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6

2003.05.29

司正 총구 동교동계 정조준?

석탄 납품·월드컵 휘장 사건 등 줄줄이 연루 … 동교동 반발 속 ‘기획 수사’ 의혹도 제기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3-05-21 14: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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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司正 총구 동교동계 정조준?

    나라종금 퇴출 저지와 관련 정치인들의 로비 의혹이 커지고 있다. 박주선 민주당 의원, 한광옥 전 청와대비서실장, 안희정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 김홍일 의원(왼쪽부터), 정학모 LG스포츠단 고문(가운데).

    세간의 관심과 비난이 또다시 동교동계로 향하고 있다. 나라종금 퇴출 저지 로비 의혹, 한국전력 석탄 납품 로비 의혹, 한·일 월드컵 휘장사업 관련 정관계 로비 의혹 등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전 정권의 실세 그룹이었던 이들의 비리가 하나씩 드러나고 있기 때문. 김대중 대통령(DJ) 퇴임 이후 동교동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김홍일 의원마저 검찰 수사선상에 올라 있는 상태다.

    여기에 송두환 특별검사가 이끄는 대북 송금 의혹 사건 수사도 점차 DJ 정부의 핵심인사들을 향하고 있다. DJ뿐 아니라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 임동원 전 국가정보원장, 이기호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등이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들은 이미 특검 수사에 대비해 변호사들과 긴밀한 협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DJ의 경우 이재신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법률 자문에 응하고 있다는 후문.

    대북 송금 사건의 경우 수사결과가 미치는 파장은 상상을 초월한 정도. 이미 특검팀 주변에서는 대북 송금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 대가가 아닌가 하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대북 송금 특검은 수사배경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은 거의 없는 편이다. 특검법 제정에 따라 특검팀에서 수사하고 있어 정치적 시비 대상으로 삼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사정 흐름 ‘脫호남·脫DJ’ 주장과 흡사

    그러나 현재 검찰이 수사하고 있는 각종 의혹 사건은 다르다. 검찰은 현재 한광옥 전 청와대비서실장과 김홍일 의원의 오랜 측근으로 알려진 정학모 LG스포츠단 고문 등을 나라종금 로비 의혹 사건과 관련, 구속하는 등 나름대로 성과를 올리고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정치권에서는 뒷말이 무성하다. 동교동계 L의원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이는 것 같지 않느냐”며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L의원의 말대로 동교동계 입장에서 본다면 참으로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검찰의 칼날을 맞는 정치인들 대부분이 지난해 대선 과정에 노무현 대통령 당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뛰지 않았거나 현재 신당 문제 등으로 신주류측과 틀어져 있는 쪽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사정 흐름은 신당파의 ‘탈(脫)호남, 탈DJ’ 주장과도 일정 부분 맥을 같이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올 정도.

    더욱 희한한 일은 이인제 자민련 의원까지 검찰 수사 대상이 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는 대목. 검찰은 이의원의 전 특보를 월드컵 휘장사업 로비 관련 혐의로 구속했다. 잘 알려진 대로 이의원은 지난해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색깔론’ 등을 동원해 노무현 후보를 원색적으로 공격했다. 대선 정국에서는 자민련으로 옮겨 이회창 후보 지원에 나서기도 했다.

    물론 동교동계의 희생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라종금 로비 의혹 사건으로 노대통령의 최측근인 염동연 민주당 인사위원이 구속됐다. 노대통령의 또 다른 측근인 안희정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의 경우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4월30일 법원에 의해 기각되기는 했지만 그 역시 사법처리를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검찰은 그동안 안씨를 구속하기 위해 철저한 보강 조사를 해왔다.

    司正 총구 동교동계 정조준?

    나라종금 로비 의혹 사건을 수사중인 검찰 직원들이 4월24일 김호준 전 보성그룹 회장의 셋째 동생 효근씨가 사장으로 있던 서울 용산구 닉스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그러나 안씨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검찰이 안씨 구속에 성공한다면 이는 순전히 노대통령의 ‘말’ 때문이다. 노대통령은 5월1일 MBC TV ‘100분 토론’에 참석, “희정씨는 나의 동업자이자 동지”라고 애정을 표시했다. 검찰 입장에서는 ‘노대통령 측근 봐주기’ 수사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안씨를 구속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 검찰 관계자는 “실제 노대통령의 TV 토론 이후 검찰 분위기가 ‘안씨 구속 불가피’ 쪽으로 흘렀다”고 전했다.

    동교동계는 염씨의 구속에 더 주목한다. 염씨의 정치적 성장배경이 동교동계이기 때문. 동교동계가 “노대통령이 3월17일 법무부 업무보고에서 나라종금 로비 의혹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한 것은 이 사건과 관련해 염씨를 치면 고구마 줄기처럼 염씨와 얽혀 있는 동교동계도 걸려들 것이라는 정치적 계산 때문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할 만하다.

