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8

2002.11.07

화이트칼라의 숨막히는 고통 ‘빌딩증후군’

먼지·레지오넬라균·전자파 등에 무방비 노출 … 두통·감기·비염 등 걸리기 쉬워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2-10-31 10: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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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이트칼라의 숨막히는 고통 ‘빌딩증후군’
    프로그래머 안재민씨(32)는 오후만 되면 충혈되는 눈과 관자놀이를 콕콕 찌르는 통증 때문에 업무에 집중하기가 힘들다. 특별히 아픈 데는 없는데 자주 속이 메스껍고 온몸이 나른하다. 목구멍이 칼칼하고 목소리가 갈라지기도 하고 감기 증세가 있는 것도 아닌데 코가 맹맹하다. 야근하는 날이면 눈은 모래알이라도 들어간 듯 따갑고 머리는 더욱 지끈거린다. 그러나 퇴근길에 시원한 바깥바람을 쐬다 보면 다시금 몸이 쌩쌩해지는 것을 느낀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병원에 가자니 그 정도로 심각한 것 같지는 않고, 참고 넘어가자니 자꾸 신경 쓰이고 짜증만 난다.

    안씨의 증상은 장시간 사무실에서 보내는 직장인들에게 그리 낯설지 않다. 눈 코 목 등의 점막이 따갑거나 시큰거리는 느낌, 비염과 천식 등 각종 알레르기, 두통, 후두염, 현기증, 메스꺼움, 피로감, 건조한 공기로 인한 부스럼이나 피부가려움증 등의 신체적 징후와 의욕상실, 불쾌감, 기억력 감퇴 등 정신적 증상을 호소하는 직장인이 적잖다. 이러한 증세는 바깥바람을 쐬면 저절로 낫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러나 장기간 지속될 경우 기관지 천식, 알레르기성 비염, 폐렴 등과 같은 심각한 만성 질환으로 발전할 수 있다. 특히 하루 중 80% 이상을 사무실이나 아파트, 지하철, 자동차 등 실내공간에서 생활하는 직장인들은 더욱 주의해야 한다.

    창문 열어 자주 환기시켜야
    화이트칼라의 숨막히는 고통 ‘빌딩증후군’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위)와 호흡기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집먼지진드기(아래).

    대형 건물이나 아파트 등 밀폐된 공간에서 장시간 일을 하거나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증상들을 통틀어 빌딩증후군(building syndrome)이라고 한다. 빌딩증후군의 원인은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산소가 부족하고, 오염된 공기가 내부 순환만 반복하기 때문. 또 실내온도와 습도가 우리 몸의 생리와 맞지 않는 것도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 밖에 당장 눈에 보이는 △담배연기와 곳곳에 쌓인 먼지 △냉방장치에서 나오는 레지오넬라균과 곰팡이 △복사기 등에서 나오는 포름알데히드(휘발성 오염물질) △단열재, 바닥재에서 나오는 석면, 라돈가스 등의 화학물질 △각종 전자파가 요주의 대상이다.

    선병원 김미연 과장(가정의학과 전문의)은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환기를 자주 하지 않아 실내공기가 탁하고 건조해져 빌딩증후군을 악화시킬 수 있다”며 “채광이나 온도, 습도 등 근무환경을 자연환경에 가깝게 조절하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말한다. 특히 실내공기가 건조하면 코와 호흡기의 점막이 부어오르는데, 이런 상태에서는 바이러스 침입이 쉬워져 감기와 비염에 걸리기 쉽다는 게 김과장의 진단. 빌딩증후군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온도는 16~20℃, 습도는 40~60%가 적당하며 춥더라도 자주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사무실 구석구석에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틈틈이 물걸레질을 하고, 가습기·어항·실내 정원용 분수 등을 이용해 일정한 습도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녹색식물을 키우는 것도 한 방법. 형광등 아래서도 잘 자라는 벤자민, 고무나무, 잉글리시 아이비 등이 권할 만하다.

