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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권력의 핵 ’청와대’

화려한 듯 고달픈 ‘청와대맨’

정원 405명 대통령의 손발 역할 … 유혹 노출된 파워맨, 일 많은 3D맨 ‘양면의 자리’

  • 송국건/ 영남일보 기자 song@yeongnam.com

화려한 듯 고달픈 ‘청와대맨’

화려한 듯 고달픈 ‘청와대맨’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오른쪽 세 번째).

자유당 정권 시절 ‘경무대 똥통 사건’이 있었다. 당시 에는 “경무대(지금의 청와대)에서 일하면 화장실 인분 처리원도 위세를 부린다”는 말이 인구에 회자됐었다. 이를 동아일보에 시사만화 ‘고바우’를 연재하던 김성환 화백이 풍자했다가 고초를 겪은 사건이다.

그로부터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흐른 2000년 11월 ‘청와대 청소원 사건’이 세인들을 경악케 했다. 동방금고 불법대출과 무차별 로비로 파문을 일으킨 정현준 한국디지털라인 사장이 ‘실세 과장’ 흉내를 낸 청와대 미화원을 든든한 배경으로 오인해 수억원을 갖다 바친 어이없는 일이 발각된 것이다.

청와대와 관련된 비리는 신문 사회면이나 가십난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실제 청와대 직원이 연루되기도 하고, 청와대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단순 사칭도 있다. 현 정부 들어서만 10여명의 청와대 사람들이 각종 비리에 연루돼 구속됐다. 1999년 박주선 당시 법무비서관(1급)이 옷 로비 사건과 관련돼 구속됐고, 민정수석으로 재직했던 신광옥씨가 진승현 게이트에 연루돼 영어의 몸이 됐다. 2002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청와대 사칭사건은 89건에 이른다.

이처럼 청와대 사람들은 비리의 유혹에 광범위하게 노출돼 있고, 청와대 사칭 사기극이 곧잘 통한다. 어떤 비서관은 “하루 한두 건 정도의 민원은 기본으로 들어온다”며 “그중에는 달콤한 대가가 수반되는 경우도 있어 웬만한 마음가짐으로는 유혹의 손길을 뿌리치기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비서관은 “처음 부임했을 때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불쑥 찾아와 아무 대가도 원하지 않는 성의라며 막무가내로 거액의 돈을 놓고 가 되돌려주느라 애를 먹은 적이 있다”고 토로했다. ‘자신’을 사칭한 사기꾼에게 피해를 당한 사람으로부터 확인전화를 받은 사례도 적지 않다.

청와대는 실제로 힘이 있다. 차관급인 수석비서관들이 해당 부처의 장관보다 정책결정 과정에서 우선권을 갖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수석비서관 아래의 1~3급 비서관들이 소관업무와 관련된 현안이 잘 풀리지 않을 때 해당 부처 장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해결하는 일도 비일비재다. 이런 파워는 최고 통치권자인 대통령과의 접근성에서 나온다. 1~3급 비서관들은 대통령에게 직접 해당 업무에 대한 브리핑을 하기도 한다. 비서실장과 정무수석, 공보수석 등은 거의 매일 대통령과 독대할 기회를 갖는다.



오전 7시경 출근하고 퇴근시간 따로 없어

그러나 막상 청와대 사람들은 이런 화려함보다 현실의 고충을 호소한다. 한 비서관은 “청와대 참모직은 3D 업종”이라고 자조했다. 부서별로 다르지만 대체로 오전 7시에 출근해 퇴근시간은 따로 없다. 퇴근했다가도 언제 불려 들어올지 모른다. 마음 편하게 술 마시거나 가족들과 함께 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에 대해 사과의 뜻을 표시한 12월13일. 밤 10시가 다 된 시간에 ‘느닷없이’ 전화가 걸려왔다. 미국 시간에 맞추다 보니 한국은 이미 밤이었다. 당연히 비상이 걸렸다. 특히 정무와 공보 쪽은 수석부터 말단 여직원까지 부랴부랴 청와대로 복귀해 뒤처리를 해야 했다.

현재 청와대에는 비서실장을 정점으로 8개의 수석비서관실이 있다. 필요에 따라서는 ‘특보’라는 명칭의 별도 보좌기관을 두기도 한다. 각 수석비서관실에는 3~5명의 비서관(1~3급)이 담당 분야별로 수석비서관을 보좌한다. 1명의 비서관 아래에는 적게는 3명, 많게는 10명 가까운 행정관(3~5급)이 실무를 담당한다. 대통령령에 규정된 대통령비서실직제에 따르면 청와대 비서실 정원은 405명이다. 정무직 9명(비서실장과 8명의 수석비서관), 일반직 219명(관리관, 이사관, 부이사관, 별정직 1~5급 상당 등 포함), 기능직 177명이 포함된 수치다. 현재 청와대는 이 정원을 거의 채우고 있다.