    그러나 검찰은 정치권의 ‘기획 사정’ 의혹 제기에 대해 펄쩍 뛴다. 안대희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중수부장)은 5월14일 이례적으로 브리핑을 통해 “나라종금 퇴출 저지 로비 의혹 사건의 경우 검찰이 재수사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나오면 나오는 대로 수사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들도 “‘기획 사정’은 말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실제 검찰 수사 진행상황을 보면 ‘기획 사정설’보다는 안대희 부장의 설명이 더 설득력 있다. 가령 나라종금 사건만 해도 그렇다. 검찰은 안상태 전 나라종금 사장의 진술 내용을 토대로 한광옥 최고위원 등을 구속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안상태 전 사장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검찰의 재수사가 시작돼 검찰로 불려온 첫날 불과 3분여 만에 나라종금측의 돈을 받은 사람을 순순히 불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나라종금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청와대측과 조율한 흔적 역시 발견하기 힘들다. 검찰 내에서 안 중수부장은 설사 청와대측의 요구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를 과감히 뿌리칠 만한 강골 검사로 정평이 나 있다. 실제 안 중수부장은 수사팀의 보고를 받을 때도 일체의 지시를 내리지 않아 수사팀이 아무런 가이드라인 없이 수사에만 몰두할 수 있다고 한다.

    한전 석탄 납품 로비 의혹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부패방지위원회(이하 부패방지위)의 통보를 받고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것이다. 검찰이 손세일 전 의원을 구속하고 동교동계의 핵심 최재승 의원도 사법처리한다는 방침이지만 미리 기획된 수사라고 보기 힘들다는 얘기다. 부패방지위 주변에서는 “손 전 의원의 고교 동창인 K씨가 손 전 의원과 사이가 틀어지면서 불거진 사건”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으나 K씨는 이를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칼날이 주로 동교동계에 집중된 것은 사실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검찰 관계자는 “DJ 정권에서 권력을 쥐고 있었던 사람들이 누구였냐”고 반문했다. “모든 청탁과 민원이 힘 있는 동교동계에 몰렸고 이 과정에서 권력형 비리가 생겨났다”는 설명이다. 물론 검찰이 이제 와서 칼을 들이대는 것은 자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해도 동교동계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지적이다. 당연히 동교동계의 반발과 반격이 예상된다. 동교동계 한 핵심인사는 사석에서 “우리만 구악이고 정치자금 만졌냐. 선거 때 그쪽(노무현 신주류)은 맨손으로 뛰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화갑 대표, 정균환 원내총무 등 구주류 핵심들은 지난 대선 때 선거를 진두지휘, 대선전략과 자금 흐름에 비교적 정통한 점이 거론된다. 동교동계 한 인사는 민주당 경선과 대선에 집행된 자금 집행 등과 관련한 자료를 쥐고 있음을 은연중 암시했다. 이 인사의 설명이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노무현 후보측이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후단협) 등을 배제한 신당 창당을 검토한다는 정보를 입수했고 그때부터 우리는 ‘결국 이기든 지든 같이 갈 수 없겠다’고 판단, 저쪽(노무현측)의 각종 정보를 축적했다.”

    동교동계 출신 B씨는 “특히 2000년 총선자금과 관련한 신주류의 각종 행태를 도마에 올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그는 2000년 2월, 신주류 A씨가 권노갑 전 고문의 자택을 찾아 손을 벌린 것을 예로 든다. A씨는 총선 때까지 서너 차례 권 전 고문을 찾았다고 한다. 그는 이후 정풍운동 와중에 권 전 고문의 등에 비수를 꽂는 대열에 합류, 동교동계의 공분을 샀다.

    2000년 총선 공천을 받기 위해 10여 차례 김홍일 의원 자택을 방문한 C씨의 경우도 공개적으로 언급될 가능성이 있다. 그가 김의원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충성을 다하겠다”고 말하는 것을 본 사람이 많다. “권 전 고문을 무너뜨린 그를 가만두지 않겠다”는 동교동의 직설적 공격을 받는 D의원에게는 “동교동계 차원의 응징이 있을 것”이라는 게 B씨의 말이다. 그는 1996년 권 전 고문이 직접 발탁하면서 정계에 입문한 이후 2000년 총선까지 권 전 고문이 DJ 후계자로 만들겠다며 ‘심혈을 기울인’ 인물.

    그러나 이는 압박 수단일 뿐 구체화하기는 힘들다는 반론도 나온다. 신주류에게 타격은 입힐 수 있으나 당장 정치자금의 출처에 대한 의혹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억울함보다 ‘부패와 비리’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더 높은 점도 동교동계의 행동반경을 제한한다. 어쨌든 권위주의 정권에서도 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던 동교동계가 최대의 위기에 직면한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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