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4

2003.05.15

말은 짧게, 주장은 강하게

100분 토론 통해 본 노무현 대통령의 화법 … 단호함·간결함·도전적 ‘옛 특징 그대로’

  • 최윤선/ 영산대 교수·매스컴학부 cys@ysu.ac.kr

    입력2003-05-07 17: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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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은 짧게, 주장은 강하게

    노무현 대통령은 5월1일 MBC TV ‘100분 토론’에 출연해 국정 현안을 놓고 6명의 패널과 토론을 벌였다.

    설득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대한민국의 지난 시절은 힘의 시대, 자리의 시대였다. 갈등의 해결과 문제의 해답은 어느 쪽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어느 쪽이 힘이 센가에 따라 결정됐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것들을 토론으로 결정하는 새로운 문화가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토론공화국’이라는 말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그리고 새로운 문화의 맨 앞에 노무현 대통령이 있다.

    설득의 시대에는 말하는 사람의 언어구사 방식, 즉 언술 방식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토론의 달인’이라고까지 불리는 ‘토론공화국’ 대통령의 언술 방식은 어떠할까? 이 점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5월1일 ‘MBC 100분 토론’에서 드러난 노대통령의 언술 방식의 특징을 지난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언술 방식과 비교하면서 분석해보기로 한다. 지난 대선 때 노후보는 각종 토론회에서 토론을 벌였다. 이때 노후보의 언술에서 드러난 특징은 단호함, 간결함 그리고 도전적 태도였다(주간동아 359호 참조). 이러한 특징은 이번 토론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돌려 말하거나 두루뭉실한 표현 없어

    이날 노대통령의 언술에는 단호함이 두드러졌다. 노대통령은 돌려 말하거나 두루뭉실하게 얼버무리지 않고 단정적으로 말한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하기 곤란합니다”라고 말할지언정 얼버무리지 않았다. 단정적 발언은 ‘…니다’를 종결어미로 하는 문장들과 어울려 단호함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건 다 사실과 다릅니다.”

    “질문에 대해서 참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잘 믿지 않으시겠지만 제가 국정원에 지금 책임을 지고 있는 주요 간부들의 신원을 하나하나 다 검증해보지 않았습니다. 검증해보지 않고 또 출신지역 분포도 일일이 다 따져보지 않았습니다.”

    노대통령의 언술은 또한 간결했다. 단문이 다수를 차지하는 그의 문장에서는 긴 문장에서 흔히 드러나는 산만함을 찾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듣는 사람이 집중하게 되고, 또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간결성은 노대통령이 특히 강조하고 싶은 내용에서 두드러졌는데, 이는 발언 내용에 힘을 실어 명확하게 전달하는 효과를 낳는다.

    “질문에 대해서 참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사실이 다 다릅니다. 우선 제가 언론을 박해할 만한 아무런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건 이해해주시고요. 신문고시는 공정거래법에 유일하게 신문만 예외적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호남 소외론을 말씀드리기 전에 제가 자신 있게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떤 참모도 제 귀나 눈을 가로막지는 못합니다. 지금은 독대라는 것이 없어졌습니다. 모든 문제는 여러 참모들이 함께 모여서 토론하고 토론을 거치지 않으면 결론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참모도 제 귀를 막지 못합니다. 심지어 제가 인터넷에까지 직접 들어갑니다.”

    그리고 노대통령의 언술은 도전적이었다. 현재 우리 사회 내에서 갈등이 두드러진 문제에서 중재자처럼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거나 타협하려 하기보다 오히려 어느 쪽이 잘못되었다고 노골적으로 비판해서 해당 집단의 반발 또는 반박을 이끌어낸다.

    말은 짧게, 주장은 강하게

    간결하면서 단호한, 다소 도전적인 어법으로 자신의 뜻을 밝힌 노대통령(왼쪽). 토론 시작 전 패널들과 웃으며 악수하는 노대통령. 이날 토론은 양보 없는 공방으로 시종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지금까지 강경파야말로 나쁜 시나리오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고려도 없이 강경론을 펴왔습니다.”