일반 정부부처와는 달리 명칭에 대한 정확한 구분이 없다. 정현준씨가 든든한 백으로 믿고 있었던 미화원에게 전화를 하면서 “아무개 과장 계시냐고 물었더니 바로 전화를 바꿔줘 의심할 수 없었다”고 한 말이 납득이 가는 부분이다.

청와대 비서실에는 어떤 사람들이 들어갈까.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전문관료 출신이다. 여기에는 현역 군인과 경찰 등 ‘특수직’도 포함된다. 이들은 해당 부처의 엘리트 공무원들로 파견 형식으로 근무한다. 둘째는 정치권 출신이다. 신임 대통령과 함께 들어오거나 정당이나 국회에서 청와대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하며 언론계 출신이나 사회단체 인사 등도 포함된다. 셋째 청와대 토박이. 정권이 바뀌면 대부분의 청와대 사람들도 바뀌지만 청와대 살림의 노하우가 필요한 분야에서는 토박이가 우대 받는다. 주로 총무, 의전 파트에 장기근무자가 많다.

화려한 듯 고달픈 ‘청와대맨’

정현준 한국디지털라인 사장(왼쪽)과 청와대 미화원. 정사장은 실세 과장 흉내를 낸 이 미화원에게 수억원을 갖다 바쳤다.

이들 사이에도 알력이 없을 수 없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관료 출신은 정치권 출신을 그다지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한마디로 ‘함량미달’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의 정치권 출신이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의 노련한 관료 출신들을 부하로 거느리고 있는 부서에서 더욱 그렇다. 자신들은 행정고시 합격 후 20여년을 공직에서 근무해야 올 수 있는 자리를 정치판에서 구르다 줄 잘 잡은 사람이 차지한 데 대한 반감이다.

반면 정치권 출신 인사들은 정권 창출에 일익을 담당했다는 데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들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데는 행정 경험보다 정치적 감각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정치인·관료·청와대 토박이로 구성된 우월(?)집단

비서관이나 행정관급에서 나타나는 이런 알력은 실무적인 마찰로 이어지곤 하지만 크게 불거진 적은 그리 많지 않다. 문제는 상층부에서 벌어지는 권력갈등이다. 청와대 비서실 수뇌부와 청와대 밖 여권 실세 간의 권력암투, 청와대 수뇌부 간의 권력갈등이 수시로 벌어지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대통령과 관련된 정치쟁점이 생길 때 청와대 밖 여권에선 항상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는 세력이 있다”며 비서실을 공격하곤 한다. 국민의 정부 초기 김중권 비서실장과 권노갑 전 의원의 동교동계 구파와의 갈등이 전형적인 경우다.

비서실 내에선 유력 인사들이 주로 비서관급들을 대상으로 자기 사람 심기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일부 비서관들이 이 과정에서 자신의 직속 상관인 수석비서관을 배제하고 다른 수석비서관에게 보고해 구설에 오른 적도 있었다.

청와대 사람들은 들어올 때도 그렇지만 나갈 때도 출신성분에 따라 그 길이 다르다. 관료 출신들은 대개 원적이 있는 부처에 복귀한다. 대부분 승진하거나 좋은 보직을 받아 나가는 게 보통이다. 반면 정치권 출신들은 부침이 심하다. ‘정치’를 선호하지만 번듯한 자리는 그리 많지 않다. 보통 총선 때가 되면 국회에 진출하기를 희망하는 청와대 사람이 10여명씩 나온다. 이들 가운데 공천을 받는 인사는 반 정도. 공천을 받은 사람 중에도 절반 가량은 낙선한다. 5년(또는 더 짧은) 영화를 끝으로 실업자 신세로 전락하는 청와대 사람들도 없지 않다.

비서실장은 항상 ‘그림자 보좌’를 강조한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가 않다. 비서실 자체가 권력의 중추로 인식되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사자들의 우월의식이 더 큰 문제다. 이런 점에서 미국 포드 대통령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럼즈펠드의 잠언록은 깊이 새길 만하다. “대통령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날카롭게 짖어댈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이 대통령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헌법은 오직 한 사람만의 대통령을 인정한다.”





주간동아 2002.12.26 365호 (p32~34)

송국건/ 영남일보 기자 so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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