원인 가운데 하나가 이것이라는 사실을 정치인들도 알고는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치인들이, ‘사회의 목탁’이요 ‘무관의 제왕’이라는 언론까지 일부 오염시키고 있다는 책임론도 거론된다. 이제 국민은 언론에 전폭적인 신뢰나 무한한 존경을 보내지 않는다. 특히 일부 언론이 정치보도에서 두드러지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면서도 맹목적 적대감이 가득한 정치적 공방을 보도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독자를 짜증나게 하는 일이 잦아졌다.



    정치인들의 욕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정치인들이 굶주리는 북녘 동포들에게 보내는 인도주의적 온정을 ‘퍼붓기’라고 몰아붙여 사랑의 손길을 움츠러들게 만든 것, 통일을 위해 헌신하는 이들에게 ‘김정일 숭배자’라거나 ‘노동당 2중대’라고 색깔론을 끌어다 붙이는 것, 그리고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해달라는 요구를 ‘집단이기주의’라고 매도하는 것도 저질의 언어폭력이다.

    근거 없는 폭로와 선동을 일삼고도 ‘아니면 말고’식으로 넘어가는 것도 ‘참을 수 없는 정치의 천박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외국에 가서 정상외교를 벌이고 있는 대통령의 등 뒤에 ‘등신’이라는 언어의 비수를 꽂는 것은 정말 남부끄러운 일이다. 복지와 인권의 확대를 ‘사회주의 정권’의 증거라고 당당하게(?) 떠드는 정치인의 수준은 또 어떤가. 대통령에게 대놓고 대통령 자리의 임자가 바뀌었다고 말하면서 그것이 문제가 되자 ‘덕담’이고 ‘농담’이었다고 우기는 것 또한 웃기는 일이다.

    정치인은 입 속에 칼을 품고 사는가. 그러나 그 칼은 ‘양날의 칼’이다. 한쪽 날이 상대를 겨누었다면 다른 날은 자기 자신을 겨누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부메랑처럼 상대를 향한 독설과 망언이 자기를 향해 돌아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입만 열면 상대를 잡아먹을 듯한 독기 서린 말과 저주하는 말로 얼룩진 정치 언어를 이제는 화려한 장미꽃을 피우고 희망찬 내일을 약속하는 아름다운 말로 바꿀 수는 없을까.

    정당 대변인의 말이나 정치인들의 대(對)정부 질의가 모범적인 문장으로 선정되어 교과서에 실릴 것을 기대하는 것은 정녕 잘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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