    이동통신회사 상담원인 이은미씨(27). 며칠 전부터 목과 어깨 부위의 통증이 심해져 팔을 들 수조차 없게 되었고, 오른쪽 손목이 심하게 시큰거려 파스를 2개나 붙였다. 하루 종일 컴퓨터를 사용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많은 ‘경견완장애’가 찾아온 것. 이는 장시간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VDT(Visual Display Terminal) 증후군의 일종이다.



    화이트칼라의 숨막히는 고통 ‘빌딩증후군’

    점심시간 뒤 사무실은 `졸음과의 전쟁터`. 서울 강남구 신사동 LG패션 본사에서 한 여직원이 졸음을 쫓기 위해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VDT는 컴퓨터에 연결된 모니터를 말한다. VDT 증후군은 좁은 의미로는 모니터 사용으로 인한 눈 기능의 장애(충혈·이물감·안구건조)를 뜻하지만, 넓은 의미로는 장시간 컴퓨터 작업을 할 때 생기는 여러 질환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이중 경견완장애는 키보드나 마우스를 과도하게 사용함으로써 생기는 어깨·팔목 등의 통증을 말한다.

    컴퓨터 사용자는 일반적으로 눈의 피로를 가장 먼저 느낀다. 안구건조와 안구통증을 호소하기도 하고 일시적인 근시 현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통계적으로 컴퓨터 사용자의 66%가 가끔씩, 25%는 매일 눈의 피로, 충혈, 안구통증, 시력저하를 느낀다고 한다. 이를 예방하려면 컴퓨터 모니터를 창 쪽으로 두지 않고, 눈을 자주 깜빡여 눈물샘이 마르지 않도록 한다. 틈틈이 눈알을 사방으로 굴리거나 잠시 눈을 감고 쉬는 등 눈의 긴장을 풀기 위한 노력도 잊지 않는다.

    경견완장애란 키보드나 마우스의 장시간 사용으로 인해 특정 부위의 근육과 힘줄이 과하게 자극을 받아 손목과 팔, 어깨, 목 등에 통증을 느끼는 증상이다. 재활의학과 전문의 임오경 교수(가천의대 길병원)는 “잘못된 자세로 키보드 작업을 오래 하면 팔목에 무리가 오고, 심하면 ‘팔목터널 증후군’으로 악화돼 영구적인 팔목 손상을 입을 수도 있다”며 “고개를 똑바로 들고 등과 가슴을 곧게 세우며, 팔꿈치는 직각을 만들어주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특히 1시간 정도 작업한 후에는 10~15분씩 휴식을 취하거나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흡연자보다 비흡연자의 발생빈도가 더 높다’는 미국의 연구 결과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작업 중간 중간에 자주 쉬면서 손목과 어깨를 풀어주는 것이 가장 좋은 예방책이기 때문.

    컴퓨터 사용자들 ‘경견완장애’ 조심

    안구건조와 경견완장애 이외에도 넓은 의미의 VDT 증후군으로는 치질, 소화장애, 두통, 만성 피로 등이 있다. 특히 장시간 같은 자세로 앉아 있는 사무직 종사자들 중에 ‘치질’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한 조사에 따르면 치질 수술을 받은 남성 중 사무·관리직이 60% 이상을 차지할 정도. 대장항문과 전문의 양형규 박사(양병원 원장)는 “오래 앉아 근무하는 직종일수록 항문 혈관 내 압력이 올라가 피가 몰리고 혈액순환이 잘 안 돼 치질에 걸리거나 악화될 위험이 높다”고 지적한다. “컴퓨터 작업시 허리를 등받이에 밀착시켜 엉덩이가 의자 깊숙이 위치하도록 하고, 항문괄약근을 오므렸다 폈다를 반복하는 소위 ‘케켈운동’을 자주 하면 치질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게 양박사의 충고.

    닫힌 공간 속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야 하는 직장인들에게 사무실 근무환경은 매우 중요하다. 탁한 공기, 구부정한 자세, 늘 마주보는 모니터가 바로 당신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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