    “당신 무슨 고통받았냐, 박해받았냐, 선거 전날 정몽준 후보가 노무현과 공조를 파기했다는 그 신문을 무가지로 어마어마하게 찍어서 온… 조선일보가 그랬지 않습니까? 진실입니다.”

    “대기업의 노동조합이 실제 길거리로 나올 때는 비정규직 문제를 들고 나오지만 그들이 협상 테이블에 앉았을 때 진정한 의미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가. 그리고 중소기업 노동자들과의 임금 격차에 대해서 이 나라 대기업 노동자들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가. 양심에 손 얹고 고민해보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언술에 대해 ‘조선일보’는 다음 날 직원 일동 명의로 항의서한을 보냈다. 노동조합 이기주의에 대해서는 민주노총이 즉각 항의 성명을 발표했다.

    프랑스의 정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소세즈(Saussez)는 “연설이 효과적이려면, 간단히 말하되 전달하는 바가 뚜렷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점에서 본다면 단호함과 간결함을 특징으로 하는 노대통령의 언술은 설득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도전적 태도는 노대통령 지지자나 노대통령의 비판에 공감하는 집단에는 강력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할 수 있다. 더불어 힘 있는 지도자, 불의에 굴하지 않는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다. 노대통령의 대선 승리에는 언술에서 드러난 도전적 태도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부조리한 정치판에 대한 도전자의 이미지였던 것이다.

    후보 때처럼 감정 억제는 하지 않아

    하지만 말 그대로 ‘도전’이란 약자 또는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강자나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을 상대할 때 갖는 태도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지니고 있는, 가장 높은 지위의 대통령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면이 있다. 무엇보다도 대통령은 모든 국민을 포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도전적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노대통령의 기본적인 속성이기도 하겠지만, 또한 대통령이지만 도전하여 타파할 것이 많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대선 당시 후보로서 보여준 언술의 특징은 대통령이 되어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따라서 이러한 특징은 노대통령 언술의 기본적 특징으로 보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후보 시절과 비교해 달라진 부분도 눈에 띄었다. 우선 후보 때와 달리 감정을 억제하지 않았다. 주제가 언론 문제로 넘어가자 토론 내내 차분하게 유지되던 톤이 격정적으로 바뀌었다. 노대통령의 언론에 대한 인식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격정을 드러낸 것은 감정관리에 실패했다기보다 감정을 억제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보인다. 이러한 모습은 오히려 더욱 공격적인 질문을 받았던 후보 때는 드러나지 않던 모습이다. 지난번 검사와의 대화 때부터 드러났다.

    후보 때의 언술은 주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미래지향적 공약형이었다. 이번 토론에서는 ‘그것은 바로 이러이러하다’는 현재 설명형이 주조를 이룬 것도 차이라면 차이다. 또한 답변하기 곤란하다며 답변을 거부하는 언술도 후보 때 볼 수 없던 것이었다.

    이런 차이가 언술 방식의 근본적 변화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후보에서 대통령으로 신분이 바뀐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후보 때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당락이 좌우되기에 부담이 더 크고 신경을 써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면 후보 때보다는 여유가 생기게 돼 있다. 따라서 공격적인 질문에도 후보 때는 감정을 자제해야 하지만,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굳이 감정을 숨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공약형 언술에서 설명형 언술로의 변화 역시 신분의 변화 때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노대통령은 자신이 토론의 달인으로 불리는 데 거부감을 나타냈다. 토론의 달인이라는 표현 속에는 내용 없이 기교만 가지고 상대를 현혹한다는 부정적 뉘앙스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론의 달인이든 아니든, 노대통령의 언술이 설득력 있는 것은 분명하다. 여기에는 단호함, 간결함, 도전적 태도를 특징으로 하는 노대통령의 언술적 특징이 크게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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