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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총기업자 로비력은 ‘핵폭탄급’

협회 한 곳서만 연 1억달러 펑펑 … 정치권 규제법안 만들기 외면 ‘총기사건 자업자득?’

  • 뉴욕=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美 총기업자 로비력은 ‘핵폭탄급’

미국에선 걸핏하면 총기사고가 일어난다. 시민군(militia)이 무장을 하고 세금을 안 내겠다면서 경찰관과 대치하는 곳이 바로 미국이다. 학교 또한 예외가 아니다. 고등학교는 물론이고 초등학교 학생들이 친구의 목숨을 빼앗은 사건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학교 정문에 금속탐지기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폭력의 일상화’는 미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 중 하나. 10월 미국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주(州)는 때아닌 연쇄 저격범 공포에 휩싸였다. 보름 사이에 12명이 총에 맞아 희생된 것. 사정이 이런데도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국내 치안에는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부시는 미국 총기업자들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는 정치인 중 한 명이다.

부시는 대이어 총기협회에 우호적

현재 미국인들이 소지하고 있는 총기는 2억5000만정 가량이다. 국민 1인당 1정꼴로 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에서 대형 총기사건이 터질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곳이 미국총기협회(National Rifle Association·회장 찰턴 헤스턴)다. 총기규제에 대한 여론이 확산돼 매출이 줄어들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것이다. NRA에 가입한 회원은 현재 420만명. NRA는 회원 확장 운동을 통해 회원 수를 500만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회원 수가 늘어나면 정치인들이 함부로 총기규제 문제를 거론하지 못할 거라는 계산이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총기규제에 대한 입장은 확연히 다르다. 민주당은 규제 강화 쪽이고 공화당은 규제 완화 쪽. 하지만 NRA의 막강한 로비력 탓에 미국 의회에선 총기규제에 대한 논의 자체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1999년 콜럼바인고등학교에서 총기 난사사건이 발생했을 때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은 정치인들이 총기 관련 규제법을 만드는 데 무관심하다고 비판했었다. 그러나 NRA로부터 ‘강력한 후원’을 받아온 부시 대통령은 클린턴과는 정반대의 견해를 갖고 있다. NRA는 지난 대선에서 부시의 든든한 후원자 중 하나였다. NRA 사무부총장 웨인 라피에르는 “엘 고어가 지금 백악관에 있지 못하는 이유를 잘 알 것”이라고 로비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부시는 텍사스 주지사 시절부터 NRA에 우호적이었다. 반(反) NRA 단체 ‘권총규제(Handgun Control)’ 등에 따르면, 당시 부시 주지사는 법정소송에서 총기회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안에 서명했고, 전시회(guns show)를 통한 총기 판매의 제지를 위한 규제조치 또한 외면했다. 1997년엔 교회나 병원, 놀이공원 등에서도 총기를 소지해도 된다는 법안에 서명하기도 했다. NRA 수석 로비스트 제임스 베이커가 “부시 주지사는 우리 NRA가 내놓은 어떤 안건도 거부한 적이 없다”고 말했을 정도다.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 조지 부시 전 대통령도 NRA 회원 출신이다. 공화당과 NRA의 유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83년 당시 도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NRA 총회에서 찬조연설을 하면서 NRA 회원(무기 생산·판매업자)들의 입맛에 맞는 발언을 쏟아내 기립박수를 받은 바 있다. NRA 헤스턴 회장은 올 총회에서 총기를 머리 위로 흔들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2000년 대선에서 큰 역할을 했던 만큼 부시 대통령이 내년도 총회에 (레이건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연사로 참석할 만하다”라고 말했다.

1971년 창립된 NRA는 미 전역에 있는 13개의 총기업자 단체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것이다. NRA 차석부회장 샌디 프로만은 “우리 NRA는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로비단체”라고 말한다. 그의 주장대로 NRA는 연간 1억 달러 가량을 회원들로부터 모금해 로비활동에 사용해왔다. 수석 로비스트 제임스 베이커를 정점으로 7명의 로비스트를 두고 워싱턴 정가를 상대로 로비를 펴고 있는데, 이들은 총기 판매나 사용과 관련된 일체의 입법 움직임을 봉쇄해왔다.

존 멕케인 상원의원은 공화당 소속이지만, NRA가 혐오하는 정치인이다. 그 밖에도 NRA는 민주당 에드워드 케네디, 척 슈머, 다이엔 파인슈타인 상원의원 등 총기규제에 앞장서온 정치인들은 모두 혐오 대상으로 분류해놓고 있다. 현재 미국은 11월 중간선거를 코앞에 두고 있다. NRA는 총기규제를 입법화하는 데 앞장선 정치인들을 낙선시키겠다고 벼르고 있는 상황. NRA는 총기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정치인들을 향해 “당신들이 하는 짓이 곧 정치 테러리즘”이라고 주장한다.

NRA 수석부회장 케인 로빈슨은 총기규제론자들을 가리켜 “그들은 다른 어느 외부세력보다 미국인들의 자유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NRA 간부 누겐트는 “아버지로서, 그리고 시민으로서 나의 첫번째 의무는 악(evil)이 우리를 이길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총이 없다면, 우리는 이길 기회를 놓친다”고 주장했다.

총기규제론자들은 총기를 구입하는 과정을 까다롭게 만들자고 주장한다. 자동차를 소유하려면 운전면허가 있어야 하듯, 총기도 면허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 이러한 주장에 NRA는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낸다.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1791년 미국 독립운동 주역들은 미 헌법을 손질하면서 다음과 같은 문구를 넣었다. “국민이 총기를 소유할 권리가 훼손돼선 안 된다.” NRA는 입만 열었다 하면 바로 이 헌법 규정을 들먹인다. 이 같은 NRA의 기본권 주장에 대해 전 대법관 워렌 버거는 “특정 이익집단의 사기극”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최근 들어 NRA를 압박하는 시민단체와 행정단체들이 하나 둘씩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담배회사를 상대로 한 법정소송에서 거액의 배상금 지급 판결이 줄줄이 나왔던 점에 착안, 총기 제조회사들을 법정으로 끌어내고 있다. 총기 관련 범죄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있으니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 미국에선 20여건의 총기 관련 소송이 진행중이다. 하지만 조지아주 같은 곳에선 총기회사를 고소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법률이 통과되기도 했다. 물론 NRA의 로비가 통했기 때문이었다. 공화당이 우세한 다른 10여개 주에서도 조지아주처럼 ‘NRA 보호 입법’이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주간동아 2002.10.31 357호 (p60~61)

뉴욕=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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