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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본 경제 이야기 | ‘아라비아의 로렌스’

석유에 대한 열강의 탐욕 … 중동 아픈 역사 생생히

  • 이명재/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mjlee@donga.com

석유에 대한 열강의 탐욕 … 중동 아픈 역사 생생히

석유에 대한 열강의 탐욕 … 중동 아픈 역사 생생히
‘No blood for oil.’

‘석유를 위한 전쟁 반대’쯤으로 해석될 플래카드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나부끼고 있다. 이 구호는 미국이 서두르고 있는 대(對)이라크전의 성격이 미국 정부가 대외적으로 주장하는 것과는 다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석유전쟁’이라는 말에선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던 이번 전쟁의 숨은 배경,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드러난다. 이라크전을 놓고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이 미국과 이견을 보이고 있는 것도 ‘반테러’ 운운의 단순 전쟁구호로 만장일치하기 힘든 복잡한 경제적 이유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중동이 20세기 들어 서구 열강들에게 중요한 지역으로 떠오른 건 석유의 경제적 가치가 새롭게 발견됐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 대규모 유전이 확인되면서 중동의 황량한 모래사막은 갑자기 ‘황금목장’으로 바뀌었다.

석유는 척박한 땅, 아랍에는 구세주와 같은 것이었다. 이들은 석유를 ‘알라의 장기 저리 융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석유는 한편으론 중동에 고난의 현대사를 안겨준 재앙이기도 했다.

20세기 초 중동에 대한 유럽 강국들의 간섭과 쟁탈전을 내용으로 한 영화를 통해서도 이를 들여다볼 수 있는데, 바로 ‘아라비아의 로렌스’(사진)다. ‘닥터 지바고’ 등 웅장한 스케일의 대작을 주로 만들어온 데이비드 린 감독의 또 하나의 대표작인 이 영화는 실존인물인 영국의 한 청년 장교의 활약을 그리고 있다. 남자주인공의 영웅적 활약상만 놓고 본다면 낭만적인 영화쯤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아랍계 인물들의 복잡한 부족 간 정치적 갈등은 20세기 초 아랍 역사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다. 영화는 제1차 세계대전 발발 후 아랍인들이 로렌스와 힘을 합쳐 독일군 편인 터키인들과 맞서는 과정을 그린다. 이들이 대터키전에 나선 것은 영국 정부로부터 받은 약속 때문이었다. 이집트 주재 영국 외교관 맥마언이 메카의 샤리프인 후사인에게 아랍지역이 투르크로부터 독립하는 데 지지할 것을 약속해, 후사인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영국은 1년도 안 돼 이 약속을 뒤집는다. 아랍인들이 독립국가의 꿈을 그리면서 피를 흘리던 순간 영국은 프랑스와 이들을 배신하는 비밀협정을 맺는다. ‘전쟁이 끝나면 영국과 프랑스가 터키와 중동을 나눠 갖는다’는, 이른바 사이크스-피코 협정이 그것이다. 영화는 주인공 로렌스가 이 사실을 나중에 알고 분노하는 대목을 보여준다.

그 뒤 유대인의 독립국가 건설을 보장한 ‘발포어 선언’으로 상황은 더 복잡해지지만 ‘신사의 나라’ 영국의 배신 행위는 다름 아닌 중동의 석유에 대한 탐욕 때문이었다.

아랍세계가 ‘석유의 힘’을 자각한 건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이후다. 아랍국가들은 그때까지 배럴당 3달러이던 유가를 두 달 만에 11.65달러로 올렸다. 수십년간 서방 정부와 석유업계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아랍국가들은 이때 사상 처음으로 석유업계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유가를 결정한다. 중동국가들에겐 엄청난 오일달러가 쏟아져 들어왔지만 미국과 유럽 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음은 물론이다.

미국이-또 미국 석유 메이저들이-이라크에 대해 가장 걱정하는 게 있다면 아마도 70년대와 같은 상황이 재연되지 않을까 하는 것. 즉 자원 민족주의를 무기로 아랍권의 결속을 외치는 이라크의 기치 아래 아랍국가들이 모여드는 상황일 것이다.

이라크전을 놓고 미국과 독일 프랑스 러시아가 입장차를 보이는 데는 이라크의 석유개발 정책에 대한 이해관계가 숨어 있다. 후세인은 걸프전 이후 석유개발권을 러시아 프랑스 등에게 줬지만 미국회사는 배제했다.

부시 일가는 텍사스에서 석유 사업으로 큰돈을 번 집안이다. ‘석유로 흥한 가문’의 내력 때문일까. 이라크전을 강변하는 부시의 목소리에서는 어딘지 석유 냄새가 풍기는 것 같다.



주간동아 373호 (p83~83)

이명재/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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